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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善)이 무엇이냔 스님 질문에

기자명 김용규

“자신 위하면서 동시에 누군가 이롭게 하는 행위”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새로 생긴 학교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부부처의 이전으로 도시가 새로 생겼고 이주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또한 새롭게 생겨난 탓입니다. 얼마 전 그곳의 고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아주 특별한 강의초대를 받았습니다. 교사연수를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한 사찰에서 하는데, 산사로 찾아와 선생님들과 만나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몇 년 전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사찰에서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나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특별하고 좋았던 느낌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범인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그 경험을 다시 해본다는 기쁨에 나는 흔쾌히 강의를 수락했습니다. 산사에서의 강의라….

가랑비가 내리는 오후, 세종의 신도시를 통과한 뒤 외곽으로 10분 남짓 더 길을 달리자 신도시의 살풍경이 가셨습니다. 지도의 안내를 따라 큰 도로에서 꼬불꼬불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지나치는 모든 풍경은 5월 초의 숲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숲이 이루어낸 계곡 옆으로 좁다란 길이 이어졌습니다. 길의 끝까지 올라가자 목적한 사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절 자리는 아늑했습니다. 그렇게 깊지 않은 산사의 뒷배를 이루는 숲의 좌우측 능선은 작은 사찰로 제 골격의 윤곽을 흘리고 또 모아내고 있었습니다. 산사는 그 숲의 배꼽자리 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숲이 키운 전체 계곡을 아늑하게 발원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주지스님과 절 내의 어느 큰 방에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댓돌 옆에 이미 놓여 있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가지런했습니다. 나도 그곳에 고요히 신발을 벗어두고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좌중은 고요히 움직여 뒤늦게 합류한 나를 위해 빈자리를 만들었고 스님은 그 자리에 두터운 방석을 내주시며 자리를 권하셨습니다.

내게 연꽃차를 권하시며 스님은 내게 선생님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선생님들께 선(善)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 답을 듣던 중입니다. 선생님들이 선(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가르치는 학생들이 선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답이 신통치가 않아요.” 스님은 잠시 숨을 고르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당신은 선(善)에 대해 뭔가 말을 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렇게 공을 내게 넘기려 하시다가 다시 아직 대답하지 않은 선생님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아직 대답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대답을 이어 봅시다. 그래, 선(善)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몇 분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다시 질문이 내게로 향할 듯싶어 나는 미리 마음속으로 나의 대답을 준비해 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당신도 잠시 이 글을 멈추고 대답을 준비해 보시지요.

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산사로 올라오는 길에 노란색 민들레 몇 포기를 보았습니다. 비를 맞은 모습이 청초했습니다. 주차장 곁에서는 막 피려는 수국도 보았습니다. 그 민들레와 수국이 피워내는 꽃 속에서 저는 선(善)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또한 진(眞)도 보았고 미(美)도 보았습니다.’

민들레 꽃 한 송이에서 진과 선과 미를 보았다?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내 대답을 스님이 들으셨다면 스님은 그 속뜻이 무엇이냐 물으셨을 듯합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 몇 분이 스님께 전하는 그들의 견해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부연(敷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숲에서 꽃을 지켜보았습니다. 깊게 보니 꽃은 모두 자신을 위해 핍니다. 민들레 역시 저 자신을 위해 그 노랗거나 하얀색의 꽃을 피웁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피어나는 꽃들은 동시에 그 꽃으로 누군가를 일으켜 세웁니다. 어떤 때는 벌을, 어떤 때는 꽃등에나 파리, 혹은 이름 모를 어떤 벌레들을 인연 따라 불러 세우고 그들에게 제 꽃 속의 꿀이나 꽃가루를 나누어줍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피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꽃들의 행위에 바로 선(善)이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또한 진(眞)이요 미(美)입니다. 어떠한 민들레도 아무리 화려해 보인다 해도 제 곁의 수국이나 수선화를 흉내 내려 하지 않으니 제 삶에 거짓이 없어 진(眞)이요, 또한 오직 저 자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으로 세상과 마주하니 그것이 바로 참된 미(美)입니다.’ 나는 그렇게 답을 준비했으나 내게는 대답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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