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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열정으로 천진불 향한 등불 밝힌 서른 살 동련의 ‘불모’

어린이 포교와 신행 40년 여교사모임 ‘반야회’

▲ 한결같은 신행 모임과 어린이 포교의 원력을 실천해 온 여교사모임 반야회가 40주년을 맞았다. 지금도 천진불 포교의 견고한 미래를 발원하는 이들은 동련 30주년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불모(佛母)’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카랑카랑한 스님의 음성이 들렸다. 옆집에서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음량이었지만, 아파트의 열린 대문 사이로 은은한 향기처럼 퍼져 나온 소리는 스님의 지극한 법문임이 분명했다. 정작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 자리에 스님은 없었다. 대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부좌를 튼 채 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법문은 거실 한쪽에 비치된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마치 법좌에 오른 선사를 마주하듯 이들의 표정은 합장 인사로 법문이 마무리될 때까지 진중하고 또렷했다.

故 박정자 보살 원력으로 결성
40년 전 11명 ‘11면보살’ 발원
월례법회·성지순례로 신심 다져

어린이지도자회로 동련 기반구축
대한불교교사대학 회생에 앞장

전국 누비며 2000만원 모연
5년 간 운영 토태 마련 후 회향
“지도자가 곧 불모” 지금도 새겨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법문입니다. 똑같은 법문을 한 10번은 들었을 겁니다. 다른 스님들의 법문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어요. 주옥같은 법문을 남긴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음성으로나마 친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여든을 훌쩍 넘겼다는 안옥분 보살의 표현에 선방의 수행자처럼 진지하던 이들의 표정이 어느새 미소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저마다 얼굴에는 여러 겹의 주름이 졌고 볼 양쪽에는 거뭇거뭇 검버섯도 자리 잡았다. 머리카락은 완전히 은발이거나 은발에 가까운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전까지 꼿꼿하던 허리는 벽에 기댔고 가부좌를 틀었던 다리도 양손으로 주무르며 천천히 펴야 했다. 안민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송외순 보살이 말문을 열었다.

“세월 따라 나이만 들었지 불교 수행의 길 위에서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입니다. 그래도 어린이 포교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고받던 눈빛들이 다시 초롱초롱해졌다. 이들은 40년 전 전국에 어린이법회가 들불처럼 일어나도록 이끈,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진불을 향한 자비심을 놓치지 않는 여교사불자회의 원조 모임 ‘반야회(회장 김시애)’의 회원들이다.

동련 30주년 기념식을 앞둔 어느 날 “반야회는 어린이법회 지도자 양성에 매진해 온 동련의 30년 역사에 있어서 빼놓지 말아야 할 존재다. 비록 많은 모임이 생성되고 사라졌지만 이 모임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는 최미선 동련 사무국장의 설명을 듣고 물어물어 반야회 법석을 찾아갔다. 물론 단순하게 표현하면 아파트의 거실에 둘러앉은 노보살들의 소박한 모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차담의 주제를 40년 전으로 옮기자 이들은 티끌 한 점 없이 천진한 미소로 어린이 법회 지도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김정숙 보살이 반야회의 출발을 더듬었다.

“반야회는 초등학교 불자 여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모임이 시작됐어요. 초대회장은 지난해 12월13일 세연을 다한 고(故) 박정자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반야회도 없었을 겁니다. 그때 선생님의 불심은 가는 학교마다 여교사들을 불자로 키워 낼만큼 대단했어요.”

반야회 회원들에 따르면, 박정자 보살은 청룡초등학교 교장을 퇴직하고 어린이법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동료 여교사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 온 전법사였다. 때로는 모질고 때로는 호통쳤지만 이들이 기억하는 박 보살의 교직 시절은 어린이들을 향한 지극한 관세음보살이었고 후임 교사들에게도 불자로서 귀감이 됐다. 그런 박 교장과 함께 불교 공부를 발원한 여교사들이 모여 여교사불자회 ‘반야회’를 출범한 것은 40년 전, 박 교장이 연제초등학교에 근무 당시인 1976년이었다. 현 반야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시애 보살이 이야기를 이었다.

“당시 제가 박 교장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했어요. 주말마다 선생님과 절에 다녔지요. 그러다가 정관 큰스님을 지도법사로 부산 영주암에서 여교사 11명이 ‘11면 관세음보살’을 발원하며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스님께 받았습니다. 교사들이 만든 신행단체라고 하니 큰스님께서 ‘어린이들에게 지혜를 전하라’는 뜻으로 지어주셨어요.”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사찰의 재일 법회에 동참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반야회 회원들은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저녁마다 근무를 마치고 법당에 모여 불교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특히 반야회 회원이 아닌 교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 여름·겨울 방학 성지순례는 인기가 대단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목적지 도량에 도착할 때까지 항상 기도가 이어졌고 성지순례 현장에서는 무박 2일 철야정진을 원칙으로 수행했다. 힘들어서 오지 않는 사람보다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반야회 회원만도 100명이 넘어갈 정도였다.

▲ 초대회장 고 박정자 보살(앞줄 오른쪽)과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 그리고 반야회 회원들.

반야회는 법회의 효율성을 위해 모임의 규모를 늘리기보다 분회를 추진했다. 사하구 당리동의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는 ‘자림회’를 시작으로 구역별 여교사 모임을 독려했고 ‘청림회’  ‘보림회’ ‘아리회’ 등이 속속 등장했다. 내원정사에서 220여 명의 초등 여교사들이 모여 합동법회를 치른 환희심은 지금도 반야회 회원들의 가슴 속에 생생하다. 당시 현익채 금정중 교법사의 제안으로 남자 교사들이 동참했고 이후 전국교사불자연합회 결성까지 이어졌다. “교사불자연합회의 태동은 반야회라고 해도 좋다”는 것이 이순길 보살의 설명이었다.

가슴 속 깊이 견고한 신심을 뿌리내린 반야회를 기반으로 어린이지도자회가 결성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이 모임은 1986년 동련이 출발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우정희 보살은 “당시 교사들의 법회 지침서였던 ‘동련’에 실으려고 매달 원고를 보냈다. 주제도 다양했다. 음악도, 미술도 다뤘다.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어린이법회 젊은 지도자들과 더불어 반야회를 비롯한 많은 불자 교사들의 원력이 동련의 성장에 힘을 보탰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어린이법회가 활성화되고 지도자들도 다양하게 배출되면서 포교 일선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던 반야회가 천진불을 위해 다시 열정을 쏟아내는 인연을 만났다. 초대 회원들이 정년퇴임을 한 이후인 2000년대 초반, 대한불교교사대학 교무위원 소임이었다. 당시 대한불교교사대학은 개설 2년 만에 운영위기에 놓여 있었고 어린이법회 지도자 양성의 목적을 가진 이 기관의 난항 소식을 접한 반야회 회원들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았다. 자체적인 모금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제주부터 서울까지 전국 사찰을 찾아서 교사대학을 알리고 후원과 지도자들의 입학을 요청했습니다. 큰 절에서 냉정하게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고 시골의 작은 절에서 선뜻 큰 후원금을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발품을 팔고 팔아 2000만원이 모였습니다. 그 자금이 바탕이 되어 다시 대한불교교사대학이 일어설 수 있었어요. 차비 한 푼 받지 않았고 주 4~5일은 사무실에 모여서 다음 강의를 준비하다 막차 버스에 지친 몸을 싣기가 일쑤였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반야회 회원들의 교무위원 활동은 대한불교교사대학 3기부터 5년간 이어졌다. 재정을 아끼느라 주위 관계자들로부터 ‘짠돌이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좋았다. 어느 젊은 스님을 찾아갔을 때 “어린이들이 오면 시끄럽기만 하다”며 법회의 필요성을 외면할 때는 울컥 눈물도 났다. 그래도 어렵사리 새롭게 발굴한 강사에 대한 높은 호응을 접할 때면 서러움은 눈처럼 녹았다. 대한불교교사대학이 인터넷 강의 체제로 정착되면서 지금은 반야회 회원 모두 교무위원 소임을 내려놓았다. 대신 아무리 바빠도 빼놓지 않았던 신행 모임 ‘반야회’로 다시 복귀했다. “11명으로 시작한 반야회가 40년이 흐른 지금 다시 13명이라는 숫자로 돌아왔다”고 웃음으로 손을 맞잡는 이들은 사찰 법회를 이어가다 지난해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김시애 보살의 집에서 법회를 진행한다. 가정에서도 천수경, 금강경 독송과 참선 수행, 음성 법문의 시간은 빼놓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갈수록 어렵다는 어린이 포교의 길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렵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40년 전에도 참 어려웠다는 사실입니다. 법정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불일암에 갔을 때 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교사들은 일당백이다. 한 사람의 불심을 가진 선생이 해마다 70~80명 어린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안목으로 보면 선생님들은 부처님을 낳는 불모’라는 말씀이셨어요. 시대가 바뀌어도 어린이를 위한 희망의 등불을 들 수 있는 이들은 지도자,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봅니다.”

은발의 노보살이지만 얼굴은 저마다 생기로 가득 차 있는 이유, 이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천진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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