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의 모양과 색깔, 성질과 효능이 각각 다른 부재료가 만나서 밥이라는 주재료와 섞이는 과정은 흡사 도를 이루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나물의 재료가 각각의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잘 섞여 하나가 되었을 때 입 속에서 ‘바로 이 맛이야’ 하는 것과 같이 출가수행자가 서로 다른 대중들과 만나서 불법이라는 바탕에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 섞어내어서 결국엔 다함께 해탈 열반에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음식에 담겨진 의미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마음을 열고 집중하여 마음자리 보는 눈을 크게 뜨면 그 자리에서도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으면 손질하지 마시고 재료가 생긴 대로 익히십시오.
일부러 모양내서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 팬에서 구르고 냄비에서 끓다가 다른 재료들과 만나서 스스로 모서리가 깎이기도 하고 숨이 죽고 다듬어져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또한 조화로운 맛을 냅니다. 그러기에 수행자의 음식은 맛에 끄달리지도 않으며, 무언가를 더하기 위한 인공감미료도 배제됩니다. ‘혀로 맛을 느끼되 탐착하지 않으면 과식의 욕망은 사라질 것이다.’ 크게 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더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빼고 일상을 단순하게 정리하다보면 삶이 고단하지도 않고, 바빠서 허둥대지도 않으며 비워낸 그 자리에 늘어난 만큼의 여백의 마음자리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요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대해 ‘잡아함경 24권 주사경’ 중 훌륭한 조리사와 관련한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중략) 비유하면 요리사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어 숙련된 솜씨로 여러 가지 맛을 조화하지 못하면, 주인을 받들어 공양할 때에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것에 있어 주인의 생각을 맞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략) 여러 가지 맛의 조화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주인을 친히 모시지도 또 가까이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바라는 바를 잘 들어 그 마음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 마음을 써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켜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듯 요리하는 사람 역시 지혜로워야 공양 짓는 공덕 또한 무량할 것입니다. 늘 깨어서 매 순간 마음자리를 챙기는 주인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가지양념구이
올 봄은 비가 적어 걱정한 것에 비해 불영사 밭은 고추, 오이, 애호박, 가지가 벌써 통통하게 물이 올랐다. 가지는 찜 솥에 쪄서 먹기 좋게 찢어 나물을 하기도 하고, 이삼 등분한 후 도톰하게 썰어 찜 솥에 한 김 올려 찐 다음 다시 달군 팬에 앞뒤로 구워 양념장(맛간장, 채수, 고운고춧가루, 다진 청홍고추, 통깨, 참기름)을 한 면에 끼얹고 견과류 등을 다져서 곁들이면 영양 가득한 일품요리가 된다.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