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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34.이해로 나무람을 대신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4.19 14:02
  • 수정 2016.05.16 16:05
  • 댓글 0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마음을 조각하라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골머리를 앓고 있는 어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타이완의 어느 중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상사님, 우리 집 아이가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해요. 새벽녘까지 컴퓨터를 하는 걸 보고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그 녀석은 들은 척도 하질 않네요.”
“그래요? 학교성적은 어떻습니까?”
“중간정도예요, 보통이지요.”
“그럼 아이에게 병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축하한다는 건가요? 그 녀석이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요.”

“그대가 이렇게 훌륭한 아이를 낳은 것, 이것도 축하할 일이지요. 그대도 알다시피 아이를 원하지만 낳을 수 없는 여인들이 많아요. 그들은 얼마나 그대를 부러워할까요? 하물며 그대의 아이는 사지가 멀쩡하고 몸도 건강하잖소. 그런데 그대는 무슨 불만이 있는 건가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컴퓨터를 다루지 못한다면, 살아가기가 아주 불편하지요. 나중에 회사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서도 반드시 꼭 필요합니다. 만약에 아이가 기본적인 컴퓨터조차도 다루지 못한다면 나중에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때에 아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도리어 ‘예전에 컴퓨터를 못하게 했을까’하고 후회하며 속상해 하겠지요. 아이가 컴퓨터에 대해 흥미가 없다면 오히려 더 걱정을 해야 할 시대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이가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도록 부모가 바르게 그 길을 이끌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어떤 사진이든지 사진을 한 장 주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으로 바꿔달라고 해보세요. 이런 것이 바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방법이지요. 그러면 아이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도의 컴퓨터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서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고 이후에는 아들과 대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근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이 급하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상사님, 우리 집 아이가 나쁜 짓을 하고 다녀요. 여러 차례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네요. 정말 아이에게 실망했어요.”

그녀의 말 속에서 이미 자신의 아이는 나쁜 아이이고, 더 이상 어떤 것으로도 구제할 수 없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때에 부모가 아이를 품어주면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여 아이와 단절될 태도를 갖는다면 아이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판단력과 사회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로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설령 우리는 아이가 좋지 않은 습관을 많이 가지고 있고,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단정 지어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다른 아이에 비해 비교적 늦게 트이는 아이일 뿐입니다.

이때에 부모는 더욱 큰 사랑과 포용심을 가지고 아이를 품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현재 성장단계의 과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이에게 시간을 주면서 동시에 바른 길로 이끌어준다면 아이는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대가 바라는 모습 또는 그 모습을 초월하여 더 멋지게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는 반드시 아이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아이에 대한 희망은 일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만약 나쁜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아이는 점점 더 나쁘게 변하게 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아이는 당연히 점점 좋아 집니다. 더욱이 부모자식 사이에는 이런 에너지의 전달 과정이 가장 민감하고, 가장 영험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말하는 ‘나쁜 아이’란 보통 대단히 똑똑하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을 뛰어 넘으며, 대뇌의 능력이 아주 강하고, 표현 능력도 훌륭한 아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좋다, 나쁘다 식으로 양극화하여 정의하는 것은 아주 옳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은 직업이 있고 그 각각의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대단한 장난꾸러기 또는 말썽쟁이로 부모나 선생님의 속을 썩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총명하기 때문에 두뇌가 영민하게 움직이며 에너지도 왕성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는 것을 즐깁니다.

반대로 어떤 아이들은 아주 말을 잘 들어서 스스로 책을 읽고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습니다. 몹시 대견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런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밋밋하여 빛나는 일생을 보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동전처럼 양면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적으로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는데, 아이에 대한 판단도 이와 같습니다.

3년 전에 밴쿠버의 수련원에 부모를 따라 선 수행을 하러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주 산만하여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식탐 또한 대단했습니다. 아이는 두 달 동안 선 수행을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염불을 하던 중에 돌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수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으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아이를 달래지 못해 당황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가 ‘영재반’에 들어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산만하여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 아이는 일반인들에 비해 지능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산만하고 말을 더듬었던 것은 남달리 아이의 지능이 뛰어나서 생각한 것을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산만하고 말을 더듬는 행동만으로 판단의 표준을 삼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학술적 이론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육면체의 퍼즐인 큐브를 조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아이의 손은 우리의 눈보다 더 빠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산만하고 말을 더듬는 아이를 보면 우리는 쉽게 ‘아이가 좀 모자라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깨진 유리 조각으로 착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에 대해 좋다 나쁘다 혹은 똑똑하다 아니다를 판단할 때에는 언제나 신중하게 성찰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맹목적으로 자기 생각의 틀을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함부로 ‘나쁜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건강하고 자유롭게 성장할 아이의 미래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중국에 있을 때에, 평소 친분이 있던 미술관 관장이 저에게 한 장의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창의력은 놀라웠고 대단히 아름다웠습니다. 관장은 그 그림이 어떤 천재 화가의 작품이라면서 작가의 자료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속의 작가는 천재화가이기 보다는 소아마비를 앓은 듯한 모습이어서 저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저의 짐작대로 그는 지적 장애인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다른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특수교육을 받고 일생 동안 장애연금에 의지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행스럽게도 아주 훌륭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실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의 재능을 발굴하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화가의 어머니는 색깔에 대한 아이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각종 색깔의 색연필을 사다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가 생각하는 대로 네 마음을 다해 그려보렴.”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아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2년 후에는 유명한 화가들도 인정할 만큼 실력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색채에 대한 응용력과 창조력은 기성 화가들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많은 화가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놀랍군요! 이 작품, 누가 그린 것입니까? 어디서 사 왔나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많은 화가들은 비록 기교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색채를 응용하는 창의력은 이 아이가 훨씬 월등했습니다. 그러니 관장이 그를 천재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의 잠재능력은 영원히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모와 선생님이 어떤 아이에 대해 ‘발전성이 없는 나쁜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는 그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입니다. 부모와 선생님은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늘이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은 반드시 쓸데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 둘째는 하늘은 대단히 공평하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은 모두 각자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의 능력을 충분히 드러내어 그 사명을 다 하게 할 것인가를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몇 가지 참고사항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에 대해 절대 실망하지 말고, 영원히 희망을 품어라!

아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조각하느냐에 따라 값비싼 보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성스런 마음으로 조각하기만 하면 그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둘째, 앞에서 잘 이끌어 주고 부지런히 격려하라!

아이가 무엇을 하든지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나무라면 아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의 자존심은 어른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서양인들의 아이에 대한 교육관이 비교적 철저하고 올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의 능력을 발견하도록 노력하라!

넷째, 언제나 아이에 대해서 영원한 믿음을 가져라!

설사 집이 가난하여 아이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지라도, 아이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설사 아이가 그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이 스스로의 인생은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은 평등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이 그대에게 준 모든 지혜와 에너지를 절대로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 인생’ 중에서 (번역:권중달)
보리선수 약사선원 T.1661-0803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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