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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물건의 인과관계

기자명 최원형

나무젓가락으로 연간 2500만 그루 잘려나가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24시간을 보내야하는 도시인들에겐 간절한 바람일 수 있다. 더구나 희뿌연 하늘이 도시를 덮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 답답함은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다. 휴일이면 막힐 걸 뻔히 알면서도 꾸역꾸역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자연을 이리저리 도려내고 파헤치며 들어선 도시에 살고 있으나 우리 안에 내재된 유전자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한 까닭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만나는 일은 어쩌면 고향을 찾아가는 일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쓰레기’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다녀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무젓가락 썩는데만 20년 경과
토양오염은 결국 나에게 돌아와
소비 이후 다음 생각할 줄 알아야

사람이 가지 않은 그 어느 곳에도 쓰레기는 없다. 오직 사람만이 쓰레기를 남기니 쓰레기를 문명의 발자국이라 표현해야할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 그곳에 놓인 쓰레기통과 화장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룩한 문명을 결코 수준 높다고 할 수가 없다. 분리수거하도록 구분된 쓰레기통은 온갖 쓰레기들이 뒤섞인 채 통 바깥까지 넘쳐난다. 분리 배출하라고 통마다 이름까지 붙여놨는데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글자를 모르는 걸까? 아마도 구분해서 버려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저 쓰레기일 뿐, 이것이 재활용되어서 무언가로 새롭게 태어날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거라 본다. 그런데 모든 물건들이 처음부터 쓰레기는 아니었다. 캔은 그 이전에 알루미늄이란 자원이었고, 석유에서 뽑아 만든 플라스틱은 오래전 지구에 살던 나무며 유기체들이었으며 나무젓가락도 적어도 20년을 살던 나무였다. 화장실 풍경은 또 어떤가? 수돗물을 세게 틀어 놓은 채 거울을 쳐다보고 머리를 매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을 씻고 난 뒤 왕창 뽑은 휴지로 손을 닦기도 한다. 주르르 당겨서 바닥까지 닿아있는 휴지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 휴지들도 과거 언젠가는 울창한 숲의 한 구성원이었을 나무였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자원을 그 에너지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비효율적인 문명이 어떻게 수준 높을 수 있을까?

만약 어떤 물건의 인과과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생활에서 쓰레기가 줄어드는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재활용이 안 되는 나무젓가락을 상상해본다. 이 나무젓가락은 이전에 중국의 어느 숲에서 자라던 나무였다. 나무는 그곳에서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20년을 자랐고, 어느 날 잘려 젓가락 공장으로 실려 갔다. 그곳에서 젓가락 모양으로 재단이 된 다음, 과산화수소, 표백제, 곰팡이 제거제 등의 약품에 넣어 끓이는 과정을 거쳐 일회용 젓가락으로 변신했다. 제조과정에 쓰이는 이 약품들은 젓가락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가 피부병, 현기증, 멀미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나무젓가락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중국에서 생산되는 나무젓가락 숫자는 대략 450억 개쯤이다. 이만큼의 나무젓가락을 만드느라 잘려나간 나무만 대략 2500만 그루이며 이로 인해 중국의 사막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무젓가락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까? 주로 라면이나 집 밖에서 김밥 등을 먹을 때 쓰이는데, 나무가 자란 시간과 만들어지는 과정에 견주어볼 때 찰나 같은 시간만 사용하고 버려진다. 평균 10분 정도 사용할까? 그토록 짧게 사용하고 버려진 나무젓가락은 땅 속에서 썩는데 대략 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썩는 동안 나무젓가락에 들어있던 각종 약품들은 또한 토양을 오염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오염이 결국은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여섯 개의 맥주 캔을 하나로 묶는데 쓰는 플라스틱 팩 링이 해양 동물의 몸에 들어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어린 거북이의 몸이 그 링에 끼어 거북이는 자라는데 링에 낀 부분만 잘록해진 사진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미국의 한 수제맥주회사에서 먹을 수 있는 식스 팩 링(edible six pack rings)을 개발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낚시꾼이나 어부를 주소비자로 생각하고 개발했는데 링의 원료는 플라스틱이 아닌 맥주를 만들면서 나오는 보리나 밀 등 곡물 찌꺼기다. 그러니 이게 설령 바다로 떠내려간다 해도 쓰레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물고기나 해양 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쓰레기에 대한 성찰이 그런 발명품을 낳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건을 소비하는 이라면 적어도 쓰고 난 ‘다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런 태도야 말로 만물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게 아닐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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