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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포교를 위한 강설과 그 인연 ③

“십시일반 나눔과 포교는 만발공양을 완성합니다”

▲ 1996년 말레이시아에서 봉행된 불광산 성운대사의 홍법강연. 대만 불광산 제공

“홍콩에서 강연을 경청한 불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미국, 유럽, 호주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콜로세움에서 어떤 내용의 설법을 듣고 왔노라”고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데 콜로세움 강연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홍콩에서 불법을 펼치는 강연은 빈승이 인간불교를 국제적으로 펼치는데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왜 일까요? 제가 홍콩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면 이미 밤 9~10시가 되는데 불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마침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다음 날 아침이 밝는 시간입니다. 홍콩에서 강연을 경청한 불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미국, 유럽, 호주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콜로세움에서 어떤 내용의 설법을 듣고 왔노라”고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먼 훗날 세계 각국에서 빈승이 법을 펼치려고 하면 콜로세움체육관에서의 포교성황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동참 불자 모두가 현지에서 홍법 교화를 함께 펼치는 것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1995년 호주 남천사에서 정초식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참석하게 될 것인지 제자들은 서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남천사가 위치한 곳은 시드니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울런공시(市)의 한 구역으로, 아는 사람들도 없었고 신도들도 몇 명 되지 않아 사람들이 얼마나 올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100명이라고 하고 누구는 300명 정도는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빈승은 아마도 500명은 넘게 올 거라고 짐작하면서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정초식 하루 전날 “내일 도시락을 몇 개나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자 몇 명과 함께 다른 포교당에서 노심초사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1000개의 도시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남들한테는 말을 못한 채 사람이 많으면 내놓고 사람이 적으면 여기저기 나눠주거나 사람이 아주 없으면 갈매기한테 먹이로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정초식에 적어도 5000명 이상이 참석하였고 울런공 언덕 여기저기가 인파로 가득찼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아이들을 이끌고 온 사람들은 광동말로 홍콩에 있는 아들, 딸,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와 참석하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대만불교가 국제적인 발전을 하는데 있어서 홍콩체육관의 도움과 인연이 가장 크다는 것을 그렇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동방의 진주 ‘홍콩’이 세계로 정보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송신탑의 역할이 되어준 것이 고맙습니다.

빈승이 홍콩에서 불법을 강연하면서 넓은 공간에서 큰 무대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불광산의 많은 제자들이 함께 동참해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청년 제자들이 새로운 시대적 지식을 체득하고 갖가지 배치와 이 시대에 걸맞은 온갖 공연 구성으로 연출해낸 것입니다. 자혜, 의여(依如), 만련(滿蓮)이 주지를 이어 맡았고 현재는 영부(永富) 등 여러 스님의 인솔 아래 홍콩의 불자 모두가 자원봉사자가 되어 열정적으로 함께 업무에 동참하면서 해마다 성대한 포교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콜로세움체육관 강연 이전에 홍콩불교에는 아주 좋지 않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홍콩은 경마가 매우 보편적인 곳이라 모두들 길에서 출가자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깎은 출가자를 만나면 도박에서 진다고 여겨 택시 기사들조차 출가자를 태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출가자에 대한 홍콩사회의 관념을 제가 바꾸었다는 것을 빈승은 오늘날에도 아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출가자는 재물신(財神)이니 불심이 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출가승이 홍콩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했을 때 어떤 가게에서는 돈을 받지 않거나 깎아주기도 하였고 더 말할 것 없이 택시기사도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재물신과 재물보살을 태웠으니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홍콩의 불교지도자 각광(覺光) 스님과 영성(永惺) 스님 등도 저의 강연에 참석하시어 지지해 주시면서 빈승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한 사대천왕의 한사람인 곽부성(郭富城)과 가수 광미운(鄺美雲)·딩페이(丁珮)·염초령(冉肖玲), 영화배우 정패패(鄭佩佩)·증지위(曾志偉)·진효동(陳曉東) 등이 삼귀의계를 받았습니다. 불교계에서 지역색을 따지지 않고 남과 나를 분별하지 않고 모두가 힘을 합쳐 불교를 널리 펼친다면 그 성과는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1988년 콜로세움홍콩체육관에서의 강연을 시작으로 불광산은 불교 국제화의 홍법 포교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이전에 비록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을 하였었지만 모두 일회성이었고 아직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았었습니다. 홍콩 이후 마치 세상이 다 알고 있었듯이 인간불교를 펼치고 보급하는데 있어서 일순간에 여러 곳에서 호응을 해주면서 세계 각처 여러 곳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조차 저를 바티칸으로 초청하여 교황 바오로2세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동시에 이탈리아 평화의 마을 ‘아시시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참관하도록 초청하였습니다. 귀빈으로 저를 접대하면서 내부의 모든 시설과 도서관을 참관하도록 안내하였고 모든 천주교 신부와 함께 식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어느 한 해는 남미 브라질 상파울루 각 종교연합회에서도 ‘상파울루 SE성당’에서 강연하도록 저를 초청하였습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국교의 수도원을 법당으로 쓰도록 우리에게 양도해 주었고 프랑스에서는 백 년이 된 성곽을 받게 되어 프랑스에서의 포교기지로 삼았습니다. 호주 울런공 시장이 직접 대만으로 찾아와 남천사 건축용도로 26에이커(1에이커=4046.85642㎡)의 토지를 기증해 주었고 호주 이민 장관은 남천사 뒷산 공원용지의 100년 임대료 100호주달러를 기부하여 우리들의 건설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세계 각지에서 보리종자를 뿌리 내리고 성장했습니다. 일순간 바람이 일고 구름이 피어나듯이 여러 곳으로 인연이 연결되어 제자들도 신심을 내어 코스타리카, 파푸아뉴기니 혹은 아프리카 콩고, 스와질란드로 가서 포교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비구니인 의래(依來), 영가(永嘉), 만목(滿穆) 스님과 같은 몇 명의 수행자들이 먼저 아프리카에 가서 개척하였고 나중에 비구들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국제불광회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두 곳에 불광협회를 설립하였는데 러시아의 모스크바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도 불광회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불자 장승개(張勝凱)가 집을 내놓아 절을 개원했으며 많은 곳의 신도들 역시 도량설립에 앞장섰습니다. 순식간에 전 세계 70여개국 200여곳에 달하는 도량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됐습니다.

특히 북미지역에서는 서부 LA에서부터 시작해 중남부 휴스턴, 오스틴 다시 동부 뉴욕, 보스턴과 심지어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퀘벡, 몬트리올 등 현지 신도와 정부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직접 현지에 와서 절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행히도 불광산에서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인재들을 미리 훈련시켰기에 각처의 필요에 맞게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절을 짓고자 방문하는 과정에서도 강연의 인연이 끊임없이 몰려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육조단경’을 연속 3일간 설하였는데 표 한장에 미화 60달러였습니다. 그런데도 서래사 대웅전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했습니다. 서래대학에서 방송통신강의 형식으로 ‘반야심경’을 강설하였는데 수업 한 번에 미화 100달러였는데도 수십개 국가도시의 인사들이 참가했습니다. 빈승은 수없이 많은 청중들이 정성스레 납부한 수업료 전액을 서래대학에 기증했습니다. 현재 제가 편찬해 발행한 ‘세계불교미술도설대사전(世界佛敎美術圖說大辭典)’의 영문판 제작에 참여했던 유항(有恒) 스님은 바로 그 당시 인터넷 강의를 들었던 학생입니다. 여러 해 동안 캘리포니아대학, 하버드대학, 예일대학, 코널대학 등 여러 유수대학 학부의 강연초청을 받았을 때 그 당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저는 기꺼이 대학에 가서 청년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국제불광회 세계총회가 설립된 이후 세계 각 대도시 미국 LA음악당, 파리 국제회의센터, 시드니 달링하버국제회의센터, 홍콩국제컨벤션전람센터, 도쿄국제회의센터 등과 같은 곳에서 회원대표대회를 개최했는데 매번 5000명의 회원이 참석하여 인간불교를 전파하는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미국정부는 5월16일을 ‘불광일(佛光日)’로 제정하였으며 빈승 역시 여러 번에 걸쳐 ‘환희와 융화’ ‘동체와 공생’ ‘존중과 포용’ ‘평등과 평화’ ‘환경보호와 마음보호’ 등을 주제로 오늘날의 사회적 이념과 견해를 대중들에게 강연했습니다. 또한 여러 도시에서 저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었는데 비자 받기가 쉽지 않아 입국과 출국이 어려웠던 예전 생각이 나게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이나 호주에 드나들기가 매우 편해졌습니다.

대중 강연에 몰려드는 청중은 현지에 불법을 홍포하는 불법 본토화의 기초가 됩니다. 강연 인연 외에도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이 있습니다. 1992년 빈승이 말레이시아 페낭강당에서 했던 강연은 대단히 큰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본래는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인데 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어찼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지 못하게 되자 “우리도 들어가서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요. 왜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라며 바깥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주지사인 ‘허자근(許子根)’선생이 무대에서 축사를 하다가 바깥에서 떠드는 이 소리를 듣고 “2만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체육관을 이 자리에 새로 지어 스님을 다시 모시고 강연을 듣도록 하겠다”라며 그 자리에서 약속했습니다. 1997년 약속이 현실이 되어 저도 정말 새로 지은 페낭체육관 낙성식 살정(灑淨) 의식을 증명하고 그 곳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타이베이국부기념관의 30년, 홍콩 콜로세움체육관의 20년 외에도 대략 가장 성황이었던 홍법대회가 있습니다. 1996년 회교국가의 수반인 수상의 특별허락을 맡고 혜해(慧海) 스님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샤알람 국립경기장에서 거행한 ‘만인삼보귀의법회 및 만인헌등기복홍법대회’에는 8만명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인간불교의 인간미’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는데 그 당시 교통부장관이자 말레이시아 화교공회 회장 임량실(林良實)과 내정부장관 황가정(黃家定), 에너지자원부장관 임아례(林亞禮) 등 여섯 명의 화교 장관들도 모두 자리를 함께 해 법문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이 여섯 명의 화교 장관들은 화교들의 지위를 끌어올리고 화교의 단결을 도모하고자 힘을 합하여 10번의 강연회를 준비하여 다시 저를 말레이시아로 초청하여 강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들 역시 저와 함께 각 주를 순회하였는데 매 회마다 청중이 2만명이 넘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후 2012년 각성(覺誠) 스님이 저를 위해 다시 샤알람 경기장에서 홍법포교대회를 개최하였는데 그때도 8만명이 참석했습니다. 그 중 절반인 4만명이 삼보귀의계를 받았고 2000명의 청년들이 합창한 ‘불교가 나한테 기대도록(佛敎靠我)’이란 노래공연은 장내를 감동으로 물들게 했습니다. 동참 불자들 모두 청년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감동했습니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에서 여러 해 동안 강연을 하였는데 매번 만명을 넘었습니다. 저는 불교의 국제화, 본토화, 인간화, 생활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약간의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확신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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