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 음식 만드는 과정이 마음자리

기자명 일운 스님

 
 
사찰에서는 대중이 많이 모이는 법회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으면 으레 비빔밥을 메뉴로 선정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비빔밥은 바쁜 일상에서 생겨난 간편식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일일이 찬을 갖추지 않더라도 밥 위에 갖가지 재료를 올려 쓱쓱 비비기만 하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메뉴이기에 특히 대중이 많은 큰 행사에 제격입니다. 이는 나물의 잎, 줄기, 뿌리 부분의 영양이 골고루 잘 갖추어진 재료에 다섯 가지 오방색의 조화로움이 어우러져 한국 특유의 매운 맛인 고추장과 조화를 이룰 때 비빔밥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물의 모양과 색깔, 성질과 효능이 각각 다른 부재료가 만나서 밥이라는 주재료와 섞이는 과정은 흡사 도를 이루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나물의 재료가 각각의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잘 섞여 하나가 되었을 때 입 속에서 ‘바로 이 맛이야’ 하는 것과 같이 출가수행자가 서로 다른 대중들과 만나서 불법이라는 바탕에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 섞어내어서 결국엔 다함께 해탈 열반에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음식에 담겨진 의미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마음을 열고 집중하여 마음자리 보는 눈을 크게 뜨면 그 자리에서도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으면 손질하지 마시고 재료가 생긴 대로 익히십시오.

일부러 모양내서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 팬에서 구르고 냄비에서 끓다가 다른 재료들과 만나서 스스로 모서리가 깎이기도 하고 숨이 죽고 다듬어져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또한 조화로운 맛을 냅니다. 그러기에 수행자의 음식은 맛에 끄달리지도 않으며, 무언가를 더하기 위한 인공감미료도 배제됩니다. ‘혀로 맛을 느끼되 탐착하지 않으면 과식의 욕망은 사라질 것이다.’ 크게 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더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빼고 일상을 단순하게 정리하다보면 삶이 고단하지도 않고, 바빠서 허둥대지도 않으며 비워낸 그 자리에 늘어난 만큼의 여백의 마음자리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요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대해 ‘잡아함경 24권 주사경’ 중 훌륭한 조리사와 관련한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중략) 비유하면 요리사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어 숙련된 솜씨로 여러 가지 맛을 조화하지 못하면, 주인을 받들어 공양할 때에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것에 있어 주인의 생각을 맞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략) 여러 가지 맛의 조화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주인을 친히 모시지도 또 가까이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바라는 바를 잘 들어 그 마음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 마음을 써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켜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듯 요리하는 사람 역시 지혜로워야 공양 짓는 공덕 또한 무량할 것입니다. 늘 깨어서 매 순간 마음자리를 챙기는 주인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가지양념구이

올 봄은 비가 적어 걱정한 것에 비해 불영사 밭은 고추, 오이, 애호박, 가지가 벌써 통통하게 물이 올랐다. 가지는 찜 솥에 쪄서 먹기 좋게 찢어 나물을 하기도 하고, 이삼 등분한 후 도톰하게 썰어 찜 솥에 한 김 올려 찐 다음 다시 달군 팬에 앞뒤로 구워 양념장(맛간장, 채수, 고운고춧가루, 다진 청홍고추, 통깨, 참기름)을 한 면에 끼얹고 견과류 등을 다져서 곁들이면 영양 가득한 일품요리가 된다.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