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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피로 되살아난 인생, 사찰문화해설사로 회향

기자명 법보신문

[신행수기 당선작] 동국대 총장상-이상화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어릴 적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님한테서 배운 건 하루 세끼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삶이라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았다. 남들은 쉽게 가는 중학교도 사정사정 해서 들어갔고 중학교만 보내주면 졸업해서 돈 벌어 오겠다는 약속 끝에 졸업과 동시에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곱식구의 소녀가장으로 살았다. 그때가 17세, 지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내면의 아우성?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사람도 아닌 것이 짐승도 아닌 것이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입에 풀칠하려고 태어나고 일곱식구 먹여 살리기 위해서 소처럼 말처럼 희생해야 하나” 등등.

가난하고 못배운 부모 밑 자라
17세에 일곱 식구 소녀가장 돼

23세에 만난 남편과 시부모님
지난날 잊을 만큼 자상한 불자

행복도 잠시, 옛날 무리한 몸에
탈이 나 허리 아프고 다리 마비

어느 날 꿈에 부처님과 함께 온
의사가 수술 후 거짓말처럼 나아

포교사고시 합격해 해설사 봉사
팀 활동 널리 알리며 삶에 감사

그러다 회사 도서관을 전전긍긍하던 나는 ‘명심보감’을 만났다. ‘명심보감’은 헛헛한 내 정신세계를 마구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사람이라 하는지를 알았다. 사람, 사람이 되자, ‘명심보감’은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말없는 스승이 되어 아주 지엄한, 아주 당당한 훈육으로 나를 가르쳤다.

이렇게 내 유년을 고뇌 속에서 살다가 23세 때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결혼은 가난에서의 탈출, 지옥에서의 탈출이었다. 여기에서 또 경악한 건 우리 아버님 어머님. 물려받은 재산 없이 죽을판살판 노력해서 땅 사고 밭 사고 일곱 자식을 고등학교 대학교 다 보내면서 자식들한테 욕을 하거나 회초리 한 번 안 들고 키우셨다는데 나의 친정 아버지 어머니와 너무도 비교되는 것에 경악했다.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구나”를 그때 알았다. 불심 또한 깊었다. 점잖고 어지신 분들 속에서 지난날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면서 친정 동네에 공장이 들어서며 친정은 철거 이주민이 되었다. 그 전에, 시집오기 전에, 친정엄마는 내가 공장 다닐 때 받은 월급을 쥐꼬리만큼 떼어 적금을 든게 만기가 되자 그 돈으로 집 뒤 포도밭을 샀다. 그것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거액을 보상 받게 되어 친정도 가난에서 탈출했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행복만 남았음을 자신했는데 결혼 전 어린나이에 산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온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던 탓인지 그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면서 다리에 마비오던 증세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해 본 적도 없었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던 적도 없었다.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지 완전히 드러눕게 됐다. 한의원 가서 침을 맞고 별짓을 다 했으나 차도도 없이 그렇게 몇 달을 누워 지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한 번도 찾아 본 적 없는 “부처님 도와주세요. 부처님 도와주세요”라며 수도 없이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에 부처님이 의사와 간호사와 함께 보이시면서 내 온몸을 대수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나니 정말 대수술한 것처럼 아팠고 그 후 빠르게 빠르게 몸이 회복되면서 지금까지 25년 넘게 과로로 몸살을 앓은 것 외엔 병치레를 한 번도 안 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다가 어느 날부터는 불교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사춘기 때 아무리 읽어도읽어도 목말랐던 것들이 또 풀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근본고뇌 생로병사 해탈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이 너무나도 위대해 보였다. 인연법과 인과응보와 자업자득을 알고나니 나한테 그렇게 모질게 했던 부모님이 이해됐다. 그러면서 전생전생으로부터 친정 부모님과 가족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는 것도 알았고 한 알의 곡식이 육신을 지탱하게 하는 양약임을 알았다.

8년 전, 포교사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잘 나가는 불자였으나 정작 나는 재적사찰도 법명도 없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나도 세상 밖으로 나가자, 제도권 안에서 원도 한도 없이 포교 일을 한 번 해보자. 부처님께 받은 은혜를 사람들한테 갚자, 이런 마음이 물결치면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법명 ‘원명지’를 받았다. 법명을 받으면서 “꼭 이름 값 하겠다”고 다짐했다. 포교사 고시를 치르고 예비 포교사 연수와 팔재계를 거쳐 정식 포교사가 되었을 때 “수행이 곧 포교요, 포교가 곧 수행이다”라는 이 글귀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 글귀만 마음에 담고 무소의 뿔처럼 가리라 다짐했다.

품수 후 그때 울산 지역단은 부산지역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울산 4개팀 중 나는 사찰문화해설팀에 지원했다. 해설봉사 팀활동을 하던 날을 며칠 앞두고 사찰문화해설팀장 평담 배해익님으로부터 문자로 과제가 날아 왔다.

“○월○일 석남사 해설봉사 날 발표할 자료를 준비해 오세요. 과제는 일주문과 천왕문에 대해 A4용지 석장 분량으로 작성해 오세요.”

이때부터 또 다른 도전과 시련에 뛰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모두 접고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걸 직감하면서 일주문부터 한발 한발 배워 나갔다. 일주문 과제를 작성하면서 노트에 적기를 수십 번, 혼자 말로 설명해 보기를 또 수십 번,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진심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달하고 싶은데 부실한 내용 탓에 해설진도가 나아지질 않았다. 통도사와 석남사에 관한 무궁무진한 역사와 해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창건설화, 사리보탑, 대웅전 팔상도, 각 전각들만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이 툭 내뱉는 한 마디 “이 세상 바닷물 다 마시려고? 한 숟가락 떠먹어 보면 맛을 알아야지”하시는데 “한 숟가락, 한 숟가락 하면서 뜻을 되뇌이다”가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부처님 일대기 팔상도부터 하자. 불교의 출발이 여기서 부터이니….”

팔상도에 관한 자료를 모아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 관한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한테 정리한 내용을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한두 번은 들어 주더니만 그 뒤부터는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울 보며 하다가 강아지 앉혀 놓고 하다가 강아지도 지쳤는지 나중엔 아예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아는 친한 동생 4명을 불러다 놓고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마다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어주더니 결국 포교사가 되었다. 이 사람들은 19기 포교사가 되어 큰일을 많이 해낸 도반들이다. 이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면서 여기에서도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밤 꿈에서도 팔상도 설명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는데 많은 무리 속에서 낯이 익은 분이 듣고 계셨다. 확 스쳐가는 느낌, “부처님이시다”하면서 서로서로 마주보면서 미소를 지은 적도 있었다.

사찰문화해설 울산팀을 잠깐 소개하자면 16기 포교사가 4명이 투입되면서 전체인원이 16명으로 늘었다. 16기 포교사 4명이 함께 하기 전 울산팀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매월 첫째주 일요일은 양산 통도사 전체 팀활동을 하는 날이다. 2주, 3주, 4주 일요일은 12명이 3개조로 나누어 언양 석남사에서 당번제로 들어가 활동한다. 그런데 통도사 전체 팀활동 날에 보면 12명 중 해설을 하는 사람은 고작 두 명 밖에 없다. 이 두 명은 죽어라 해설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떨기에 바빴고 정해진 팀활동 끝나는 시간도 있었지만 언제 다 가버렸는지 한명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석남사에는 당번 되시는 분이 들어오는 날보다 아무도 안 오시는 날이 더 많았다. 그 동안 팀 활성화를 위해 이런저런 독려를 해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16기 포교사들이 투입되면서 평담 팀장님은 “지금부터 들어오는 신입 포교사들을 트레이닝 잘 시켜 팀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서원했다.

이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며 해설봉사에 전력하는 사이 울산지역단은 울산경남지역단에 소속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통도사에는 울산팀이 아니더라도 통도사 자체에서 해설 봉사팀도 있고 또 다른 지역단에서도 해설하러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석남사에는 우리팀이 아니면 해설봉사를 할 팀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설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석남사를 개척하고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매주말마다 또는 평일에도 해설봉사 요청을 받아 절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사실 석남사는 13기 포교사 평담 팀장님이 해설 봉사하러 들어가기 이전에 선배 포교사들이 해설봉사를 했다고 하는데 활성화는 되지 못했다. 16기 포교사들이 들어가서 보니 평담 팀장님 홀로, 거의 홀로 꾸역꾸역 길을 닦고 계셨고 여기에 16기 법문님과 내가 합류하면서 셋이서 죽을 판 살판 해설봉사에 전력하게 되었다.

석남사는 역사 좋고 스님 좋고 풍경 좋은 곳이었지만 종무소 재무 스님께 전해 들은 말씀으로는 살림살이가 참으로 빠듯하고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 드릴 방법이 없을까”하고 궁리한 끝에 스치는 한 가지 묘안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을 이용해 연등접수를 받아드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원은 평담 팀장님, 법문님, 나 이렇게 셋으로 역부족이었다. 정말 해설사 수가 없어서 더 이상 큰일은 못하겠구나를 실감하며, 생각 끝에 내가 사찰문화해설을 처음 공부할 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어 준 동생들이 생각났다. 이들은 틈틈이 석남사 운력에도 동참하고 있던터라 포교사 될 것을 권유했더니 흔쾌히 찬성, 불교대학에 입문하는 동시에 사찰문화해설사에 필요한 공부까지 트레이닝 시켰다. 이때부터 ‘도솔래의상’ 한편에도 옛날 이야기하듯 스토리가 있는, 탐방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맞춤식 해설, 스토리텔링식 해설을 만들어 같이 트레이닝 시켰다. 이런 절차를 거쳐 19기 포교사가 되니 품수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온갖 일들을 해냈다.

석남사로 19기 포교사가 들어오면서 두 배로 늘어 난 팀원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면서 석남사 행사 때마다 운력을 도맡아 했다. 공양간 향로전 뒷정리도 척척, 연등접수와 기와불사 받기도 척척, 마당에 연등달기도 척척, 또는 스님들께 가사불사, 하안거 동안거 대중공양과 신도 법회날 떡 보시와 달력보시까지 힘닿는 대로 동참했다. 단합 잘 되고 솔선수범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서로서로 격려하며 많은 일을 해냈다. 특히 19기가 들어오면서 부처님오신날을 대비해 한 달 전부터 연등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우선 연등접수를 권할 때 누가 들어도 합당한 문구를 만들어 다 같이 연습도 했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마치고 보니 사리보탑전에 일년등 십만원등과 마당등 삼만원 등을 다 채웠다. 사리보탑전에는 등줄이 모자라 등줄을 더 쳤다. 석남사 생긴 이래로 최고로 많이 받았다 했다.

지금 우리팀은 순풍에 돛단 듯 잘 굴러간다. 포교사의 길로 접어든 이후 한 번도 빼먹지 않은 팀 활동 후기가 내 재산이며 이 재산들은 카페나 블로그나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얼굴 나고 이름 나고 박수 받으며 거침없는 해설을 쏟아내는 석남사 해설팀원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나는 알고 있다. 그 팀이 잘 돌아가고 뿌리내리려면 누군가의 피눈물 나는 희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부처님의 법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언제나 사필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은 꼭 부처님 일을 해봐야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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