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시는 직관과 통찰 언어 탈속의 멋과 지혜도 가득

  • 불서
  • 입력 2016.04.19 10:37
  • 수정 2016.04.19 10:38
  • 댓글 0

‘선시감상사전’ / 석지현 편저 / 민족사

▲ ‘선시감상사전’
선에서 언어는 검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누가 휘두르는지에 따라 살인검도, 활인검도 된다. 선은 언어를 극도로 경계한다. 언어도단, 불립문자도 언어로서 진리를 세울 수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언어를 떠난 선과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 언어에 의지해 수행, 인가, 전등이 이뤄진다. 그렇기에 선의 언어는 극히 직관적이다. 선이 시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는 설명적인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시는 오조 홍인의 두 제자인 신수와 혜능이 시를 빌려 깨달음의 경지를 읊으며 시작됐다. 이후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선승들은 시로 깨달음의 희열을 노래했다. 겸허한 침묵 속에서 우러나온 생활의 서정과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선시에는 세간의 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탈속의 멋스러움과 삶에 대한 통찰이 배어있었다.

‘꿈 같고 환영 같은/ 아아, 육십칠 년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천동정각 임종게)

‘고통은 저절로 가고 기쁨은 저절로 오나니/ 온 하늘 밝은 달이 고요한 빛을 놓네.’(보월거가 정관, ‘정념에게’)

‘학의 울음소리 목이 메는데/ 복사꽃 환하게 피어 웃고 있네/ 짚신에 대지팡이 벗삼아/ 온종일 서성이며 봄기운에 취하네.’(천태덕소 ‘봄의 어느 날’)

이 책은 독자들의 성원과 요구로 20년만에 재출간됐다. 선시의 번역은 더욱 매끄러워졌고 해설의 맛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는 깨달음을 노래하면서도 문자의 미혹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승들의 오도 세계, 존재와 세계에 대한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하는 시인들의 언어가 담겼다. 한국 107명 997편, 중국 169명 260편, 일본 30명 174편 등 한·중·일 선사 및 시인 총 306명의 작품 1431편이 국가·연대·작가별로 정리돼 있다. 작가 소개를 통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살필 수 있고, 작가별·원제별 찾아보기를 덧붙여 선시사전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 이 책은 선시를 통해 언어의 덫에 걸리지 않았던 선지식의 자유로움과 드높은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편저자인 석지현 시인은 ‘벽암록’(전5권), ‘종용록’(전5권) 등을 완역한 선어록의 대가다. 우리나라에 선시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알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인 특유의 감각적 시선으로 방대한 작품을 자신의 색채로 새롭게 읽어냈다. 각 편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선시사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랜 정신적 편력과 수행을 지속해온 저자가 각각의 선시들에 대해 단 품평을 읽는 즐거움도 크다. 칭찬과 찬탄, 은근한 아쉬움에서 직설적인 비판까지 거리낌이 없다. 때로는 옛선사들보다 저자의 ‘감상’에 더 오래 눈길이 머문다.

‘저 물에 비친 달을 건져 보라. 거기 부서지는 달빛이 있을 뿐…’‘혼자 가라. 무리를 짓지 말라. 깡마른 그 모습에서 가을바람 일게 하라. 그 눈빛 새파랗게 불타게 하라.’

직관과 통찰의 언어로 빚어낸 선시. 이 책은 선시를 통해 언어의 덫에 걸리지 않았던 선지식의 자유로움과 드높은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한국편 5만8000원, 중국·일본편 3만8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