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꿈속 삶과 꿈 깬 삶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5.02 17:17
  • 수정 2016.05.02 17:18
  • 댓글 1

논리학에 보면 범주의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 데카르트를 비판하고자 사용한 용어인데 이는 어떤 범주에 속한 것을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해 있는 정의나 설명으로 바꿔서 설명할 때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세간의 색안경으로 보기에
꿈속 같은 삶서 못 벗어나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지금 그대로 깨어있는 삶

이 마음공부에서도 범주의 오류를 흔히 접하게 된다. 불교 공부는 이 세간을 뛰어넘어 출세간에 이르는 공부다. 전혀 다른 범주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출세간의 열반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보니, 이 세간의 시선으로 출세간의 법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생각되는 것들이 주로 그 대상이 된다. 그러나 출세간의 진리, 법, 본래면목은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생각으로 이해되는 대상이 아니다. 즉 세간에서는 육근이 육경을 인식할 뿐 육경이라는 경계가 아닌 것은 인식될 수 없다. 바로 이 법, 진리, 본래면목은 경계가 아니기에 분별로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 불법은 머리로 이해할 수도 없고, 언어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출세간의 진리를 세간의 말로 이해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용수는 중론에서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방편을 사용했다. 즉 진리라는 승의제는 전혀 세속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범주이다 보니 그렇다고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진리를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언어라는 세속적인 방편을 빌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꿈과도 같다. 세간은 꿈이고 출세간은 꿈에서 깨는 것이다. ‘꿈속 삶’과 ‘꿈 깬 세상’은 전혀 다른 범주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속에서 더 좋은 꿈을 꾸려고 하고, 더 좋은 삶을 만드는 것에만 사로잡혀 있다. 꿈을 깨 본적이 없기 때문이고, 꿈을 깨는 것은 인식의 범주 바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에서는 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꿈 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범주를 설함 없이 설하고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을 전부 좇아다니며 구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된다. 꿈에서 깨면 동시에 꿈속의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구제된다. 그 꿈속의 수많은 중생들이 곧 내 꿈일 뿐이기에 그들이 곧 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깨달으면 온 우주가 함께 깨닫는다. 물론 이 말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출세간은 세간에 이해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불교가 세간의 놀림거리가 되지만, 출세간에 이른 사람은 홀로 그 뜻을 안다고 했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이처럼 진리, 법성, 본래면목이라는 출세간법은 세간법과는 다른 범주임에도 생각이라는 세간의 범주로 출세간의 진실을 헤아리려고 하니 ‘범주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출세간이라는 세간과는 다른 어떤 ‘범주’가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오해를 할 것이다. 방편을 오해한 것이다. ‘범주의 오류’ 또한 어쩔 수 없이 사용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사실 출세간과 세간은 둘로 나뉘어 져 있는 것이 아니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며, 생사 즉 열반이고, 번뇌 즉 보리다. 지금 이대로 당장 목전에 진리가 드러나 있다. 꿈 속 세상이 그대로 꿈 깬 세상인 것이다. 꿈이란 중생의 번뇌망상인 것이다. 중생이 번뇌망상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에 그에게는 세간 상만 보일 뿐, 망상번뇌가 없다면 지금 이대로 출세간의 상 없는 진실한 세계, 아니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평범한 세계가 곧장 드러날 것이다.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