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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화와 불교문학 ①

문학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생명체

롤랑바르트는 “어떤 과도한 사회주의나 야만성에 의해 우리 교육에서 단 하나의 학제만을 남기고 모두 추방해야 한다면, 구제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문학은 투박한 과학과 정교한 삶의 거리감을 수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학이라는 학문 역시 영문학에서 파생했다. 모든 학문이 자연과 인간의 공간을 넘나드는 모든 문제에서 이를 상상력으로 확장하고 기록하는 문학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문자로 말미암아 산업화와 사상의 진보가 가능했으니 종교적 글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발해 문학적 소통채널을 갖는다면 이 또한 매우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경전은 비유법·문학의 보고
종교적 글쓰기 영역 개발해
문학적 소통채널 갖추기를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번역의 어려움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전승하는 한국문학의 바탕에는 유불선이 자리 잡고 있다. 유교는 불교를 매개로 선과 교통하고, 선은 불교를 매개로 유교와 교통했다. 이런 민족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는 제 아무리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고 번역기술이 능통한들 해독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송수권 시인은 불교사상을 남도가락으로 노래한 서정시인이다. 그의 등단작 ‘산문에 기대어’를 한 외국인이 변역했는데 산문(山門)을 ‘temple gate’가 아닌 국립공원 출입문을 떠올리는 ‘mountain gate’라고 번역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민족애환의 슬픈 정서가 배여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번역할 때는 그냥 ‘flower’이다.

그렇게 불교와 문학은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이다. 일찍이 불교는 ‘열린 정신’을 표방하며 다양한 계층의 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문학에 빗장을 열어두었다. 한국문단에는 불교문학 장르가 이미 터를 잡고 있다. 한용운 시인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고 노래했고, 서정주 시인은 ‘내가 돌이 되면’이라는 시에서 “돌은/ 연꽃이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라고 노래했다. 시들은 모두 윤회사상과 해탈을 노래하고 있다.

스님이 시인인 경우도 많고 사찰이 시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전은 비유법의 보고이자 문학의 경전이기도 하다. 불교문학 활성화는 청소년캠프 등에서 문학을 통해 경전을 비교낭독하고 종교와 놀이문화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많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경계 없는 소통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됨을 위한 여정이다. 경전은 한자 어휘 등 함의어가 많다.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면 해독의 재미는 더욱 쏠쏠해진다. 그 과정이야말로 깨달음의 과정이요 지혜로움으로 가는 여정이다. 설법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이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교통하다’ ‘공유하다’의 뜻이다. 설법의 생명력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작동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문학소년·문학소녀 아니었던 사람 있을까? 시인이 아니더라도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시 한 줄 정도는 암송할 줄 안다. 이런 시편들을 청중수준에 맞게 시의적절 하게 인용하고 경전의 시편이나 말씀의 의미를 문학 플랫폼을 통해 설법한다면, 감성과 공감, 친근감과 흥미로움을 높여줄 것이다. 이러한 설법은 산사에서의 색다른 사색의 경험이자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케 할 것이다.

에이브람즈는 “문학은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작가, 독자, 작품, 우주라는 4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생명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작가는 기자일 수 있고, 스님이나 법사일 수 있다. 독자는 불자나 청중이다. 작품은 설법원고, 메시지콘텐츠다. 우주는 부처님이거나 삼라만상이다. 인생은 매일 매일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는 일이다. 그렇게 문학적 소재와 문학 플랫폼을 통해 경전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고행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면, 책갈피 넘기듯 밀려오는 풍진세상의 파도를 타고 부처님 말씀 따라 출렁이면서 저 평안의 수평선을 향해 나아갈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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