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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북한이탈 여대생

  • 기자칼럼
  • 입력 2016.07.04 12:17
  • 수정 2016.07.04 12:18
  • 댓글 1

“북쪽에서 온 여대생인데, 급하게 있을만한 곳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소설가 남지심 선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북한이탈주민 지원활동을 펼치는 NGO 통일바라밀숲을 이끌고 있는 남지심 선생이 도움을 요청한 것은 북한이탈주민 쉼터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연은 이랬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 여대생은 탈북 후 현재 서울의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다. 북한이탈주민에게 지원되는 얼마간의 돈으로 거처도 마련해 그럭저럭 서울 생활도 적응했다. 하지만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님에게 송금할 수 있다는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아 전했다.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하지만 돈을 건네받은 이는 ‘브로커’였다. 송금은 고사하고 행방조차 묘연하다. 더 큰 문제는 담보대출 받은 집이 넘어가는 바람에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는 점이다. 남지심 선생이 ‘있을만한 곳’을 수소문한 이유다.

이 학생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인 종교 활동이 활발하지 않지만 불교적인 정서를 지닌 주민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탈북 후 하나원에서부터 불교를 택하고 이후에도 줄곧 절에 다니며 신행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지심 선생과도 인연이 닿았다. 하지만 막상 북한이탈주민 쉼터를 찾아보니 대부분의 시설들이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불자학생을 기독교시설에 보내려니 영 내키질 않아요. 교계에 북한이탈주민 쉼터가 거의 없는데, 그래도 혹시 남 기자는 아는 데가 있을까 싶어서….”

안타까운 사연에 이곳저곳 알아봤지만 없던 시설이 갑자기 나올 리 만무했다. 지방 두어 곳에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 쉼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처지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먼저 거치게 되는 하나원에서의 종교성향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가 ‘성향에 가장 맞는 종교’로 불교를 택한다. 전체 입소자의 80% 가량이 종교를 택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친불교 성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원을 나온 후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80% 가량이 기독교를 택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북한이탈주민들이 불교를 외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 남수연 기자
이 여대생이 만약 기독교 신자였다면, 쉼터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를 미끼로 사기를 당한, 가뜩이나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야 할 불교가 정작 어려운 때 아무런 도움을 못주고 있다.

마땅한 곳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 통화를 하며 왠지 “죄송하다”는 말이 자꾸 따라 나왔다. 전화를 끊고도 씁쓸한 뒷맛이 영 사라지지 않는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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