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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탁실라 ② 보살의 비원(悲願)이 깃든 탁샤쉬라와 비유(譬喩)논사 쿠마라라타

부처님 전신 월광왕의 비원 품은 탁실라는 본생담 무대로 추정

▲ 관자재보살(왼쪽)과 미륵보살. 2~3세기 탁티 바히, 샤흐르 바흐롤 출토. 페샤와르 박물관. 간다라 지역에서 보살상은 다만 관자재와 미륵 두 분이었는데, 우리네 관음보살과는 사뭇 그 모습이 다르다. 위풍당당한 황제의 상이다. 보살은 사바세계라는 전쟁터에서 서원의 갑옷(誓鎧)으로 무장한 전사였다.

탁실라의 옛 이름 ‘탁샤쉬라’는 ‘자른 돌’ ‘쪼갠 돌’(takṣa-śilā)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그래서 세석(細石) 혹은 석실(石室)로 한역하기도 하지만, ‘잘려진 머리’(takṣa-śiras) 즉 절두(截頭)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절두’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본생담)에서 유래한 것이다. 혹은 어느 시기 불교도들이 ‘절두’라는 뜻의 탁샤쉬라를 부처님 본생담의 무대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탁실라의 옛 이름 탁샤쉬라는
‘자른 돌’ ‘쪼갠 돌’ 뜻에서 유래
‘잘려진 머리’ 뜻한 ‘절주’ 이해

나라의 안위 걱정한 월광왕이
자신의 머리 보시해 안정 찾아
아쇼카는 그곳에 스투파 건립

보살은 일체중생에게 눈 돌려
인류애를 구현하려고 한 영웅
사바세계라고 하는 전쟁터에서
서원의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
간다라 발견 초기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상은 장군 모습 닮아

쿠마라라타는 아쇼카 대왕이
탁샤쉬라를 징벌하고 모셔와
궁전을 가람으로 삼게 한 인물
마명·데바·용수 등과 더불어
세상을 비춘 4개 태양에 비유

“아득히 먼 옛날 8만4천의 나라를 거느린 찬드라프라바(Candraprabha, 月光)라는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2만의 부인과 궁녀가 있었고, 500의 태자가 있었으며, 사방 400유순의 그의 성은 금은수정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모두 복업의 결과임을 알고 8만4천의 나라에 영을 내려 일체 중생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보시하게 하였다. 그의 덕은 사방에 가득 찼다.

그 때 변방 소국의 왕인 비마세나(Bhimasena)가 이를 시기 질투하여 그를 없애려고 하였다. 노도차(Raudrākṣa)라는 바라문이 그 일을 맡았다. 나라에 온갖 변괴가 일어났고, 수타회천(天)이 월광왕의 꿈에 나타나 머리를 보시하여 완전(원만)한 공덕을 성취하기를 권유하고서 성문 밖에 왕의 머리를 갖고자 하는 바라문이 와 있음을 알렸다. 대신들이 칠보로 만든 500개의 머리를 준비하였지만, 그는 다만 왕의 머리를 원하였고, 왕은 마침내 일주일 후에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왕은 울부짖으며 만류하는 1만의 대신과 2만의 부인과 500의 태자에게 억겁에 걸친 선취와 악취로의 윤회를 이야기하고서 완전한 공덕을 성취하려는 자신의 길을 막지 말 것을 간청하였다. 바라문이 왕의 머리카락을 후원의 나무에 묶고 머리를 베려하자 나무 신이 신통으로 그를 제압하였다. 그러자 왕이 나무 신을 나무랐다.

‘나는 이미 이 나무 밑에서 999개의 머리를 보시하였다. 이제 남은 하나를 보시하여 완전한 공덕을 성취하리라.’

왕의 머리가 베어졌고 천지가 진동하였다. 천하가 찬탄하였다.

‘월광대왕이 머리를 보시하였고 보시바라밀이 완전하게 성취되었도다.…’

비마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다 질투에 심장이 터져 죽었고, 노도차 바라문 또한 피를 토하고 죽었다. 비마세나와 노도차는 아비지옥에 떨어졌고, 슬픔에 못 이겨 울부짖은 신민들은 모두 천상에 태어났다.”

사실 이 이야기는 불타의 반열반을 앞두고 먼저 열반에 든 사리불의 인연담으로 설해진 것으로, ‘현우경’ ‘월광왕두시품(月光王頭施品)’을 비롯한 ‘보살본연경’ ‘월광보살경’ ‘육도집경’ 등에도 나온다. 여기서 월광왕은 부처의 전신이었고, 비마왕은 파순, 노도차 바라문은 제바달타, 나무 신은 목련이었다. 그리고 월광왕의 머리를 요구하는 노도차에 분노하여 심장이 터져죽은 대월 대신이 사리불이었다.

400년 초 이곳을 방문한 법현은 ‘탁샤쉬라’라는 지명의 유래를 이 이야기에서 찾고 있다. 631년 무렵 이곳을 찾은 현장은 월광왕이 머리를 버린 곳에 아쇼카 왕이 세운 스투파가 있고, 여기에는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 몰래 와 참회하고 오물을 치우고 향과 꽃을 뿌린 인연으로 병이 낫고 몸에서 향내가 났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고 하였는데, ‘대비바사론’에서 이 이야기는 현생에 과보를 받는 업(順現法受業)의 예로 언급되고 있다. 이로 볼 때 탁샤쉬라의 사두(捨頭) 스투파와 이곳의 치유영험은 이미 ‘대비바사론’(2~3세기) 당시의 불교도들이 공유하였던 전설로 이해할 수 있다.

왜 하필 ‘문둥병’이었던가? ‘대지도론’에 의하면 월광왕은 태자 시절, 문둥병은 태어나 한 번도 성낸 적이 없는 이의 피와 골수를 바르고 마시면 낳을 수 있다는 의원의 말에 자신의 피와 골수를 뽑게 하였다. 이런 인연에서 동아시아에서 월광보살은 일광보살과 함께 약사불(藥師佛)의 협시보살로 약사불의 원(願)에 따라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보살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법의 사례로 언급된 본생(本生) 보살의 영웅적 행위가 인류중생의 고귀한 염원으로 간주되고, 마침내 이러한 염원을 지닌 대승 보살로 등장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일부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이들은 대승의 보살을 힌두교의 (귀)신이라고 험담하고 대승이 추구한 영원불변의 절대정신을 한갓 천박한 수준의 유아론으로 비하하기도 하지만, 보살은 개인의 실존(생사윤회)이 아닌 일체중생으로 눈을 돌려 인류애(자비)를 구현하려 한 영웅이었다. 보살은 사바세계라는 전쟁터에서 서원의 갑옷(誓鎧)으로 무장한 전사였다. 아마도 간다라에서 발견된 초기의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상이 장군의 모습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에 따라 초기불교를 업(業)의 불교로, 대승불교를 원(願)의 불교로 규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 파키스탄에서 파미르 고원의 쿤자랍 고개를 지나 처음으로 당도하게 되는 중국 도시 탁슈쿠르간 고성. 여기서 중국의 서쪽 변방 도시 카슈가르까지는 300㎞, 간다라의 탁실라까지는 1000㎞. 현장법사에 의하면 옛날 이곳 카르반다(朅盤陀國)의 아쇼카(無憂) 왕이 군대를 일으켜 탁샤쉬라를 정벌하고 쿠마라라타(童授) 존자를 모셔와 자신의 궁전을 그를 위한 가람으로 삼았다고 한다.

▲ 탁실라를 발굴한 존 마샬 경에 의해 월광왕의 사두(捨頭) 스투파로 비정된 발라르(Bhallar)의 스투파. 현존 탑은 중세 초기의 것이라 한다. 탁실라 박물관에서 북쪽 8㎞ 지점 하발리안 행 철로 변에 위치한다. (출처 flickr.com)

아무튼 현장법사는 월광왕을 기린 사두(捨頭) 스투파에 대해 이야기하고서, 이곳 승가람에서 여러 종류의 논서를 저술하였다는 탁실라 출신의 논사 한명을 소개한다. 쿠마라라타(Kūmāralāta, 童受)이다. 그는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그는 ‘부법장인연전’에서는 협 존자(제9조)-마명(제11조) 등을 이은 제18조로 전해진다. 귀로에 다시 이곳 탁샤쉬라를 찾아 사두 스투파에 예배한 현장은 험준한 파미르 고원의 나라 카르반다(Karbandha: 오늘날 중국령 탁슈쿠르간)를 지나면서 다시 쿠마라라타와 조우한다. 옛날 이 나라의 아쇼카(無憂) 왕이 군대를 일으켜 탁샤쉬라를 정벌하고 쿠마라라타 존자를 모셔와 자신의 궁전을 그를 위한 가람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마치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구마라집을 초빙하기 위해 쿠자국을 정벌하였듯이 카르반다의 아쇼카 역시 쿠마라라타 존자를 초빙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탁슈쿠르간에서 탁실라까지 대략 1000㎞, 그것도 700㎞ 이상이 카라코람을 넘는, 잔도(棧道)로 불리는 천 길 낭떠러지의 험로이다. 현장에 의하는 한 쿠마라라타는 경부본사(經部本師)였다. 당시 천축의 동쪽에는 마명이 있었고, 남쪽에는 데바가, 서쪽에는 용수가, 그리고 북쪽에는 동수(쿠마라라타)가 있어 세간에서는 네 개의 태양이 세상을 비춘다고 말할 정도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없지만, 태양이 어느 곳 비추지 않는 데가 없듯 그의 이름 또한 곳곳에 나타난다. 현장의 고제 규기(窺基)는 현장의 전언에 따라 그가 태양에 비유된다 하여 일출론자(日出論者), 온갖 기이한 이야기(奇事)를 모아 ‘유만론(喩鬘論)’을 지었기 때문에 비유자(譬喩者) 곧 경량부의 본사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구마라집 계통의 길장은 그를 ‘성실론’의 저자인 하리발마(250∼350C)의 스승으로 설일체유부의 달마사문 혹은 카슈미르 유부 학장(學匠)으로 전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중앙아시아에서 오늘날 마명의 저술로 전하는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의 범본 사본(全90장 중 75장)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서는 책의 제목을 ‘성자 쿠마라라타가 분별 장엄한 비유집성(Dṛṣṭānta-mālā)’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대장엄론경’은 쿠마라라타의 ‘비유집성’(규기가 전한 ‘유만론’)이 당시 명성이 자자하였던 마명의 이름으로 전해졌거나, 혹은 반대로 마명의 저술이 쿠마라라타에 의해 개작되어 ‘비유집성’으로 불려졌다고 볼 수 있다.

쿠마라라타가 경부본사라는 전승도, 혹은 카슈미르 유부학장이라는 전승도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마명과는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 마명은 주지하듯 불타의 일대기를 총 28장으로 정리한 ‘불소행찬’의 저자로, 중인도 파탈리푸트라를 정벌한 카니시카 왕의 요청으로 당시 간다라의 수도 푸루샤푸르(페샤와르)에서 활동하였다.(13회 참조) ‘출삼장기집’ ‘살바다부기목록서(薩婆多部記目錄序)’에서 쿠마라라타는 마명의 제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쿠마라라타의 ‘비유집성’에서 ‘비유(dṛṣṭānta, 혹은 avadāna)’는 다만 예증(example)이나 비유(metaphor)의 의미만이 아니라 고원의 이상과 심오한 교법을 민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 전설, 전기, 우화, 설화를 비롯한 현실에서의 예화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실제 ‘대장엄론경’은 경설과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비유·인연·본생·전설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집성(장엄)한 것이다.

앞서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 월광왕의 사두 스투파에 향과 꽃을 바친 공덕으로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이 책 제66화에서 “불탑에 공양하는 공덕은 매우 크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공양해야 한다”는 경설의 인연으로 설해진다. 이야기는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이 불족(佛足)에 예배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색다른 향기의 출처에 대해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옛날 가섭불이 열반에 들었을 때 가시(伽翅)라는 왕이 큰 칠보 탑을 세우고 나라 안의 모든 꽃을 공양하였다. 그 때 한 장자의 아들이 음녀와 사랑에 빠져 불탑의 꽃 한 송이를 가져다 그녀에게 주었다. 곧 후회하고 참회하였지만, 몸에 종기(瘡)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하였던 것이 점점 커져 온몸에 가득 찼고, 그것이 터져 더러운 냄새도 풍겼다. 백약이 무용하였다. 값비싼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장자의 아들은 생사에 염오(厭惡)의 마음이 생겨 미련이 없어졌다. 이에 탑전에 향과 꽃을 공양하고 불신(佛身)에 우두전단향을 발랐다. 그러자 몸의 종기가 점차 낫기 시작하여 뜨거운 병고도 제거되었다. 죄업을 참회하고 일체지(一切智: 불타)를 찬탄하였다.

“여래 일체지께서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셨기에/ 가섭 정등각(三佛陀: 삼보리)께선 능히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시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아버지로 청하지 않아도 세간에 친구가 되어 주시니/ 오로지 불세존께서만이 능히 이러한 자비심을 가지실 수 있을 것이라네.”

그는 그 후 목숨이 다해 천상에 태어날 때도 인간으로 태어날 때도 몸에서 항상 향내가 났고, 형상도 보기 좋았기에 향신(香身)이라 이름 하였다. 이후 향신은 벽지불이 되었고, 지금 파사익왕이 맡은 향기는 바로 벽지불의 뼈에서 난 향내이다. 그러니 “불탑에 공양하라.”

비유(avadāna)는 세간 이야기나 노래(kavya) 형식을 빌린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12분교의 하나)로, 불타의 일대기를 집성한 마명이나 승가나찰(僧伽羅刹), 혹은 백 가지 비유를 모은 ‘백유경’의 찬자 승가사나(僧伽斯那), ‘법구경’의 게송을 교훈이 될 만한 세간 이이기로 해설한 ‘출요경’의 찬자 법구 등이 이러한 형식의 저술을 남긴 논사들이었다. 초기의 중국 불교도들은 이들을 ‘보살’이나 ‘선사(禪師)’로 호칭하였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통속적인 대중교화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좌선삼매경’과 같은 선경(禪經)의 편찬자였기 때문이다. 비유문학이 선관(禪觀)과 관련 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당송시대의 선관도 필경 이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간다라는 비유문학의 산실이라 할만하다. 마명과 승가나찰은 카니시카왕의 요구로 간다라에서 활동하였으며, 쿠마라라타는 탁실라 출신이었다. 필경 대량의 비유(아바다나)가 삽입되어 그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도 이 같은 간다라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탁실라와 관련된 또 하나의 유명한 아바다나, 아쇼카왕과 그의 아들 쿠나라의 슬프디 슬픈 이야기(‘대장엄론경’ 제45화, 제27화)는 지면관계상 생략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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