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정현종의 ‘나무에 깃들여’
32. 정현종의 ‘나무에 깃들여’
  • 김형중
  • 승인 2016.05.16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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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만 나무에서 산다고 착각 사람도 나무 기대어 사는 존재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내 삶 자체가 생명의 축복
고마움 모르는 범부들 질책
선사 깨달음 노래와도 유사

‘화엄경’에서 “기이하다. 기이하다. 생명체가 있는 일체 중생이 여래부처의 지혜 덕성을 모두 다 갖추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사람은 그대로 부처의 성품인 불성을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났다. 본래가 금덩어리로 태어났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수행은 은을 닦아서 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내 자신이 금덩어리 부처인 줄 알면 그대로 부처이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돈오이다. 우리는 본래 성불한 부처이고,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소우주라는 큰 집 한 채를 보듬고 온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은 ‘수심결’에서 “내 마음이 부처요 내 성품이 진리인 줄을 모르고, 가려진 상태로 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부처와 진리는 성현들이나 가지고 있고, 나에게는 없다고 단언하는 미혹 중생이 있다”고 하여 어리석은 범부 중생을 경계하고 있다.

정현종(1939~ ) 시인은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경책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무들이 새들과 벌레들만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좋은 나무로 짓고, 옷장, 밥상, 책상 모두 다 나무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 진정 나무속에 살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나무속에서 살아간다고 착각하고 잘못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완성체인 줄 모르고 살아간다. 세상의 만물이 그대로 부처의 세계를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다. 만물이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화엄성기(華嚴性起)이다.

중생은 자신이 이 세상에 기생해서 붙어사는 조무래기 하찮은 중생이라 생각하고 커다란 무지(無知)의 ‘집통’을 짊어지고 킹킹거리며 산다. 부처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범부는 자연 속에 살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 형제, 이웃들의 고마움 속에 살면서도 모르고 살아간다. 내 생명의 축복과 기적 속에 살고 있는 삶에 대하여 모르고 염세적으로 원망만 하며 살고 있다. 세상은 부르주아만의 세상이라고 증오만 하고 살고 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불성을 깨닫고, 이 세상이 화엄정토 부처님의 불국정토임을 깨달으면 날마다 일마다 행복한 삶이다. 자심정토(自心淨土)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불법을 만난 것 그 자체가 행복이고 기적이다. 못 생겼어도, 가난해도 이 사실을 알면 삶이 기쁨이요, 기적이요, 경이로움이다. 여기에 고통과 불행이 끼어들 틈새가 없다.

타고난 본래 참된 성품대로 자비심으로 살면 모두가 행복하다. 범부 중생은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인 줄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자기 패를 만들고 구분해서 비교하고 차별하면서 고통과 불행 갈등을 일으켜서 고해를 헤맨다.

시인은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 자연의 주인공으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늘과 땅의 축복 속에서 지금 이 땅에 생존하고 있다. 부처의 덕상(德相)을 내 마음속에 구족한 완성체이다. 이 도리만 알면 바로 돈오 부처요, 모르면 깜깜 중생이라고 시인은 결구(結句)하고 있다. 한 편의 깨달음의 노래요, 선사의 설법시와 같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까만 중생에게 이 소식을 일깨워주시기 위함이다.

정현종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과 2015년에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한 원로시인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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