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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부처님오신날 설득커뮤니케이션

번뇌 훌훌 털어내고 부처님과 만나는 장 돼야

가정의 달 5월, 어린이날에 이어 열린 ‘부처님오신날’은 전국적인 축제의 장이었다.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은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아홉 마리 용이 향기로운 물로 깨끗이 씻겨드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은 태어나면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손은 하늘,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도 아당안지” 즉, ‘하늘과 땅위에 오직 나홀로 존귀하다. 일체중생이 고통 속에서 헤매니 내 마땅히 저들을 구제하여 평안케 하리라.’

아기부처님 오신 진정한 뜻은
진리 이해와 참다운 나 발견
온 누리 밝히는 자비 실천해야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의 평안과 인간 존엄성과 평등을 향한 메시지다. 일회적 삶이 아닌 윤회 속에서 영원한 삶의 길, 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의 길임을 일러주었다. 그래서 각 종단 어른들은 봉축메시지를 ‘희망·화합·믿음을 만드는 밝은 공동체’ ‘참 생명의 길’ ‘자비광명’ ‘소욕지족의 삶’ ‘생명평화와 자비실천’ ‘지혜의 등불’이라고 짧지만 부처님 탄생의 의미를 반추하고 내일을 향한 화두를 전했다.

‘부처님오신날’의 참 뜻은 바른 진리의 이해와 참다운 나의 발견, 결박한 욕망을 풀고 연꽃처럼 거듭나 나를 찾고 온 누리에 어둠을 밝히는 자비의 실천이다. 그래서 등불은 곧 진리에 비유됐다. “부처님 말씀은 마치 등불이 빛을 밝히는 것과 같다.”(‘대반야경’), “수백 수천 개의 등불을 밝혀 죄를 참회하게 한다.”(‘보살장경’) 그러나 여전히 등을 달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은 절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생의 운명은 늘 그렇게 공존공생 해왔는지도 모른다.

“옛날 인도의 사위국이라는 나라에 ‘난다’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늘 부처님께 등을 올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구걸하여 모은 돈 전부를 들여 작고 초라한 등 하나를 공양했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자 등불은 하나 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부자들의 화려하고 큰 등불도 모두 꺼졌다. 그러나 신기하게 가난한 여인의 등만은 새벽이 밝아오도록 꺼지지 않았다. 이에 목련존자가 부처님께 까닭을 묻자, 부처님은 여인의 등불은 ‘지극한 마음과 큰 서원으로 켜진 등불이다. 이 여인은 장래에 성불하리라’ 말씀했다.”(‘현우경’)

‘가난한 자의 등불’을 ‘지혜의 등불’로 해석한 것이 매우 경이롭다. 초은유적이고 기호학적 수사법이다. ‘대반열반경’에는 “중생은 번뇌의 어두움 때문에 큰 지혜를 보지 못하는데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서 보살의 열반에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올 연등회에서 봉축위원장 자승 스님은 개회사에서 “마음으로 밝힌 등불이야말로 사회를 소통하게하고, 마음에서 시작한 빛이 하나로 모여 밝은 거리를 더 넓게 열어가고 희망과 용기의 물결을 이루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곳, 우리가 보려하지 않았던 곳까지 환하게 비추어 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불교에서 ‘지혜’의 의미는 사전적 해석 그 이상으로 함의되어 확장된다.

이번 ‘법보신문’ 봉축특집호에는 실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의 축제마당과 이주민 및 불우이웃 돕기, 소소한 음악회까지 세대·계층간 단절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배려와 참여공간의 세심함을 곁들여 함께 즐기는 뉴스거리로 가득해 마음이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특히 ‘출가 자유를 향한 선택’ 기획물은 공중파의 행자교육 다큐방송과 오버랩 되어 큰 감동을 줬다.

이번 봉축행사는 불교가 권위와 난해함, 운둔과 소극적 이미지를 과감히 털어내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 민초가 부처가 되고 주인공이 되는 ‘한 마음’ ‘한 마당’ 축제였다. 설법의 진정한 목적 역시 대중 설득커뮤니케이션이다. 메시지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행위, 이성과 감성을 통해 심리적 동의를 얻는 행위, 메시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호·신호·표시·미디어로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행위, 심리적·물리적·신체적 매력을 공감케 하는 행위, 지도자가 수용자에게 실리적이거나 원칙 중심적이거나 존경받는 지도력으로 신뢰를 획득하는 행위 등은 공감과 감동커뮤니케이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실천적 설득커뮤니케이션의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진정 ‘부처님오신날’의 참 뜻이 나의 번뇌와 괴로움, 집착을 털어내고 누구나 부처와 만나는 장이라면 말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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