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정상인 번와와공〈끝〉

와공 인생·땀 먹은 기와 앞에 세월도 쉬어 가더라

▲ 36년째 기와를 놓지 않은 정상인 번와와공은 천직이라고 했다. 그 말에 숙명과 자긍심이 묻어났다.

기와는 땀을 먹는다.

장인 땀 먹지 않은 기와는 지붕을 만들 수 없다. 씨줄날줄 얽듯 촘촘하고 아름답게 선을 잡아 내려오는 기와로 얹은 지붕은 그네들 땀이 빚은 결정이다. 번와와공들 땀으로 뜨거운 태양, 모진 비바람을 버틴다.

문화재수리기능 자격 2개 인정
번와와공·드잡이공 잇달아 취득

절서 유년시절…전통기와 관심
지붕일하는 장인들에 매력 느껴
1981년 입문 36년째 외길 고집
한국인물대상 문화재보존 대상

개인사비 털어 문화재학교 설립
대목·단청·와공 전문가 양성
복지만두레로 보시바라밀 실천

‘번와와공(翻瓦瓦工)’은 기와 덮는 장인을 말한다. 번와는 ‘기와[瓦]를 뒤집는다[]’는 뜻말이다. ‘뒤집는다’에는 기와를 뜯고 다시 잇는다는 의미가 담겼다. 집에 흐르는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주로 목재로 세워진 전통건축물 지붕에 물이 새면 썩는다. 습기 차면 썩을 수밖에 없는 게 나무다. “기와 한 장 잘못 놓으면 대들보가 썩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속에서부터 곪는다.

▲ 정상인 번와와공은 전통기와를 올리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도편수가 목재를 아무리 잘 짜 맞춰도 비가 새면 집이 아니지요. 기와 하나 잘못 올리면 속에서부터 썩어서 10년 20년 지나면 집이 내려앉아버립니다. 옛날엔 목수 3일치 품삯을 와공들에게 일당으로 주기도 했어요. 그만큼 번와는 중요합니다.”

정상인(58) 번와와공이 기와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기와에 먹이는 땀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36년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스님이었다. 그에게 절 마당은 놀이터였다. 절에서 먹고 자면서 자연스럽게 ‘절일’을 보고 자랐다. 전각들 처마곡선은 어여뻤고, 용마루는 늠름했다. 그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기와 놓는 장인들이 부러웠다. 아니 처마곡선 만들고 용마루 설계하는 솜씨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님이 시키는 심부름이 귀찮지 않았다. “얘야, 기술자가 못 내려가니, 밥 좀 지붕 위로 올리거라”는 할아버지 스님 말씀이 싫지 않았다. 시쳇말로 매력적이었다.

고종 사촌 형이 와공이었다. 지금처럼 전문가 자격증은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따라다녔다. 갓 스무 살 넘기고 몇 해가 지나서부터였다. 1981년이었다. 손재주가 남달라서인지 미친 듯 어깨너머로 배워서인지 일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1년 만에 와공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스스로 벌판에 섰다. 1982년 스레트기와 공장을 세웠다. 1990년 대청기와사를 등록하고 2002년 ㈜대청기와건설로 키웠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오로지 혼자 기와로 일어섰다. 한여름 뙤약볕에 몸이 검게 익어도 기와를 이었다. 기와에 고기 올리면 그대로 익는다는 뜨거움이었다. 그 불볕더위를 가장 먼저 받는 지붕에 올라 기와에 땀을 먹였다. 아예 빨아 들였다. 온몸에서 흘러내린 땀이 기와와 맞닿으면 금세 사라졌다.

일꾼들만 올려놓고 뒷짐이나 지고 있지 않았다. 같이 지붕에 올라 기와 잇기를 수차례. 전통건축물이나 문화재에 올린 기와는 오랜 세월을 쌓았고, 그가 세운 대청기와건설에 신뢰도 쌓여갔다. 번와에 지혜도 쌓여가니 전문가 자격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2006년 문화재수리기능자격 제4554호 번와와공을 취득했다.

▲ 기와제작을 중단한 그는 최근 기와 대리점을 겸하고 있다.

번와는 까다롭다.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오랜 지혜가 숨어 있다. 생석회가 기와 밑에 까는 흙과 얼마나 잘 섞이느냐에 따라 기와 수명이 좌우된다. 흙과 생석회의 절묘한 배합이 1000년을 담보한다고. 시멘트는 고작 100년에 불과하다. 지붕에 1주일이나 10일 동안 바짝 말려서 기와를 올려야 한다. 세월에 한 번 씻긴 흙 위에 기와를 이어야 세월이 빗겨가거나 쉬어 간다는 오묘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준공날짜에 맞춰 기와를 올리려는 발주처가 그는 못내 안타깝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서까래와 지붕 사이 공간을 메우기 위해 목재를 넣고 흙을 덮고 나서야 기와를 얹는다. 목재를 많이 넣으면 선이 죽고 적으면 기와가 쉽게 부서진다.

다음해인 2007년에는 드잡이공으로 문화재수리기능자격 제4591호를 손에 쥐었다. 기와일을 하다 보면 집을 이동하거나 수평을 맞추는 등 균형 잡고 기와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번와에 있어 중요하다. 설계도면이나 고증자료를 토대로 기울어지거나 뒤틀린 부분을 기록하고 잡아야 한다. 전통건축물인 경우 목재를 끼워 맞춰 세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작 그는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번와를 하는, 집에 지붕을 얹는 마음가짐에 무게를 둬서다.

“기와 잇는 일은 돈보다 자존심이고 자긍심입니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심성의껏 해야 와공이에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래야 장인입니다.”

사람이든 어떤 생명붙이든 깃들어 살아가야할 집의 지붕에 올라가는데 겉멋 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침이었다. 문화재라면 기와가 먹는 땀은 비교불가다. 그 역시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문화재에 기와를 올릴 때는 내 혼을 다 불어넣습니다. 혼을 쏟아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지요. 더군다나 선조들 지혜가 빚은 문화재는 하나의 작품입니다. 처마곡선이라든지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우러지도록 기와를 놔야 합니다. 첫 기와를 놓을 때 막 놓는 게 아니지요. 조화로운 지붕을 구성하고 중심 잡는 첫 기와를 놓는 겁니다.”

그랬다. 그는 기와에 땀뿐만 아니라 혼까지 먹이고 있었다. 스스로 미쳤다고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게 신념이기도 했다. 전국 각처에서 그를 찾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흘리는 땀, 쏟아내는 혼이 필요했다. 국보와 보물 문화재가 고스란히 남은 보은 법주사 주요 전각은 그가 도맡아 번와했다. 팔상전, 대웅보전, 원통전은 물론 지방문화재가 있는 말사 전각들 지붕에도 그의 땀이 흘렀다. 

보은 복천암 대웅전, 충북 동암사 대웅전, 괴산 공림사 대웅전, 대구 팔공사 대웅전, 안성 석남사 전체, 청원 현암사 대웅전 등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에 그가 기와를 이었다. 옥천 하동정씨 재실, 금산 안동권씨 재실, 청주 보성오씨 재실, 함양 전주이씨 재실 등 전통건축물 지붕에는 어김없이 그의 잇는 기와들이 앉았다. 그렇게 문화재를 비롯한 전통건축 500여개에 혼을 새겼다.

문화재청은 표창장으로 그의 열정을 높게 샀다. 하지만 그는 아쉽다. 값싼 기와나 대충 일을 하려는 일꾼들이 눈에 보여서다. 해서 아예 주머니를 털었다. 문화재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최근 사비 들여 충북 옥천 이원면 소재 폐교를 매입, 문화재학교로 탈바꿈시켰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대목, 소목, 단청, 와공 분야 후학을 길러낼 셈이다. 그는 2015년 8월 학교 설립을 두고 이런 글을 썼다.

“문화유산은 겨레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재난과 역경 견디며 우리 앞에 서 있지요. 한 번 손상되면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기에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그대로 후손들에게 남길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투박한 말투에 담긴 진심은 이렇다.

“문화재는 내 인생입니다. 찬란한 문화재가 훼손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요.”

▲ 복지만두레 회장직을 수행하며 보시바라밀을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그는 지붕에 기와만 잇는 게 아니다. 소외계층 안정 울타리도 잇고 있다. 시민자율 참여형 사회안전망인 대전 ‘산내동 복지만두레’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복지만두레는 국가 복지정책에서 소외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동 단위로 종교, 경제, 복지, 의료, 학교, NGO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다. 생일상을 차려드리거나 배추를 심어 김장을 담가 전한다. 수확한 감자 등 채소와 과일을 전하는 일도 한다. 2004년부터 매년 저소득층 후원을 해왔고 2010년부터는 순금 메달을 기탁하는 등 남다른 보시바라밀을 실천 중이다. 제15회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물대상’ 시상식서 문화재 보존 및 사회봉사 공로부문 대상을 받았다.

시인 김종삼은 심우도를 보고 쓴 시 ‘묵화’로 삶을 노래한 적 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그랬다. 먹으로 그린 그림을 뜻하는 ‘묵화(墨畫)’ 같다. 정상인 그의 인생은 화려하지 않지만 수묵화처럼 깊었다. 그 역시 할머니였다. 검게 익은 그을림기와에 얹은 손은 소 목덜미에 얹혀진 할머니 손이다. 그의 피부는 기와처럼 검다. 태양, 바람이 빚은 세월의 색이다. 그는 오늘 하루 그리고 앞으로 몇 백년 동안 지붕 아래 살아갈 누군가를 생각한다. 문화유산으로 남겨질 문화재를 걱정한다. 검어지고 손이 부어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 적막해도, 빗물 새지 않아 쉽게 썩지 않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일 잘했다”고.

정상인 번와와공은 기와에 땀과 혼을 먹인다. 쉬어가는 세월은 기와에 천년수명을 약속하리라. 그 기와에 번와와공 한 사람 인생 스몄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전통사찰에 수백년 이어갈 지붕 얽어

장인 손길 닿은 문화재

전통건축물 번와 500여곳
법주사 주요 전각 등 공사

▲ 법주사 쌍사자등(국보 5호).

▲ 법주사 금강문.

정상인 번와와공은 사찰 전각을 비롯해 전통건축물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그가 직접 기와를 만지고 올린 전통건축물이 500여곳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보은 법주사 전각들은 그에게 가장 애착 가는 작품이다.

법주사 일주문과 수정교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객을 맞이하는 건물 지붕에 기와를 이은 장인이 그다. 겹처마 맞배지붕인 금강문에 한 장 한 장 암키와 수키와를 가지런히 얽었다.

▲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국보 제55호 보은 법주사 팔상전 지붕에 그가 올라갔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5층 목탑 형식인 팔상전은 통일신라시대 처음 세워진 문화재다. 당시 자취는 돌기단부에만 남았고 현재 건물은 1605년에 재건되고 1626년에 다시 수리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대규모 목탑형식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915호).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인 대웅보전 지붕공사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 전각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높이 약 19m에 이르는 큰 전각이다.

▲ 법주사 원통보전(보물 916호).

대웅보전 다음으로 보물로 지정된 원통보전(보물 제916호)의 우아한 처마곡선과 쭉 뻗은 기와도 그의 솜씨다. 원통보전은 주심포계 모임지붕 건물이다. 쉽게 말해 추녀마루로만 구성되고 지붕 꼭대기에 ‘ㅡ’자 모양으로 펴져 있는 용마루 없이 하나의 꼭짓점에서 지붕골이 만나는 형태다.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8각 석등인 쌍사자 석등 보호각 지붕공사 역시 그가 맡았다.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