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5. 금원산 유안청폭포-문바위-아미타마애삼존불

해와 달 광배 삼은 아미타삼존불, 극락을 펼쳐 보이다

▲ 아미타마애삼존불을 새긴 불모는 자연채광마저도 광배로 삼았다. 온 우주를 끌어 안은 혜안이 놀랍다.

6월 녹음 한껏 오른 울창한 산림에 들어서니 크고 작은 바위틈으로 새어 나오는 청아한 물소리가 발길을 이끈다. 금원산이 자랑하는 유안청 계곡! 금원산에는 폭포가 유독 많다. 산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마주하는 미폭포(米瀑布)부터 산 정상 아래의 작은 폭포까지 이어진 2.5㎞ 구간에는 큰 폭포만도 6개가 자리하고 있다.

유안청폭포가 갖는 원래 이름
가섭존자의 이름 딴 가섭동폭
가섭사라는 옛 절 있었음 시사

원숭이 가둔 산 뜻한 금원산 속
국내 단일 최대 바위 ‘문바위’는
가섭사 일주문 대신했던 가섭암

돌계단 올라 마주한 세 불보살
천의 한 자락까지 선명히 보여
실제 눈앞에 현현한 듯한 감동
세 개의 큰 바위가 감싸며 호위
고려 예종이 모친 왕생기원 조성

미폭포(米瀑布). 옛날 폭포 위 절에서 쌀 씻은 물이 흘러 내려가 폭포수를 희부옇게 물들였다 해서 ‘쌀 미’자를 써 미폭포(米瀑布)다. 보름달 뜨는 밤이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 했다는 선녀폭포. 천기(天氣)를 담은 담(潭)이라서일까? 아기 갖기 어려운 여자들, 저 선녀담서 몸 깨끗이 씻고 소원 빌면 소식 있단다. 한 숨 돌린 후 조금 더 오르면 붉은 빛깔을 띤 화강암을 스치며 쏟아져 내리는 물결모양이 ‘노을진 하늘에 흰구름이 떠 흐르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자운폭포(紫雲瀑布)가 있다. 산 위에 앉아 저 아래의 선녀, 자운 등의 폭포들을 거느리고 있는 폭포가 바로 유안청폭포(儒案廳瀑布)다. 

▲ 가섭암, 문바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바위로서 한국 단일바위로는 제일 크다고 한다.

‘유안’이란 ‘유생’을 말한다. 유생들이 과거급제를 목표로 공부했던 공간을 유안청(儒案廳)이라 했다. 유안청폭포는 2개. 150m에 이르는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제2폭포도 장관이지만 제1폭포가 단연 압도적이다. 울창한 산림 속 홀로 20여미터의 높이서 다섯 갈래로 나눠져 장쾌하게 수직낙하 하는 물기둥은 힘차다. 바로 아래의 담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내려진 빛살을 머금으며 시시때때로 황금빛과, 자줏빛 등의 다채로운 색(色)을 발산한다. 1950년대 덕유산에 집결한 남부군 500여명이 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이 계곡에 모여 목욕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허나, 이 폭포는 원래 가섭동폭(迦葉洞瀑)이었다.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꽃을 들어보였을 때 말없이 미소를 보였던 존자, 부처님 열반 후 제1차 불전결집을 지휘했던 그 가섭존자의 이름을 딴 계곡과 폭포가 있었다는 건 이 산 어딘가 ‘가섭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저 아래의 ‘미폭포’에 닿은 쌀물은 가섭사에서 내려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 옛날 여기 어디쯤에 자리한 산사의 풍경소리가 폭포수 너머로부터 아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 큰 산에 든 어느 거사가 아미타부처님을 가슴에 새기며 수행하는 곳이다.

지재미골로 들어선다. 그 옛날 산 중턱에 지장암이 있어 지장골이라 불리다가 지재미골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 골을 중심으로 금원산(金猿山)과 현성산(玄城山)으로 나눠진다.

큰 산에 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머리와 재주가 비범했던 금빛을 띤 원숭이는 오만스럽다 못해 이 산을 토대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던 동식물들을 괴롭혔다. 원숭이의 횡포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도력 높은 스님이 냅다 낚아 채 바위에 가뒀다. ‘원숭이 가둔 산’이라 해서 금원산이다. 그 원숭이 갇혀 있는 바위 원암(猿岩)은 아직도 산 에 남아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중국 명나라 작가 오승은의 소설 ‘서유기’ 속 손오공 이야기와 흡사하다. 

▲ 세 개의 큰 바위가 마애불을 호위하고 있다.

지금의 현성산은 금원산에 딸린 부속산이다. 검을 현(玄)자를 썼기에 ‘검은 산’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 연원을 확실하게 풀기는 어렵다. 옛적에는 ‘깊고 고요한 의미’의 현(玄)을 쓴 현성산(玄城山)이었는데 훗날 한자만 보고 검은 산이라 불렀을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금원산은 원래 지금의 현성산과 더불어 하나의 ‘현성산’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서유기’가 이 땅에 전파되면서 기백산(1331m)과 이웃한 큰 봉우리를 기점으로 금원산(1353m)이라 이름하고는 작은 봉우리로 이뤄진 낮은 산 현성산(965m)을 떼어 놓았을 싶다. 금원산이 자랑하는 문바위와 아미타삼존불은 현성산에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 앞에 ‘금원산’이 붙는다. 

지재미골 입구서 10여분쯤 걸으니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단일 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바위인데 문바위라고 한다. 가섭사의 일주문을 대신한 바위였을 것이라 해서 가섭암(迦葉岩)이라 하고, 비가 내릴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기도 해 지우암(知雨岩)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도 호신암, 금달암, 두문암, 기도암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바위가 갖는 풍모가 남달라서일 것이다.

▲ 유안청폭포의 원래 이름은 가섭동폭이다.

바위에는 ‘달암이선생순절동(達岩李先生殉節洞)’ 글귀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세워 진 이듬해인 1393년 달암 이원달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 골짜기로 들어와 망국의 한을 달래다 순절했다고 한다. 구한말 면우 곽종석 선생도 찾았는데 ‘문바위’를 본 감흥을 칠언절구로 남겼다.

‘시냇가에 우뚝 솟은 바위돌 신의 도끼로 다듬어 낸 듯/ 머리 위에 소나무 자란 것 더욱 정을 끄누나/ 높이 치솟아도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네/ 저 처럼 부끄러울 일 없이 푸르게 살아 가리라.’

문바위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돌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저 곳에 마애삼존불상(보물 530호)이 있을 터. 세 개의 큰 바위가 겹쳐져 있는데 한 가운데로 돌계단이 나 있다. 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올라섰다. 아!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생생하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표정, 천의 한 자락까지 선명하게 보여 실제로 눈앞에 현현하신 게 아닌가 할 정도다. 세 개의 큰 바위가 삼존불을 완전히 감싸며 호위하고 있다. 빗방울 하나도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의 보존에 최적화된 천혜의 환경 속에 마애삼존불은 나투고 있었다. 저 바위에 불보살을 조각한 불모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불꽃 모양의 광배를 삼존불에게 선사한 불모는 그보다 더 멋진 광배를 공양으로 올렸다. 마애불은 남쪽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북쪽에 자리한 바위가 남쪽 바위를 완벽하게 덮고 있는데, 삼존불 양 옆으로 작은 틈이 나 있다. 동쪽서 해가 뜨면 저 두 틈 사이로 하루의 첫 햇살이 들어찬다. 불보살 입가에 노을빛 닿으면 은은한 미소가 퍼져갈 터. 달빛인들 안 들어설까?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의 빛을 후광으로 삼았으니 저보다 더 거룩한 광배가 또 있겠는가!

가만! 삼존불 위 두 개의 사선은 무엇일까? 구도를 잡기 위해 깊게 파낸 선이다.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삼존불의 발 아래에 힌트가 있다. 그렇다. 불모는 삼존불이 들어 설 바위면 전체를 파고는 매끄럽게 다듬었다. 다듬어진 면과, 다듬어지지 않은 면의 경계가 자연스러운 선을 만들어 냈다. 그 선과 삼존불 위의 두 개의 사선을 이어보면 배 모양이다.

아미타마애삼존불은 고려 16대 왕 예종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조성했다지. 불모,  그 뜻 잘 받들어 애써 배를 다듬었다. 왕의 어머니가 탄 반야용선이 아미타삼존불의 호위 속에 무사히 강을 건너 극락에 이르기를 기원하고 있음이다. 왼쪽 보살 옆에 새겨진 조상기(造像記)에 따르면 천경원년 10월(天慶元年十月) 즉, 고려 예종 6년인 1111년에 조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으니 예종의 효심이 담긴 마애불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토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가섭사지 아미타삼존불만은 꼭 친견해 보기 바란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벅찬 환희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섭사가 어디에 있었을지 추측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마애삼존불이 서 있는 현성산인지, 가섭동폭이 자리한 금원산에 있었는지 말이다. 어쩌면 가섭동폭 주변에 가섭사라는 큰 절이 있고, 마애삼존불 아래엔 작은 암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거창 금원산자연휴양림 야영장 주차장. 차길에 세워진 ‘유안청 폭포’ 표지판을 따라 산길로 들어가 15분정도 걸으면 5갈래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유안청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산 정상을 넘어 가섭사지마애삼존불을 친견하려면 표지판을 잘 확인하고 올라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2개이기 때문이다. 유안청폭포서 다시 차도로 나와 금원산자연휴양림 관리소를 향해 걷다 보면 자운폭포를 조망할 수 있다. 문바위서 가섭사지마애삼존불까지의 거리는 100m.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이것만은 꼭!

 
갈계리 3층석탑: ‘탑불’마을의 큰 느티나무로부터 200m 떨어진 차도 옆 사지에 있다. 탑 주변 어딘가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탑은 사유지에 포함돼 있어 논 한 가운데 서 있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고 있다. 금원산자연휴양림서 약 9.5㎞.   

 

 

 

 

 

 
농산리 석불입상: 사지에 홀로 서있는 입상인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양쪽 어깨에 걸쳐진  옷자락은 가슴위로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종아리 아래 부분에서 Y자로 마무리 됐다. 최초의 불상이라 알려진 ‘우드야나 왕 여래상’에 나타난 천의를 조각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금원산자연휴양림서 약 7㎞.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화강암으로 조성됐다. 전체 높이는 3.7m. 머리에 비해 약간 좁은 어깨 양쪽에 대의가 걸쳐져 있다. 대의 아래 입은 군의의 선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이채롭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원산자연휴양림서 약 20㎞.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