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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압사라스(Apsarās)와 비천(飛天)

불교 속 비천은 부처님 법문 전후 공양 올리는 모습으로 등장

▲ 산치 스투파 1번. 기원전 1세기경. 보리수 위쪽 양옆으로 날개달린 천인들이 꽃 공양을 하고 있다. 어떤 천인들은 새의 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인도조각에 미혹된 최초의 계기는 오릿사의 한 사원에서 보았던 어떤 압사라스 때문이었다. 붉은 사암에 조각한 압사라스는 허리를 완전히 돌려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상념에 빠진 듯, 아니면 단지 바람을 맞는 것인 듯, 눈을 감고 살찐 턱을 들어 올려 미소를 짓고 있었고 도톰한 입술 아래의 턱 가운데는 살집으로 살짝 들어가 있었다. 입술 끝은 뺨 위로 가늘게 치켜 올라가 입술의 끝이 볼 살에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소녀의 순진한 웃음 그대로였다. 천년의 바람도 그 섬세한 미소는 지워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돌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던 이후로도 그 조각은 필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압사라스였다.

온갖 꽃비 뿌리고 향 공양 하거나
허공서 악기 연주하고 노래 불러
한국 비천은 탑·사리함 등서 등장
최고 아름다움은 범종서 나타나

인도 압사라스의 중요한 역할은
인간과 신 사이 존재한 갈등 조절
앙코르와트도 춤·율동 많이 보여

인도와 동남아시아 압사라스가
불교 들어와 비천을 대신했는지
비천으로 번역이 맞는지도 의문

그 때의 감정은 여인에 홀려서 단완타리(dhanvantari)가 가지고 나온 불사(不死)의 감로수마저 던져버린 아수라들의 그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 아름다움은 때로 죽음도 감수하게 만든다. 그렇다. 이들 압사라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존재다.

압사라스는 대체로 춤을 추거나 악기를 다루거나 또는 향(香)을 들어 공양하거나 나뭇가지나 꽃나무를 휘어잡고 몸을 비틀고 서 있다. 때로는 그녀들의 남편이라 할 수 있는 간다르바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새겨진다.

한 신화에 따르면 압사라스(Apsaras)들은 데바와 아수라들이 불사의 감로수를 만들던 때 그 바다 속에서 탄생한다. 압사라스라는 단어 속에는 물을 뜻하는 단어 압(Ap-)이 들어가 있다. 이 단어는 고대 근동에서도 민물을 뜻하는, 기원이 매우 오랜 단어인데 아마도 서아시아와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도는 수많은 압사라스가 있고 문헌에 따라 개별적인 명칭을 보여주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압사라스는 개별 신의 명칭이 아니라 간다르바와 같이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힌두교와 불교적 맥락에서 대체로 압사라스는 장식적 모티브로 등장한다. 하지만 압사라스를 힌두 사원에서나 불교사원에서 건축의 장엄과 불구(佛具)의 장엄을 위한 신적 모티브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면모만을 보는 것이다. 사실 고대 인도의 신화 속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압사라스의 역할은 이 압사라스가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갈등을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대부분 간과하고 있다. 고대 인도 신화 속에서 인간과 신은 상부상조의 관계가 존재하지만, 또 많은 경우 힘의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인도신화 속에서 데바와 아수라, 인간 고행자 등은 모두 수행이나 고행 등을 통해서 각자의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힘을 키운다.

▲ 캄보디아 반테이 스레이의 박공 장식. 10세기 후반. 순다와 우파순다가 압사라스 틸로타마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장면. 현재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계에 대한 지배와 패권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각 집단에서는 상대방들을 방해하고자 하는 교활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상대방의 수행을 방해해야만 자신이 세계에 대한 패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그 수단으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압사라스다. 특히 신들(데바)은 인간 고행자나 아수라들이 고행을 지속하게 되면 자신들의 천상을 뺏길 것을 두려워한다. 이 때 압사라스를 그들에게 파견해 성적(性的)으로 유혹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도록 시도한다. 바로 마타하리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은 신들이 순다(Sunda)와 우파순다(Upasunda) 두 형제 아수라에게 압사라스 틸로타마(Tilottamā)를 보내 서로 그녀를 차지하려고 싸우다 죽게 만드는 계략을 쓴 경우에서 잘 나타난다. 고행자 나라와 나라야나의 고행을 방해하기 위해서 인드라가 보낸 경우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압사라스가 자발적으로 성적인 유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르주나가 인드라가 사는 천국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무술을 배우고 음악과 춤을 배울 때(지난 연재 중 간다르바 항목 참조) 인드라 궁에서 사는 수많은 압사라스 가운데 한 명인 우르바시(Urvaśī)를 만난다. 아르주나에게 마음이 끌린 우르바시는 자신과 성관계를 갖기를 청했으나 아르주나는 거부한다. 화가 난 압사라스 우르바시는 그를 저주해 아르주나는 1년간 성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같이 인도의 압사라스는 때때로 매춘부로 그려지거나 무희, 신들의 미녀 스파이 등으로 등장한다. 무희(舞姬)로서의 압사라스의 특성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에서 잘 나타난다. 앙코르에서 만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압사라스(또는 데바타 Devatā: 때로 이 둘을 구분하기도 한다)는 춤을 추거나 율동을 갖고 서있다. 이들을 빼놓고 앙코르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조각들은 아마도 현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 압사라스 춤과 동일한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의 신화적 기원은 도리천의 인드라 궁에서 신들을 위해 추었던 그 춤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이 춤이 얼마나 육감적인가는 캄보디아의 공주였던 부파 데비(Buppha Devi)의 압사라스 춤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압사라스와 같은 천신 또는 천녀의 도상(圖像)이 인도불교에서 시작된 것은 매우 오래전(적어도 기원전 2세기경)이며 대체로 (무)불상을 장엄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바르후트(Bharhut) 스투파의 조각에는 일군의 무희(舞姬)들이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조각에 무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무희들이 압사라스(Acchara)라는 것을 직접 명기하고 있다.

산치(Sanci) 대탑의 경우는 다소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데, 토라나와 기둥에는 불상을 대신하는 차크라와 보리수 위에서 꽃 공양을 하는 날개달린 천신(또는 인격화된 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불상 조성이 시작된 뒤로 비천이 날개를 달고 나타나기보다는 대체로 터번과 도티 형태의 천의를 입고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때의 비천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압사라스가 정말 불교 속에 들어와 비천(飛天)을 대신하게 되었는지, 또는 비천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적당한지 다소 의문이다. 압사라스를 대신하기에 적당한 단어는 아니다. 어쩌면 동아시아의 비천 또는 불교의 비천은 압사라스 외에 또 다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비천은 한역 불경에서 그다지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아니며 대신 천인(天人)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이 단어도 윤회를 거쳐 천상에 올라간 모든 중생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자문화권의 비천 또는 천인이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의 압사라스가 보여주는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인도의 비천이 불교와 함께 동아시아로 들어오던 대표적인 관문은 돈황(敦煌)의 석굴사원들일 것이다. 막고굴 역시 앙코르 유적지처럼 비천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천을 찾아볼 수 있다. 수천 점의 비천상을 포함해 소실된 악기의 형태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상. 771년. 경주국립박물관 소장. 앞쪽으로 기울어진 채 위로 상승하는 비천의 천의에서 소리의 진동과 상승감을 잘 보여준다.

회화나 조각 속에 보이는 동아시아의 비천(飛天)은 인도의 그것처럼 여성성이 강조된다든가 풍만한 육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도의 신화에서 갖는 압사라의 기능적 역할이나 그녀들의 에피소드, 또는 도상에서 나타나는 성적인 매력이 배제되어 있다. 불교 속에 들어온 비천 즉 압사라스는 그들만의 기능과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대체로 붓다의 법문 전후에 등장해 그를 찬탄하거나 공양을 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는 허공에서 온갖 종류의 꽃비를 뿌려 공양하거나 향을 공양하는 모습(공양비천상), 또는 허공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찬불가를 부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주악비천상).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나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는 가늘고 긴 천의(天依)의 다양한 표현도 인도의 압사라스와 다른 모습으로 꼽을 수 있다. 천의의 자유로운 표현뿐만 아니라 신체의 특징도 인도-동남아시아의 그것보다 더 자유롭게 나타난다. 허공에 수평으로 길게 누운 자세 뿐 아니라 수직으로 내려오는 자세, 다리를 뒤로 접어 V자로 나타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비천은 탑과 범종(梵鍾), 불화, 사리함, 탑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불상의 광배나 지붕의 수막새에서도 나타난다. 승탑(僧塔)의 경우 옥개석 아래쪽이나 측면을 작게 장식하고 있다. 불상의 광배에는 직접 새겨지거나 구멍에 끼우도록 조각이 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중국의 서위(西魏)시대에도 유행했다. 광염(光焰) 형상 속에 악기를 들고 나는 비천으로 광배를 장엄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 비천의 아름다움은 범종에서 가장 잘 나타나지 않을까. 비천과 악기의 상관성 때문이겠으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나 향을 올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필자가 느끼는 한국적 비천의 아름다움은 천의(天衣)의 표현에 있다. 특히 위쪽으로 너풀거리며 뻗어 오르는 가는 천의들은 법열(法悅)의 상승감을 소리의 떨림과 더불어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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