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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문효치의 들꽃

기자명 김형중

말 많고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들꽃처럼 단순하게 살기 희망

누가 보거나 말거나
피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네
한마디 말도 없이
피네 지네

모든 생명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적으로 태어나서 자연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다가 인연 따라 사라진다.

깜냥대로 살아가는 게 행복
분노로 살면 온통 ‘불바다’
열반의 고요함 느껴지는 시

들꽃도 그렇고 사슴이나 개도 그렇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이 요란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요란하다. 생일 돌잔치를 하면서 하늘의 뜻과 천지신명의 가호, 불보살님의 가피를 운운하는 등 온갖 탄생과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고요한 바다에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천 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생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평화를 파괴한다. 남을 의식하고 모양새를 갖추려다 삶이 피곤해지고 있다.

결혼식의 경우도 그렇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가족친지가 조촐하게 식당에 모여서 밥 먹고 박수치고 축하하면 될 텐데, 모두가 호화호텔을 빌려서 만객을 모셔놓고 저명 주례사를 들으며 야단법석을 떨어야 결혼한 것 같다. 아비는 허리가 휘고 어미는 빚 걱정을 해야 한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의 모든 삶이 허례와 형식 때문에 뒤틀어져 고통을 주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허공을 향하여 고함을 치는 것은 깊은 산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것과 진배없다. 인간은 무언가를 하려고 몸부림친다. 들꽃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면 자신도 남도 힘들게 할 것도 없이 고요하고 한가하게 봄날처럼 살다가 갈 것인데 야단법석이다.

문효치 시인은 말 많고 복잡다단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들꽃처럼 조용하고 단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간 삶의 목적이 그렇게 대단할 것이 없다. 무엇을 이루겠다고 발광해 보았자 결국 제 몸 하나 겨누지 못하고 오므라지는 해골 비슷한 노인으로 죽어간다. 자신의 깜냥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 난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행복할 텐데 모두가 삼독의 욕망과 분노를 풀어헤치고 살아가자니 온통 불바다이다.

선어록에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잔다”고 하였다. 이것이 도이다. 억지로 살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발버둥 치면서 살지 말자. 들꽃은 무심하게 피고 진다. 작위나 인위가 없어 편안하다. 문효치의 ‘들꽃’은 삼독의 불꽃이 모두 꺼져 재만 남았다. 니르바나 무위열반의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시이다.

인간사는 말이 많은 데서 산통이 깨진다. 말에서 분별 시비가 생기고 갈등과 불화가 생긴다. 말을 잘하려고 꾸미는 데서 거짓이 생기고 불안해진다. 결국은 말이 고통의 씨앗이 된다. 입은 화의 문이라고 했다. 잘못된 말만 화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복잡하고 뇌가 피곤하게 된다. 그래서 달마대사의 후예인 선종 선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다물라는 유마의 두구묵언(杜口黙言)을 생명처럼 지키는 것이다.

‘들꽃’은 무심(無心)하게 피고 지는 김소월의 ‘산유화’가 연상되는 시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만나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시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 시는 좋은 시이다. ‘들꽃’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고수의 읊조림이다.

문효치는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문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시인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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