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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전시’의식 메뉴얼

우리의 국보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 양국 스님들로부터 거룩한 예경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불교계 측의 헌다의식에 이어 한국봉행단은 헌화를 비롯해 범패와 작법무를 선보였고, 한일 양국 스님들은 ‘반야심경’을 함께 봉독하며 산화공양도 올렸다. 잠시나마 박물관은 완벽한 도량으로 변모했다. 일본 기자들이 “작법무와 범패에서는 독특한 생명력이 느껴져 특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며 감탄했다고 하니, 그 공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환희심은 실로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벅찬 감동을 안고 한일 양국의 반가사유상을 마주한 사람들, 그들은 두 반가사유상으로부터 어떤 법문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전시란 관람객과 전시 대상물 사이의 새로운 소통 체계를 구축하여 의미의 공유를 유발시키는 중재적 행위’라고 했다. 이 정의에 비춰 보면 관람객이 전시 대상물과 소통한다는 건 전시물에 담긴 메시지를 관람객이 나름대로 해석해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같은 전시물이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주제,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따라 그 소통 방법이나 메시지도 달라질 수 있겠다. 이는 곧 기획자의 의도가 관람객과 전시물과의 소통 역할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미소의 부처님-2구의 반가사유상’ 릴레이 전시는 성보를 전시하는 데 있어 기본 의식 등의 종교성이 더해질 때 문화재에 담긴 정신적 가치까지 올곧이 표출되어지는 고품격 전시로 거듭날 수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기획자의 의도가 멋지게 펼쳐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 기획자는 박물관만이 아니다. 주구지, 즉 사찰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의식을 봉행해야 목조반가사유상을 전시할 수 있다’는 의지를 주구지가 표명했고, 한일 양국의 박물관 측이 사찰 측이 제시한 전제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시 자체가 성사될 수 있었다. 반문해 본다. 우리도 이러한 불교의 정체성을 살린 고품격 전시를 기획해낼 수 있을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주 북장사 괘불·소원을 들어주는 부처’를 전시하고 있다. 사찰과 중앙박물관이 전시에 앞서 기본 의식 봉행에 대한 협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물론 없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종단이나 교구본사 등의 사찰이 전시에 따른 의식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보거나 그에 대한 기본 매뉴얼을 제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계는 그동안 ‘헌다 불허’ 방침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최근 행보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문화재 이기에 앞서 성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당해 기관을 비판했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교계 스스로 성보전시관이나 일반 박물관 등에서 성보를 전시할 경우 기본 의식은 어떻게 진행할 지 논의한 후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 불보살님이 나투는 불상이나 괘불, 탱화가 전시될 경우에 한해서라도 이에 따른 구체적인 의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사찰과 일반 전시관과의 의식 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창구도 개설해야 한다. 일례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해외 교류 전시회는 조계종 총무원이, 그 이외의 각 지방 전시회는 해당 교구본사가 담당한다는 식의 업무분담을 정해야 효율적일 것이다.

부석사 괘불은 두 점이다. 1745년작 괘불은 부석사에 있지만 그보다 61년 앞선 1684년 괘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언젠가 1684년작 괘불을 전시할 수도 있다. 그 때 기본의식 메뉴얼과 창구 개설 유무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의 행보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주구지가 펼친 거룩한 전시를 우리도 멋지게 기획할 수 있다.

성보로서의 가치를 구현해낼 주체는 교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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