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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스님들의 삶 좇는 숭고한 구도기

  • 불서
  • 입력 2016.05.16 16:01
  • 수정 2016.05.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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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
밑바닥까지 고꾸라지는 듯한 좌절감과 더 이상 붙잡을 게 없다는 절망감.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 느낄 감정이겠지만, 누구나 이러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빛 없는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스러지거나 좌절감과 절망감을 행동으로 분출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그것을 무심코 바라보는 자신 또한, 언젠가 마찬가지의 선택을 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지남(指南)이 필요한 것은,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북극성이 필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져 깨지고 흐느껴도 다시금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내기 위해서다.

여기, 먹구름에 가려 가뭇없었던 북극성이 저 너머에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책이 있다. 미술평론가 조정육씨의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가 그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을 비롯해 인도, 중국, 일본의 고승대덕 48명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원효, 의상, 의천, 지눌, 나옹 스님에서부터 아난과 가섭, 마명, 용수, 무착과 세친, 도안, 혜원, 구마라집, 현장, 혜능, 마조, 조주, 임제, 호넨, 신란, 잇펜 스님까지 기라성 같은 수행자들의 삶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이들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한 전등의 역사였다. 부처님이 밝힌 진리의 등불이 스님들의 원력과 실천으로 곳곳에 전해졌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다. 아는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 입으로 말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남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적용하는 것. 그것이 실천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감할 때 남는 것은 오로지 행위뿐이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무엇을 실천하며 살아왔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막막할 때 불법승 삼보는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수행과 실천이라는 거대한 삶, 그 거룩한 여정을 좇다보면 어느새 북쪽 하늘서 반짝이는 불법이라는 이름의 별을 발견하게 된다. 내면의 불성을 믿고, 그 불성이 이끄는 대로 우직하게 걸어갔던 스님들은 이미 그 길을 몸소 보여줬음이다. 눈 감으면 사라질 것이되, 보고자 하면 기필코 보이고야 마는 길. 이 책을 손에 쥔 순간, 먼발치서 손 흔들고 있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지금 이곳, 우리네 삶을 행복으로 감싸줄 것이다.

▲ 작자 미상, ‘산월아미타도’, 교토 젠린지 소장.

저자가 안내하는 여정에는 동양화라는 듬직한 도반이 있다. 저자는 스님의 이야기를 앞세워 옛 그림 이야기를 펼치거나 옛 그림을 통해 스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불화뿐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사군자, 병풍화 등 다채롭다. 동아시아 미술사를 장식한 걸작들은 단순히 스님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한 소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미술 교양서 저술로 오랫동안 옛 그림 대중화에 앞장서온 저자의 내공은 스님들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각각의 동양화들을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사이초, 구카이 스님은 ‘산월아미타도’의 대처보살이 됐고, 황벽선사의 삶은 꽃을 피워내기 위해 한철골을 견딘 ‘매화산조’ 속 매화가 됐다. 스님과 그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불법에 다름 아니다.

하나 더. 이 책은 3년에 걸친 대장정의 결실이다. 저자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법보신문에 ‘옛 그림으로 배우는 불교이야기’의 불·법·승 삼보 시리즈를 연재했다.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는 ‘승’에 해당한다. 2014년, 부처님의 생애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와 2015년, 부처님 말씀 ‘옛 그림, 불법에 빠지다’를 발간했었다. 저자 스스로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고백할 만큼 환희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1주일에 한 번씩 방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러하기에 저자의 대장정은 곧 구법의 길이었고, 세 권의 책에서는 날로 그윽해지는 저자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알고 보면 삶은 진솔하다. 부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과의 진리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눈앞의 현실이 지금까지의 삶이었고, 앞으로의 삶은 눈앞의 현실이다. ‘옛 그림, 스님에 빠지다’를 통해 우리는 삶과 현실을 뒤흔들 숭고한 길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2만5000원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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