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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치유의 이중주 ‘세월호, 그날의 기록’

기자명 강용주

“무엇보다 진실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되새겨 볼수록 진실과 치유의 관계에 대해서 이처럼 명징한 선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을 밝힐 때, 내용이나 방식 모두 피해자가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치유는 진실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 온 생애를 바친 이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리스 비극의 영웅 오이디푸스도 그런 인물이지요. 인간의 원형을 잘 그려내고 있어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고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찾아가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대서사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으로 회자 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기 자신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지금의 자신이 누구인지 그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안다는 것, 그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이디푸스는 회피하는 목자에게 왕을 죽인 자가 누구냐며 추궁하고 협박도 합니다.

“목자: 더는, 제발 부탁이니, 주인님, 더는 묻지 말아주소서.
오이디푸스: 나로 하여금 다시 묻게 하면, 그때는 끝장이다.
목자: 아아, 말하기 무서운 진실 앞에 이르렀구나!
오이디푸스: 나도 듣기 무서운 진실 앞에 이르렀도다. 그래도 들어야 한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1169행 ~ 1170행)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그 무서운 진실을 알고 난 그는 테베의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이 먼 채로 평생을 유랑자로 길 위를 떠돌지요. 추락할 줄 알면서도 그는 진실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직면했습니다. 

“진실은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이루는 근본이다.”(진실에 대한 권리연구, 유엔인권최고대표실, E/CN.4/2006/91, 2006)

진실을 떠나서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도, 한 사회가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일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때론 자기의 전 존재를 희생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족들은 신원운동을 하다가 도리어 구속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작간첩 피해자와 가족들도 진실규명을 요구할수록 의심의 눈초리가 커져갔습니다. 지금 세월호 유족들이 그렇지요.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출판한 재단법인 ‘진실의힘’을 만든 사람들도 진실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이들입니다. 70~80년대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장기구금, 그리고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 당한 사람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기록을 모으고 진술을 듣고 증언자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촛불하나 들고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그 진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의힘’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실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만 반드시 직면하고 마주쳐야하는 일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진실은 인간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진실을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진실의힘’을 만든 사람들에게 진실은 목숨만큼 소중합니다. ‘진실의힘’에서 만든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진실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시민과 함께 기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지팡이가 되고, 때로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 참, “무엇보다 진실규명에 유족 여러 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는 말씀은 2014년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면담 중에 하셨던 말씀입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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