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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팔정도와 육바라밀 ②

기자명 김정빈

현대인에겐 팔정도 수행 더 쉬워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경전은 경전을 설한 주인공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고대에는 녹음기나 영상 촬영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고, 전하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을 어떤 것을 넣고 뺄 것인지, 어떤 것을 앞에 어떤 것을 뒤에 배치할 것인지 등을 통해 편집자의 견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해·생각·결심·실천 연결
명백한 사성제 팔정도 체계

정견·정사 경전으로 대치한
육바라밀 수행법엔 보완 필요

대승 불교인들이 보기에 전승되어 오는 경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부는 그대로 전해오고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아주 조그맣게 축소하여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승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제로는 이러했을 것이라 생각한 내용을 경전 형식으로 창작해냈다. 이 창작 과정에서 부파불교 일파로서의 상좌불교가 전해오는 수행법으로서 팔정도가 육바라밀로 대체되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를 비판하면서 발흥하였고, 그 비판에 타당성이 있음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긍부 양면이 있는 법이다. 대승불교는 상좌불교를 비롯한 부파불교의 여러 종파를 싸잡아 소승(비유적으로 말하면 난쟁이)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대승(거인)이라 불렀는데, 대승불교가 스스로를 대승이라고 부르며 자부심을 가진 이유는 자신들의 목표가 아라한이 아닌 붓다에 있다는 점에 있었다.

아라한과 붓다의 차이는 중생에게 끼치는 이익의 크고 적음에 있고, 그 크고 적음을 결정하는 것은 전생의 공덕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웅대한 목표를 세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보다 공덕행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대승불교가 팔정도라는 전통적인 수행법 대신 육바라밀을 내세운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팔정도가 육바라밀로 바뀌면서 실천성이 저하되었다는 데 있다. 지난 주에 검토한 것처럼 팔정도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먼저 ‘머리’로 이해하고, 나중에 ‘실천’을 하는 방식으로 잘 짜여 있는 수행 체계이지만 육바라밀에는 ‘머리’ 부분이 없고, 따라서 잘 실천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팔정도의 혜학인 정견과 정사는 맨 앞에 있고, 육바라밀의 혜학인 반야는 맨 뒤에 있다. 요점은 팔정도의 정견과 정사는 문혜(聞慧), 사혜(思慧)로서 보통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머리(알음알이)’의 지혜인 데 비해 육바라밀에서의 반야는 증혜(證慧)로서 깨달은 분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라는 데 있다.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천에 앞서 이론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따라서 팔정도는 정견과 정사를 맨 앞에 두어 이론적으로 실천법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룬다. 그렇지만 육바라밀은 이론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실천 항목인 보시, 지계로 들어간다. 바꿔 말해서 육바라밀 수행법은 보시, 지계를 실천하기에 앞서 왜 보시, 지계를 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로부터 현대의 보통 사람들에게 육바라밀보다 팔정도 쪽이 훨씬 받아들이기기 쉽고 실천하기 쉬운 결과가, 즉 대승불교에 속하는 우리나라 불교인들보다 테라와다불교에 속하는 남방불교인들이 불교를 더 능숙하게 생활화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에 대해 ‘머리’ 부분은 육바라밀 수행법 밖에서 대승불교의 법 안에 충분히 설해지고 있지 않으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이 반론을 인정하는 처지에서 볼 때 육바라밀 수행은 팔정도에서의 정견, 정사 문제를 경전의 설법으로 대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수행법은 다른 것을 끌어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즉 따로 경전을 참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법 자체로서 완전해야만 하며, 그 점에서 팔정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불교는 육바라밀 수행법을 버리고 팔정도 수행법으로 돌아가거나, 육바라밀 수행법 앞에 ‘머리’ 부분을, 즉 정견, 정사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육바라밀을 팔바라밀로 바꿔서 맨 앞에 정견과 정사를 넣을 경우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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