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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은 한국에서 신분이자 권력[br]사회 곳곳에 파고든 거대한 편견

기자명 이병두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 김동훈 지음 / 책세상

▲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권력이자 신분이며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좋은 학벌은 기득권 세력에 편입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개인에게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고양시켜주는 원천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학벌은 능력과 관계없이 엄청난 불이익, 차별, 소외를 경험하게 하며, 개인을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젖게 하는 심리적 장치가 된다. 이처럼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소수의 학벌취득자들이 사회적 권력과 재화, 명예를 독점하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이지만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학벌사회의 수혜자들인 그들이 학벌사회에 대한 암묵적인 공모를 하고 있다고 질책한다.

저자는 학벌사회인 우리 사회가 사회학적으로는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정치학적으로는 ‘붕당적 사회’, 경제학적으로는 ‘부와 권력을 소수 학벌 집단이 독점하는 독과점사회’,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가 되고 있다고 본다.

학벌은 재산처럼 직접적인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전쟁에서 부모들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 같은 문화 자본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통계조사에 따르면 중·하위층 자녀가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학벌을 통한 사회적 수직이동의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이제 ‘개천에서 용(龍) 나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다.

‘명문대’(저자는 한국의 이른바 명문대라고 하는 것은 본래 의미의 명문이라기보다는 권문에 가깝기 때문에 ‘권문대(權門大)’로 부르자고 제안한다)라고 하는 특정 대학 중심의 학벌은 저마다 자기들의 붕당적 이익을 확대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의 행복보다는 마치 조선 후기 당파 소속 관료와 지식인들처럼 패권적 지위를 차지해 권력과 과실을 독점하는 데에 가장 우선적인 목적을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조계 간부의 80%, 언론사 간부의 6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특정 학벌의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는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인 ‘재벌의 경제력 독점’에 버금간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이미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 등과 같이 모든 사회적 집단 무의식에까지 깊이 파고든 거대한 편견으로 존재한다. 논리적 설명보다 정서적이고 문화·심리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인데, 그럴수록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화합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무의식중에 학벌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서 학벌 편견을 공고하게 하는 주체가 바로 TV와 신문 등 대중매체로 이들을 상대로 한 싸움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학벌관념에서 자유로운 자야말로 한국사회의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하는데 상류층 인사와 지식인들 중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럼 해결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 여러 해법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학벌차별이 나타내는 우리 의식의 문화적 봉건성에 대한 철저한 자괴감, 뼛속까지 박힌 편견과 차별의 사고, 집단 뒤에 숨어 절대적 자아로 서지 못하는 전근대적 인간관 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론적 작업이 필요하고,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학벌 관념을 부숴나가는 일상의 혁명도 필요할 터인데 이런 운동은 누구보다 학벌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회 만들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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