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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키르티무카 또는 귀면(鬼面)

초기 불교사원서 사악한 힘 물리치는 신적 존재로 장식

▲ 인도 아잔타 19번 석굴 앞 좌측의 기둥머리. 뿔과 귀 그리고 입에 물고 있는 체인화 된 화환의 형태가 훨씬 단순화된 형태이다.

이것은 전 아시아적 현상이다. 인도와 네팔을 포함하여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이 얼굴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얼굴은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귀신의 얼굴 모습으로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얼굴도 있다. 그렇지만 불교와 힌두문화가 거쳐 간 모든 지역에는 유사한 귀면(鬼面)들이 있으며, 이것의 기원을 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한국에서도 사악한 기운을 쫓기 위해서 귀면와(瓦)를 지붕에 올리고 대문의 손잡이걸이를 귀면으로 장식하는가하면, 화로(火爐)장식도 귀면으로 했다. 절집의 기와나 벽면, 평방뺄목 부분의 단면, 화반(花盤), 또는 착고판 같은 곳에서 이 귀면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장식적인 기능을 포함해 사악한 기운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호의 기능을 위해 맡고 있었던 것이다.

키르티무카는 ‘명예로운 얼굴’
인도의 신화에서는 쉬바신이
자신의 몸에서 만든 분노의 신

5세기 금석문 따르면 키르티는
불당을 포함해 사원·왕궁 지칭
보살상의 보관이나 벽면 장식
기둥머리·주초 부근 등에 보여

이 귀면의 특성 가운데 적어도 인도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보이는, 그리고 불교 내에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귀면을 한정해서 키르티무카(kīrtimukha)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다른 기원을 갖는 귀면과 혼동을 막아주는 한편, 불교나 힌두문화에서 갖는 본래적 기능을 짚어보기에 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르티무카는 일반적으로 ‘영광의 얼굴’ 또는 ‘명예로운 얼굴’이라고 말한다. 키르티(kīrti)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일, 즉 명예를 뜻하며, 무카는 입이나 얼굴을 뜻한다. 때로 무카(mukha)는 전부(前部)나 입구(入口), 개구부(開口部)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물이나 인물을 보았을 때 처음 보게 되는 전면(前面)을 뜻한다. ‘무카’의 이러한 의미는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입의 의미보다 훨씬 넓게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건축적 용어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에게 다소 익숙한 인도신화에 따르면(대략 7세기경의 스칸다푸라나에 따르면), 키르티무카는 쉬바신이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낸 분노의 신 가운데 하나다. 신화에 따르면 쉬바신은 히말라야 산신의 딸 파르바티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이 때 마왕이었던 잘란다라(Jalandhara)는 삼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터라 오만방자할 뿐만 아니라 쉬바를 매우 시기하고 있었다. 쉬바가 아리따운 파르바티와 결혼하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잘란다라는 라후(Rāhu)를 전령으로 보낸다. 라후는 쉬바를 찾아가 가난한 쉬바는 파르바티와 결혼해서는 안 되고 잘란다라가 파르바티와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쉬바는 요기(Yogi)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여성이 필요 없으며, 다만 가정집을 전전하며 탁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란다라의 전령의 말에 화가 난 쉬바는 자신의 이마에서 공포의 괴물을 탄생시킨다. 이 괴물은 사자의 얼굴을 하고 눈은 불꽃과 같이 타올랐으며 머리카락은 곤두서 있었다. 또한 괴물이 쏟아내는 포효는 벼락과 같았다. 그리고는 곧장 라후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라후는 그 괴물에게 쫓기다 결국 쉬바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쉬바는 라후를 잡아먹지 말 것을 괴물에게 명령했으나 배고픔에 시달린 괴물은 쉬바에게 불평한다. 너무 배가 고프니 아무 것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 때 쉬바는 괴물 자신의 몸뚱이를 파먹으라고 명한다. 괴물은 자신의 꼬리부터 먹기 시작해서 얼굴을 뺀 자기 몸뚱이 전체를 남김없이 먹어버린다. 마침내 흉측한 얼굴만 남았으나 쉬바는 이 괴물이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 얼굴을 ‘키르티무카’ 즉 영광의 얼굴이라고 이름하고 쉬바 신전 출입문에 이 얼굴을 남겨 기릴 수 있도록 명하였다.

필자는 이 신화가 오래전부터 사원 장식에 사용되었던 키르티무카를 설명하기 위해 후대인들이 만든 인공신화의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인도 사원에서 키르티무카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설명은 다른 신화를 통해 더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훨씬 더 오래전부터 고대 인도인들에게 사원장식으로 활용되었던 키르티무카에게 망각된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네팔 박타푸르. 키르티무카가 나가를 물고 있는 키르티무카의 머리 양쪽에 마치 양과 염소의 뿔과 같이 휘어진 뿔이 보인다. 양쪽 얼굴 옆에는 날개를 표현했다.

키르티무카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음(또는 시간)의 얼굴’이라는 뜻의 칼라무카(kālamukha), ‘사자얼굴’의 뜻인 싱하무카(siṃhamukha), 또는 ‘다섯 개의 얼굴’의 뜻인 팡차박트라(pañcavaktra) 등으로 이름 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다섯 개의 얼굴’이라는 뜻의 또 다른 이름이다. 팡차박트라는 인도 미술용어로 귀면이 새겨진 장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는 ‘파드마 푸라나’에 간접적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 고대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건축적 관습을 엿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랑카(Laṅka)성에 사는 라바나를 공격하기 위해 라마(Rāma)가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라바나의 부하들이 잡혀 라바나의 비밀에 대해 고백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라바나의 성에는 귀면(鬼面)이 새겨진 나무판(pañcavaktra dāru)이 있는데 이것을 활로 쏴서 조각을 내면 성(城)이 함락되고 곧 라바나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예언이었다. 이 이야기는 건축장식으로 존재했던 키르티무카가 특정 건물의 입구나 전면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건물의 수호를 위해 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사원이나 건물의 존립, 그리고 소유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신앙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신화를 통해 나타나는 이러한 관습은 인도 미술 초기에도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위의 신화가 힌두교내에서 창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신의 신화적 설명과는 별개로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원에서는 초기부터 빈번하게 이 귀면의 장식을 활용해왔다. 아마도 아마라바티(Amarāvatī)나 아잔타(Ajanta)석굴 조각에서 이 귀면의 오랜 형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보살상의 보관(寶冠) 장식이나 벽면 장식에서 키르티무카를 찾아볼 수 있다. 또는 더 빈번하게, 꽃다발줄기를 물고 있는 키르티무카를
기둥머리나 주초 부근에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키르티무카’라는 말이 건축의 장식적 모티브로서의 귀면(鬼面)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얼굴’ 또는 ‘사원의 입구’ ‘사원의 얼굴’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원후 5세기경의 한 금석문에 따르면, ‘키르티’라는 단어가 오래전에는 차이티야(Caitya)와 같은 불당(佛堂)을 포함해 사원이나 왕궁을 지칭했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르티무카는 그 자체로 사원의 얼굴, 사원의 전면을 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나사라(manasara)’와 같은 건축서 속에는 건물의 출입구 전면에 소위 원형의 말굽창 장식(gavākṣa)을 조각하고 그 위쪽에 키르티무카를 조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신화에서 보여주듯, 이러한 장식은 당대에도 사악한 힘을 물리치는 신적인 힘을 갖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에서 기인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으나 키르티무카는 사원에 접근했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출입구 상부 장식 토라나(toraṇa)에 빈번히 조성된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출입구를 향해 있는 상층부의 벽면 중앙을 장식하는 경우도 많다.

▲ 캄보디아 시엠립 바욘(Bayon)사원의 린텔. 12세기말경, 프랑스 기메(Guimet) 박물관 소장.

이러한 토라나의 경우는 인도뿐만 아니라 특히 네팔과 인도네시아가 매우 두드러진다. 네팔의 경우 사자의 얼굴을 닮은 키르티무카는 때로 뿔을 갖거나 짧은 날개를 갖는 경우도 있다. 사자의 모습을 이렇게 형상화하는 것은 아마도 훨씬 오래전 산치(Sanci)의 토라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사슴뿔과 같은 산치의 경우와 달리, 양이나 염소의 뿔과 같이 짧고 휘어진 모습이지만 이러한 전통은 키르티무카의 형상화 초기부터 계속 존속하고 있다. 날개를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얼굴 양쪽에 날개가 달린 키르티무카를 가루다와 혼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우 흡사한 형태로 가루다도 동일한 토라나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키르티무카는 화환이나 화환으로 형상화한 나가(Nāga)를 입에 물고 늘어뜨리면 양쪽 밑에서 마카라(makara)가 그것을 받치거나 물고 있는 형태로 아치 형태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아치형태 아래의 중앙에는 사원의 주존(主尊)을 형상화하게 된다. 네팔의 경우와 유사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규모로 볼 때 키르티무카는 더 장엄한 느낌을 준다. 네팔과 다르게 돌로 조각했을 뿐만 아니라 문인방 위쪽을 커다랗게 장식한 생동감 있는 얼굴표현은 네팔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네팔이나 캄보디아 등이 사원의 출입문 위쪽을 장식하는 린텔(lintel) 정도의 규모라면 인도네시아는 키르티무카(또는 칼라)-나가-마카라 등이 함께 바닥까지 연결되어 출입문을 형성하게 된다. 감실의 경우도 거의 동일하다. 인도네시아의 키르티무카 역시 뿔이나 이빨 등이 당초문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당초문의 처리는 당연히 캄보디아의 경우가 어느 곳 보다 압도적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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