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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연합’, 더 이상 그 이름 쓰지 말라

부자를 보고 “잘 산다”고 하는 말을 쓰게 되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 해야 될 것과 하면 안 될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하면 된다!”를 강조하면 윤리와 법도가 무너진 세상을 낳게 한다. 이렇듯 말이라는 것은 바로 생각을 결정하고, 결국 그것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말을 바로잡지 않고는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바로 이름이다. 그래서 공자가 그토록 ‘이름을 바로잡음’[正名]을 강조했을 것이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결국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공자가 이야기한 ‘이름을 바로잡음’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잘못 쓰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보게 된다. ‘어버이 연합’이란 말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버이’란 어떤 말인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니 곧 부모라는 말과 같다. 그러면서도 어버이란 말에는 참으로 우리가 담아낼 수 있는 존경과 사랑을 자아내는 고유한 어감이 있다. 그만큼 소중하고도 따뜻한 의미를 우리 마음에 드리우고 있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그 어버이란 말은 우리가 우러러 그 이름을 바칠 수는 있으되, 스스로 자기가 어버이라고 자처하고 나서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하는 스승의 날 노래에서 나타나듯이, 우리가 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바쳐야 될 대상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내가 어버이다”라고 나서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말에 대한 폭행이며, 그 소중한 말에 의해 형성된 우리 마음의 소중한 둥지를 망가뜨리는 일이다. 엄청난 폭력이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혹시 “각하 연합” 또는 “폐하 연합”이라는 단체가 나선다면 어떨까? 좀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우스운 일로 치부될 것이다. 남들이 높여서 불러야 할 말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것은 그만큼 우스운 일이다. ‘어버이 연합’이라는 말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각하’ ‘폐하’라는 말은 그 지위에 대한 존칭일 뿐이다.

그러나 어버이라는 말은 그런 외적인 지위에 대한 높임말과는 다르다. 우리 마음의 고향이며, 영원히 그 은혜에 감사드리고 받들어야 될 부모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 칭호를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고, “우리가 너희들의 어버이다”라고 나서는 단체를 지금껏 그냥 두고 보았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더더구나 그 단체가 하는 일이 어떠했던가? “아! 그래도 어버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 존경스러운 일을, 자식이 잘못할 때 어버이가 나서듯 하는 단체로구나!”하는 느낌을 주었던가? 결코 아니다. 극히 일부의 집단이나 세력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버이답기는커녕, 어버이라는 이름에 모독을 끼치는 그런 행태를 보여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어버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우리들 마음의 소중한 둥지에 대하여 폭행을 해 왔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을 두고 보아왔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소중한 의미들을 지키는데 소홀히 해왔다는 것이다. 어버이를 둔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단순히 ‘좀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태’라는 정도로 웃고 넘어가거나,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수준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엄하게 요구하여야 한다. 그 이름을 쓰지 말라고! 말로 호소해서 안 된다면 좀 더 강한 수단에 호소해서라도 그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말을 다듬고 지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다듬고 지키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가치를 올바로 세우는 것이다. 결코 개인적인 호오에 그칠 일이 아니다. 뜻과 힘을 모아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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