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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선묵혜자 스님과 도선사 두부전

맛에 탐착하지 않는 ‘정신의 공양’이 사찰음식 지향점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도안사.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 풍광은 잠시 눈길이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근심과 걱정이 씻겨 내린다. 한편으로 도안사는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기도 방법을 제시하고 신심을 다져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혜자 스님이 주석하며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선묵 스님은 2006년 9월부터 불자들과 매달 한차례 산사순례에 나서 2015년 10월 108곳의 사찰을 참배하는 대장정을 회향하고, 현재는 전국의 기도도량 53곳을 순례하는 ‘53기도도량순례기도회’를 진행 중이다.

출가 때 도선사 가난한 암자
아침 멀건 죽으로 하루 시작

짠 김치와 멀건 시래기국이
허기를 달래는 찬거리 전부

특별한 날에 겨우 맛보는
조청 담근 연근졸임 별식

두부전 부치는 날은 잔치
영양 고려한 큰스님 배려

선묵 스님의 중생포교와 정법수호의 원력은 다름 아닌 스승 청담 스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됐다. 1966년 14살 나이에 도선사로 출가한 스님은 은사 청담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곁에서 시봉하며 수행했다. 통도사, 송광사 등지의 강원과 선원에서 공부를 한 것은 청담 스님이 입적한 후다.

스님이 출가할 당시 도선사는 아주 가난한 암자였다. 법당 한 채에 스님들이 끼어서 잘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와 청담 스님이 기거했던 요사가 전부였다. 그곳에서 스님 다섯 분과 행자 여섯이 함께 생활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된장, 고추장도 없어 신도들 집에서 얻어다 먹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일이 더욱 많았다. 행자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것은 물론 밥과 설거지를 하고, 밭 메고, 마당 풀 뽑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등 어른스님들이 시키는 온갖 허드렛일을 다해야 했다.

“아침공양은 언제나 죽이었어요. 그런데 말이 죽이지 조금이라도 되게 쑤는 날이면 단박에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은사스님은 늘 ‘절집 죽은 하늘의 별이 보일 정도로 묽게 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떠먹을 것도 없어 술술 마시면 되는 미음 한 사발로 아침을 시작해 그 많은 일들을 해내려면 여간 힘에 붙이는 게 아니었지요.”

점심에는 사시 마지밥을 내려 공양했다. 이 역시 허기를 가실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저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찬이라고 제대로 있을 리 만무했다. 늘 소태처럼 짠 김치 한 쪽과 멀건 시래깃국 또는 배춧국이 전부였다. 도선사 마당에 작은 채전이 있어 그곳에서 배추나 무, 푸성귀를 심어 찬거리를 장만했는데 무조건 쓰다고 느낄 정도로 엄청나게 짜게 저려 먹었다.

봄이면 지천인 산나물도 도선사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필 도선사 주변의 산들이 돌산이라 나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신도들 보시물이나 가끔 장에서 봐오는 식재료로 스님들 찬을 만들고 재도 지냈다.

“별 것 없는 살림이지만 공양간은 늘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은사스님이 수시로 공양간을 점검했기 때문이지요. 어쩌다 수채 구멍에 콩나물 줄기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걸 주워 당장 당신 상에 찌개로 끓여 올리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밥풀 하나를 줍기 위해 십리를 뛰어갔다고 엄하게 경책했어요. 그렇게 은사스님은 모든 일에 빈틈이 없이 철두철미했고, 덕분에 우리는 늘 배가 고프고 긴장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암자라고 별식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묵 스님은 도선사 특식으로 ‘연근조림’을 꼽았다. 연근을 조청에 푹 달여 만든 연근조림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또 봄에는 산에서 산초를 따와 조선간장에 절여먹었다. 산초는 기름기가 많아서 기름을 짜 먹기도 했다. 그 향이 얼마나 고소하고 특이한지, 산초기름을 짜면 그 향이 족히 십리는 펴졌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두부전’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도선사는 두부가 들어오면 공양간이 아닌 은행나무 아래 솥뚜껑을 뒤집어 걸쳐 놓고 전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일은 꼭 행자들이 전담하도록 했다.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행자들은 전을 부치면서 슬쩍슬쩍 맛을 보곤 했는데 두부가 귀한 시절이기도 했지만 몰래 맛보는 두부전이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다. 이런 연유로 은행나무 아래에서 두부전을 부치는 날은 그야말로 ‘행자들의 잔칫날’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먹을 게 변변찮았던 시절 행자들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한 청담 스님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는 게 선묵 스님의 생각이다.

청담 스님은 “맛에 취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한 “음식조차도 좋고 나쁨의 분별심을 내지 않고, 오직 무차별의 마음으로 ‘정신의 공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는 힘든 일과와 배고픔에 서러워 울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새 은사스님의 가르침은 선묵 스님의 지남이 되었다. 이에 음식과 관련해 맛이 있건 맛이 없건 간에 늘 공평하게 나누고 조금씩 먹는 것이 습관이 됐고, 어떤 음식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탐하지 않는다.

“사찰음식문화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그 맛에 탐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음식이든 오로지 맑고 깨끗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차별 없이 먹고, 그 힘으로 반듯하게 수행해 성불하리라는 굳은 신심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사찰음식문화의 토대요, 근본정신일 것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선묵혜자 스님은

1966년 서울 도선사에서 청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통도사와 송광사 등지에서 수학했으며 도선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도안사 주지와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소임을 맡아 불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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