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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법천 스님과 무량사 감자부각

사찰음식 인기 비결, 정갈한 재료에 자비심 더해졌기 때문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충남 논산 대둔산 자락에 고졸한 사찰 하나가 있다. 영주사다. 본래 이름은 영가가 은거한다는 뜻의 영은사(靈隱寺)였는데 6·25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됐다.

보리밥에 된장국도 성찬
차별없는 평등공양이 전통

김장김치, 푹 절인 배추에
늙은 호박 고아 속 만들어

무김치, 절인 무 하루 묵혀
생강·청각 깔아 넣어주면 끝

감자부각 스님들 최고 별미
물 끓여 살짝 데치는 게 비결

1984년 법천 스님이 영은사지를 찾았다. 백제 오천결사대가 황산벌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이곳에 위령비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신라군 역시 적지 않은 수가 이 싸움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하니, 신라와 백제의 영가들을 모두 위로하고 싶었다. 이에 절을 세워 영가가 상주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영주사(靈住寺)’로 지었다. 훗날 세계불교의 중심이 됐으면 하는 발원도 함께였다. 영주사 주지 법천 스님은 1956년 10월 초하루, 부여 무량사 인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7세에 출가한 스님은 동학사 강원에서 공부했으며, 선방도 다녔다. 탄허 스님을 모시고 자광사에서 ‘화엄경’을 출판하는 일도 도왔다. 이 시기를 제외하면 법천 스님은 출가사찰인 무량사에서 지내왔다.

스님이 출가한 1950년대 무량사는 200명이 넘는 대중이 살았다. 무량사에 이토록 많은 대중이 있었던 것은 비구니 육화문중이 모두 함께 생활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숙박시설이 없었던 당시 무량사는 부여를 찾는 사람들이 숙식을 해결하던 곳이기도 했다. 이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숙박비로 한 끼에 쌀 한 되를 냈는데 거기서 일부를 남겨 대중이 생활하는 데 사용했다.

무량사 대중에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까지 들어오면 공양간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최소 400여명이 먹을 공양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양간도 컸고, 해야 할 일도 무척 많았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엄청난 크기의 가마솥 다섯 개를 걸어 세 개는 밥을 짓고, 두 개는 국을 끓였다. 대중이 소임을 나눠 진행하면 못할 것이 없었으나 동네 사람들이 절일을 돕고 양식을 얻어가게 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그렇게라도 지역 주민들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게 당시 어른스님들의 생각이었다.

“대중들은 공양 때면 모두 대방에 모여 발우공양을 했어요. 보리밥에 된장국, 나물 몇 가지가 전부였지만 어른스님부터 갓 출가한 행자까지 차별 없이 평등한 공양을 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무량사가 관광지이고 수학여행지인 탓에 충청지역 다른 사찰과 비교하면 형편이 조금은 나은 편이었어요.”

한 끼 400여명의 공양을 준비해야 하니 겨울철 김장김치 양도 상상을 초월했다. 김장김치는 2000포기 정도를 담가 20개 항아리에 나누어 담았다. 독 하나에 100포기가 들어가는 항아리는 마지막 김치를 꺼낼 때면 한 사람은 독 속으로 몸을 넣어야 했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줘야 했다. 김치는 푹 절여놓은 배추에 늙은 호박을 고아 찹쌀 풀, 채소와 섞어 속을 만들어 사용했다.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김치라기보다는 짠지에 가까웠다. 무김치는 무를 소금에 굴려서 하루 놔두었다가 항아리에 생강과 청각을 바닥에 깔고 통째로 넣어두면 끝이었다. 소금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무김치가 익으면 그 맛은 사이다보다 시원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등 반찬은 도라지무침과 무장아찌였다. 깨끗이 씻어 먹기 좋게 다듬은 도라지에 들기름을 넣어 살짝 볶아낸 후 조선간장과 섞어 조물조물 버무려 간을 맞추면 최고 인기메뉴 도라지무침이 됐다. 무장아찌는 동치미김치 남은 것을 물에 씻어 말린 후 양조간장, 조선간장, 식초 그리고 물을 배합해 만든 국물에 담가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무에 맛이 배면 알맞은 크기로 썰어 내놓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도라지무침이나 무장아찌를 내놓을 때 학생들 음식에는 인공조미료를 가미해 내놓았다는 겁니다. 반찬에 인공조미료를 넣으면 학생들은 맛있다며 잘 먹는데, 스님들은 젓가락도 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생들 음식에만 인공조미료를 조금 넣어 내놓았습니다.”

반면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별식은 감자부각이었다. 감자부각 만드는 법은 우선 하지감자를 백지장같이 얇게 썬다. 그리고 간간한 물을 만들어 팔팔 끓인 뒤 거기에 감자를 잽싸게 넣었다 뺀다. 그것을 낱낱이 펴 하루 동안 말린 뒤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튀기면 맛있는 감자부각이 된다. 말려둔 감자를 튀겨내면 손바닥만큼 커지는데 요새로 치면 감자칩과 같은 맛이 난다.

“음식은 된장이나 간장과 같은 장에 의해 그 맛이 결정됩니다. 장 만드는 법은 특별한 게 없어요. 오히려 일반 가정의 장보다 재료적인 측면에서 훨씬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평범한 사찰음식이 평범하지 않게 평가되는 것은 재료의 신선함이나 환경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대중에게 좋은 음식을 공양 올리겠다는 자비심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계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것은 바로 옛 스님들의 이러한 마음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법천 스님은

 
1956년 10월 부여 무량사로 출가해 동학사 강원과 제방선원에서 수학했다. 1984년 논산 영주사를 건립하고 지역 포교와 불교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한편, 노인요양원 영은원을 세워 운영하는 등 부처님 가르침을 지역에 회향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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