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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운명의 주도권자는 바로 나 ②

기자명 법보신문

사랑 받아도 비난 받아도 동요치 않는 평상심이 복 짓는다

 
예전에 제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집집마다 다들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빌려 쓰면 되지 않겠어? 일부러 내 돈을 주고 살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돈만 아끼며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이렇게 절약해서 돈을 모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녀는 화투와 마작을 좋아하여, 간간이 번 돈을 도박으로 모두 날려 버리곤 했습니다.

나 위주로 세상 보는 습관 문제
상대 입장 살피는 노력 기울이면
환경에 굽히지 않고 향유 가능

황제에 황금을 상으로 받아도
사고 등 위기 만날 가능성 있어
복과 화는 동전의 앙면과 같아

상황이 좋든 나쁘든 평정 유지
한 발 물러나 보는 지혜 갖춰야

하지만 그녀와 이웃이었던 제 아버지는 그런 그녀가 빌려달라는 것은 뭐든지 내주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도 그다지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항상 주변 사람을 위해서 물건을 사다 놓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비록 이 물건은 나에겐 한 번밖에 필요하지 않지만, 사다 두면 혹시 다른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이 부인은 늘 저희 집에 무언가를 빌리러 왔는데, 그날도 역시 저희 집에 무언가를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빌리러 왔소?”
“국수를 해 먹으려고 해요. 국수 만드는 막대 좀 빌려주세요.”
“그래요. 여기 있소. 또 무엇이 필요하오?”
“채소를 볶을 기름도 좀 빌려주세요.”
“그러면 이 식용유를 한 병 가져가시오.”

막대와 식용유를 들고 돌아가는 그녀의 뒤에 대고 아버지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또 와서 가져가시오.”

저는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계속 이렇게 하시면 저 아주머니는 앞으로도 항상 물건을 사지 않고 빌려 쓰기만 할 거에요. 아버지께서는 그걸 바라세요?”
“얘야,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단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야지만 너희들이 장래에 부유하게 될 수 있다. 너도 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네가 도울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이 많을까, 아니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능력이 많을까?”

이것이 제 아버지의 생각이었고, 아버지의 그런 행동 덕분에 자식들은 부유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조차 없이 오히려 소처럼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당신의 자식들은 이제 자동차를 굴릴 정도로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늘 물건을 빌려가는 부인은 항상 필요한 일상용품조차 사지 않고 매번 빌려갔습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조그만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지막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과연 그녀는 이렇게 하여 돈을 모았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면, 내가 인내하거나 굽히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적응하고 향유하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심지어 생사의 갈림길에 이르더라도 평상심을 가지고 큰 사랑과 자비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현재 얻을지 잃을지 알 수 없는 기로에 놓여있는데, 오직 손해 보지 않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그대는 쉽게 인생의 말로를 향해 달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좁기 때문에 자기의 욕망에 크게 집착하고 있으며, 맨 마지막에 그 대가로 고생을 받는 것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사랑을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우리가 황제에게 관직을 받는 큰 행운과 영광에 처하더라도 너무 크게 기뻐하지 말고, 항상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황제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저에게 200냥의 황금을 상으로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것은 단지 감격한 것을 표시하기 위한 하나의 예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더욱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오늘 내게 상을 준 황제가 내일 갑자기 돌변하여 나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지금 작위와 상을 받는다 한들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의 나쁜 도적들이 내가 받은 200냥의 황금을 노리고 나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작위와 상을 받았다고 그저 즐겁게 웃으며 기뻐할 수 있을까요?

복(福)과 화(禍)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의존해 있으면서 어떤 운명에 처해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내 뒤를 좇아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든 나쁘든 언제나 최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경에서 말한 대로 인생의 법칙은 다름 아닌 ‘무상(無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기 마련인데 보통 사람들은 변화 속에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를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단지 무상뿐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언제 누가 죽을지 또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물여섯 살 때부터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생명이 있어 살아있으면 그것이 바로 승리이며, 생명이 사라져 죽는다면 그건 바로 깨달음이니, 생명의 유무에 관계없이 나는 늘 이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 실패할 염려가 없다.’

사람의 죽음이란 필연적인 것이고 화를 받고 복을 받는 것도 미리 알 수 없으니 마음 졸이며 실패와 재난을 만날까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고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간의 시련과 좌절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늘이 그대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항상 자연스럽게 평상심을 갖도록 수련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 어떻게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만 할 수 있겠습니까?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일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거나 혹은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마라”라고 옛 현인들이 말한 것입니다. 이 말에는 진정으로 지혜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몸소 깨달아야 비로소 크게 부유하고 귀한 운명을 이어받게 됩니다.

어쩌면 그대는 바늘에 손이 찔리면 “아이고, 아파 죽겠네. 빨리 119를 불러라”라며 소리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 호들갑을 떤다는 것은 그대가 절대로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그대의 눈을 보고 작다는 둥 보기 싫다는 둥, 두어 마디 농담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대가 “너무 심한 말이네요? 심장이 벌렁거려 숨을 쉴 수가 없군요”라고 대꾸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마음의 눈이 너무 작고 수양이 너무 부족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만약 그대가 슈퍼스타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그대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대가 그 상황에서 평상심을 잃고 긴장하여 쓰러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슈퍼스타처럼 크게 부유하거나 크게 귀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일이든지 마주치게 되면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 코만 보일 뿐,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로 세 걸음만 물러난다면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면 바로 반응하지 말고 먼저 한걸음 물러나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시야와 가슴은 크게 열리고,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좇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부자가 된 몇몇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 벼락부자들의 말로는 부자가 되기 전보다 더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을 이어받을 힘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심을 유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해하려고 할까? 왜 나를 더럽히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가?’

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할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는 건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금 덩어리라도 갖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배고파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가?’

이렇게 크고 넓게 생각하면 현재의 시련과 좌절은 거센 폭풍우 속의 작은 물결에 지나지 않고, 그 물결은 해안에 닿으면 파도로 부셔져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흔히 불가서 말하는 ‘공(空)’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공’은 수만 가지의 현상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엇이든지 용납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드러낼 수 있으며, 어떤 것도 구별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길러야 할 마음의 경지이며 또한 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힘입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인생’중에서 (번역:권중달)
보리선수 약사선원 T.1661-0803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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