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선용 스님과 해인사 산동백잎 부각
9. 선용 스님과 해인사 산동백잎 부각
  • 정리=김현태 기자
  • 승인 2016.05.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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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생활 ‘배고픔’으로 기억…객승 오면 먹던 밥 덜어 함께 공양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아름다운 숲이란 뜻의 아림(娥林)은 거창의 옛 지명이다. 이곳 아림에는 신라 천년고찰 아림사가 있었다. 그러나 큰 절 아림사는 고려 몽고전란을 겪으며 사라졌고, 거창 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 석탑만이 그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옛 사찰의 장엄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법맥은 새 절 아림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98년 개산한 아림사는 거창불교 중심도량으로 조계종 총무부장과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을 역임한 선용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마곡사 시절 모든 게 부족
멀건 보리죽에 간장과 김치

해인사에서도 배고픔은 여전
산동백잎 부각은 최고 별미

잣나무 많아 잣강정도 인기
잣죽은 환자식으로만 제공


아림사 주지 선용 스님은 1962년 부처님오신날 해인사 도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고향인 남해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다 한 스님을 만나 출가의 인연이 닿았는데 은사스님을 좇아 사천 다솔사에서 처음 행자생활을 했다. 다솔사는 만해 스님이 머물렀고,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한 곳으로 당시 효당 최범술, 금봉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고 있었다.

“금봉 스님에 대한 기억은 갓 출가한 저에게조차 친절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어른스님들도 차를 드시는 분이 없었는데 차 마시는 법은 물론이고 경전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찻물을 끓일 기구가 없어 고체 연료를 이용한 버너를 사용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본격적인 행자생활은 마곡사에서 시작됐다. 선용 스님이 말하는 행자생활은 ‘배고픔’으로 기억된다. 나라 전체가 배고팠던 시절, 마곡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절이었다. 주지스님이 근처 관광사찰에서 얻어온 폐양초로 공양간의 불을 밝혔고, 행자들은 무조건 하루에 두 짐씩 나무를 해 와야 했다. 수도시설이 없으니 공양간에 물을 져 나르는 일도 행자들의 몫이었으며, 시간이 나면 버린 헝겊을 주워와 양말을 짓는 등 살림살이가 열악했다.

멀건 보리죽에 간장과 김치뿐인 공양이지만 마곡사는 당시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발우공양을 했다. 그나마 김치도 배추김치는 노스님들을 위한 것이었고, 젊은 스님과 행자들은 무김치가 배식됐다. 무김치는 고춧가루를 헤아릴 정도로 뿌려 흉내만 낸 사실상 소금에 절인 짠지 무절임이었다. 먹을 게 충분치 않다보니 행자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가 산과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마곡사에서 다시 관촉사로 옮겨 행자생활을 하고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범어사는 아침공양으로 죽이 나왔는데 마곡사보다는 형편이 나았습니다. 스님이 되기 위한 공부는 해인사에서 했어요. 해인사에서는 밥을 주긴 했는데 노스님 눈치에 제대로 공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음식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생기던 때였습니다.”

그만큼 식량관리도 철저했다. 대중방에는 자신의 법명이 적힌 팻말이 있었는데 외출을 할 때는 꼭 자신의 팻말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 식량을 관리하는 미감스님은 스님 한 명당 3홉씩 외출한 스님의 수만큼 쌀을 제외하고 공양간에 제공했다. 만약 갑작스러운 객이 오면 각자 십시일반해 객스님의 밥을 만들었고, 죽일 경우에는 물을 더해 양을 늘렸다.

이렇게 특별히 먹을 게 없던 시절이었지만 삭발식이나 큰 재가 있을 때는 두부, 김, 국수, 찰밥이 나왔다.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었지만 순수한 재료에 정성을 다해 만들었기에 맛은 최고였다. 특히 감자를 가늘게 썰어 만든 부각과 산동백잎을 부친 부각은 저장해 두었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내기도 했다. 감자부각은 감자를 얇게 썰어 찹쌀 풀에 묻혀 응달에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기름에 튀겨냈다.

스님은 최고의 별식으로는 산동백잎 부각을 꼽았다. 산동백나무는 생강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경기지방 등지에서 동백기름 대신 이 나무의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란 꽃이 산수유와 비슷해 산수유나무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생강나무라는 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잎은 생강과 같은 상큼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산동백잎 부각은 스님들이 하루 날을 잡아 필요한 만큼 따다 깨끗이 씻어 말린다. 마른 산동백잎 뒷면에 찹쌀 풀을 묻혀 말려 두었다가 먹을 때 바로 튀기면 되는데, 기름의 온도는 풀을 발라 마른 잎이 바로 튀겨지는 온도가 가장 적당하다. 이런 음식들은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금방 조리해서 먹기에도 간편할 뿐 아니라 자연 그대로 자란 야생나무의 잎을 쓰다 보니 자연의 기운 자체를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이 선용 스님의 설명이다.

또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엿을 고아 유자나 강정을 만들었다. 특히 해인사는 잣나무가 많아 잣으로 강정을 튀기기도 하고 잣죽을 끓이기도 했다. 잣 전병은 신도들에게 선물하거나 대중공양으로 올렸다. 잣죽의 경우 성철 스님이 수행자의 음식으로 사치스럽다고 해서 환자식으로만 제공됐다.

음식이 문화로 대접받는 요즘 스님은 사찰마다 특별한 음식 하나씩 갖기를 당부했다. 그래서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그 사찰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불교의 절제된 음식문화까지 전달할 수 있어 포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선용 스님은

1962년 해인사에서 도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과 동국대 승가학과를 졸업했으며 총무부장,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아림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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