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에는 새로 생긴 학교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부부처의 이전으로 도시가 새로 생겼고 이주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또한 새롭게 생겨난 탓입니다. 얼마 전 그곳의 고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아주 특별한 강의초대를 받았습니다. 교사연수를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한 사찰에서 하는데, 산사로 찾아와 선생님들과 만나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몇 년 전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사찰에서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나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특별하고 좋았던 느낌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범인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그 경험을 다시 해본다는 기쁨에 나는 흔쾌히 강의를 수락했습니다. 산사에서의 강의라….
가랑비가 내리는 오후, 세종의 신도시를 통과한 뒤 외곽으로 10분 남짓 더 길을 달리자 신도시의 살풍경이 가셨습니다. 지도의 안내를 따라 큰 도로에서 꼬불꼬불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지나치는 모든 풍경은 5월 초의 숲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숲이 이루어낸 계곡 옆으로 좁다란 길이 이어졌습니다. 길의 끝까지 올라가자 목적한 사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절 자리는 아늑했습니다. 그렇게 깊지 않은 산사의 뒷배를 이루는 숲의 좌우측 능선은 작은 사찰로 제 골격의 윤곽을 흘리고 또 모아내고 있었습니다. 산사는 그 숲의 배꼽자리 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숲이 키운 전체 계곡을 아늑하게 발원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주지스님과 절 내의 어느 큰 방에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댓돌 옆에 이미 놓여 있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가지런했습니다. 나도 그곳에 고요히 신발을 벗어두고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좌중은 고요히 움직여 뒤늦게 합류한 나를 위해 빈자리를 만들었고 스님은 그 자리에 두터운 방석을 내주시며 자리를 권하셨습니다.
내게 연꽃차를 권하시며 스님은 내게 선생님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선생님들께 선(善)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 답을 듣던 중입니다. 선생님들이 선(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가르치는 학생들이 선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답이 신통치가 않아요.” 스님은 잠시 숨을 고르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당신은 선(善)에 대해 뭔가 말을 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렇게 공을 내게 넘기려 하시다가 다시 아직 대답하지 않은 선생님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아직 대답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대답을 이어 봅시다. 그래, 선(善)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몇 분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다시 질문이 내게로 향할 듯싶어 나는 미리 마음속으로 나의 대답을 준비해 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당신도 잠시 이 글을 멈추고 대답을 준비해 보시지요.
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산사로 올라오는 길에 노란색 민들레 몇 포기를 보았습니다. 비를 맞은 모습이 청초했습니다. 주차장 곁에서는 막 피려는 수국도 보았습니다. 그 민들레와 수국이 피워내는 꽃 속에서 저는 선(善)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또한 진(眞)도 보았고 미(美)도 보았습니다.’
민들레 꽃 한 송이에서 진과 선과 미를 보았다?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내 대답을 스님이 들으셨다면 스님은 그 속뜻이 무엇이냐 물으셨을 듯합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 몇 분이 스님께 전하는 그들의 견해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부연(敷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숲에서 꽃을 지켜보았습니다. 깊게 보니 꽃은 모두 자신을 위해 핍니다. 민들레 역시 저 자신을 위해 그 노랗거나 하얀색의 꽃을 피웁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피어나는 꽃들은 동시에 그 꽃으로 누군가를 일으켜 세웁니다. 어떤 때는 벌을, 어떤 때는 꽃등에나 파리, 혹은 이름 모를 어떤 벌레들을 인연 따라 불러 세우고 그들에게 제 꽃 속의 꿀이나 꽃가루를 나누어줍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피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꽃들의 행위에 바로 선(善)이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또한 진(眞)이요 미(美)입니다. 어떠한 민들레도 아무리 화려해 보인다 해도 제 곁의 수국이나 수선화를 흉내 내려 하지 않으니 제 삶에 거짓이 없어 진(眞)이요, 또한 오직 저 자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으로 세상과 마주하니 그것이 바로 참된 미(美)입니다.’ 나는 그렇게 답을 준비했으나 내게는 대답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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