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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자녀가 느끼는 가정: 탐욕형

부모 기대 만족시키려는 공부는 분노씨앗 만들어

고2 소명이는 전교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인데다 학교생활도 성실한 편이라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런 소명이를 유독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있으니 시험발표다. 만일 전교 석차가 1, 2등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소명이 얼굴엔 웃음이 사라진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나약하고 우울해했다. 중학교 교사인 엄마가 소명이의 성적에 유독 집착하여 석차가 뒤로 밀리기라도 하면 무섭게 질책하고 매질도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모두는 그 탐욕에 혀를 찼다. 그런가하면 대학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있어 관심을 끈다.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생들이 털어놓은 속마음은 ‘고등학교까지는 내가 원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성실히 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결과 스스로 원해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혼자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대학생활 적응에도 문제를 보인다는 것이다. 부모의 탐욕심이 자녀를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는 병폐현상이다. 오죽하면 일부 극성엄마에 대한 신조어로 ‘헬리콥터맘’ ‘잔디깍이맘’이 회자되겠는가?

돈·권력·학업 등 결핍의 한
충족하려다 탐욕심만 키워
아귀처럼 고통 속에 내몰려

부모의 탐욕에 순종하며 자란 아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①부모의 간섭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거절도 못한다. 왜? 부모의 기대를 외면하고 자기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자신감이나 용기가 없다. ②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잃지 않으려 순종한다. 왜? 사랑을 잃는 것은 두렵고 불안한 일이다. ③부모의 탐욕심 때문에 자기인생이 뒤틀린 것 같아 부모에 대한 분노가 많지만 표현도 못한다. 대신 인간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생긴다. ④자신의 무능감을 탓하며 자기비하와 정체성 혼란으로 시달린다. 더 심해지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부모는 잘못된 욕망으로 오염된 사랑이 의도와는 달리 자녀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연 탐욕의 뿌리는 무엇일까? ‘결핍’이다. 어린 시절 느꼈던 결핍들(돈, 권력, 공부, 외모 등)로 무시당한 경험은 평생의 상처로 마음 깊은 한(恨)을 형성한다. 이 결핍의 한을 비상식적, 이기적으로 충족하려는 것이 탐욕이다. 탐욕은 말, 행동, 생각으로 표현되거나 세상을 향한 열정이나 소원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낼 수 있다. 예컨대 어린 시절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무시당한 경험은 재물을 탐해 놀부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벌이로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으며, 학벌에 한을 가진 사람은 그 결핍을 자녀가 대신 풀어주기 원한다. 흔히 자녀가 원해서가 아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부모의 뒷바라지나 열정도 알고 보면 탐욕의 한 형태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숫타니파타’에서 말씀했다.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그를 해탈시켜줄 수도 없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눈앞의 욕망에만 빠져든다.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거기에 빠지며 인색하고 옳지 못한 일에 친근하지만 죽을 때는 괴로움에 짓눌려 슬퍼한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욕망의 무상함과 그릇된 행동을 후회하며 고통으로 슬퍼한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욕망은 고통을 동반한다. 마치 아귀가 바늘귀만한 좁은 목구멍으로 태산 같은 욕망의 배를 채우기란 불가능하여 늘 결핍으로 고통스러워하듯이 욕망은 신기루와도 같은 허상이다. 탐욕을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타인의 관심’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칭찬에 행복을 느꼈듯이 타인의 인정을 계속 받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릇된 욕망추구는 주위를 먼저 괴롭히니 타인의 인정을 어떻게 받겠는가?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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