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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함경의 재발견

기자명 김정빈

‘소승 경전’ 낮춰보는 시각 개선돼야

한국불교에서 ‘반야심경’은 불교를 안내하는 문(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다. ‘반야심경’이 탁월한 경전이라는 것은 이 경전이 역대의 선지식들에 의해 높이 상찬되었고 중시되었다는 점, 한국과 대승불교권을 넘어 서양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하겠다. 그렇지만 이 경전이 불교를 안내하는 문의 역할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아함경 그대로 이해해야
대승불교 미래구상 가능
바른 이치 전하는 언설은
모두가 다 부처님 가르침

‘반야심경’은 불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깊고 너무 어렵다. 비유적으로 볼 때 이 경전은 불교로 들어오는 문에 해당하는 경전이 아니라 안방에 들어가기 직전, 예컨대 마루에 해당하는 경전이라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에는 많은 경전이 있고, 그래서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후 위대한 학승들에 의해 그 수많은 경전을 성격에 따라 분류하는 교판(敎判)이 행해졌다. 그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교판은 중국 수(隨)나라 때 천태지의(天台智顗) 스님에 의해 행해진 교판이다.

천태 교판에 의하면 ‘반야심경’은 부처님께서 네 번째 시기에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경전에 속한다. 이는 부처님께서 가장 심오한 단계인 다섯 번째 단계로서의 법화부(法華部) 설법을 하기 전에 ‘반야심경’을 설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단계의 설법을 박사 과정의 불교라고 말한다면 ‘반야심경’을 비롯하여 공사상을 설하는 경전들은 석사 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반야심경’을 제대로 알려면 그 전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 천태 교판에 의하면 그 과정에 해당되는 경전은 아함부(阿含部)와 방등부(方等部) 경전이다. 즉, 천태 교판은 불제자가 대승불교의 핵심인 공(空) 사상을 공부하기 전에 소승불교(아함부)와 대승불교의 기초(방등부)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는 기본적으로 아함부의 가르침인 오온, 십이처, 십팔계, 사성제, 팔정도 등을 소승, 즉 목표가 낮은 ‘난쟁이 교리’라고 폄하한다. 문제는 이런 대승의 주장을 불교에 입문하는 초기에 받아들이게 되는 한국의 불제자에게 아함부의 가르침은 부정하고 넘어서야만 하는 교리가 되어버린다는 점, 그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아함부 경전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 장소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유세가 진행되고 있다고 치자. 첫 번째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말한 다음 퇴장했다. 이어서 두 번째 후보가 등장하여 첫 번째 후보의 공약들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논박했다. 이 비유에서 첫 번째 후보가 아함부 경전이고, 두 번째 후보는 대승 경전이다.

‘반야심경’은 대승을 대표하는 경전으로서 아함부 경전을 조목조목 무(無)자를 앞에 붙여 부정한다.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안계내지무의식계, 무무명역무무명진, 무노사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등 ‘반야심경’에 보이는 수많은 무자 뒤에 따라오는 내용은 아함부 경전이 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각기 다른 두 주장 중 어느 편이 옳은지를 판단하려면 한쪽 주장만을 들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따라서 두 번째 후보의 말만을 들어온 우리는 첫 번째 후보를 다시 불러와야 한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후보가 그를 비판한 내용을 말해주고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현재 한국불교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방불교가 한국불교로 유입되고 있다. 문제는 남방불교가 대승불교에 의해 소승이라고 폄하된 아함경과 대동소이한 팔리어(Pa-li-語) 경전을 신봉한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함부 경전과 팔리어 경전을 소승이라 부르며 폄하하는 것은 남방불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필자는 지금 아함부 경전만이 옳다든가 대승경전이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제하고 아함부 경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자는 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대승불교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미래불교를 훌륭하게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 대승경전은 있지만 소승경전은 없다. 나아가, 바른 이치를 설하는 언설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다 불교 경전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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