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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태봉 스님과 마곡사 칼수제비

맛이란 귀하면 생기는 것…음식은 수행 도와주는 보조 역할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영취산 정상에서 바라본 통도사는 산과 물이 겹겹이 감싸 안은 모양이다. 영취산 자락에는 통도사를 비롯해 열아홉 개의 암자가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가장 오래된 암자가 백운암(白雲庵)이다. 지금도 백운암에 닿으려면 두 다리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 도리가 없다. 가파르고 힘겨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만다. 그렇게 백운암 오르는 길은 그 자체가 수행이다.

마곡사 살림살이 항상 궁핍
이불이 없어 짚단 덮고 자

매일 나물 섞은 죽으로 공양
겨울에는 월동초 심어 반찬

콩 재배해 두부 많이 먹어
생애 최고 별식은 칼수제비

‘흰 구름 암자’라는 이름이 더없이 어울리는 백운암에서 보면 속세는 아스라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 올해 법랍 57세인 태봉 스님이 상주한다. 스님은 13세 되던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수행해온 스님이 백운암에 터를 잡은 것은 9년 전이다. 출가인연은 통도사에서 시작됐지만 승려로서의 기본을 닦은 곳은 마곡사였다.

“1960년대 마곡사에는 50여명의 대중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적지 않은 인원이었어요. 입산하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저 역시 공양주, 원주, 채공, 원두 등 각종 소임을 다 살아봤습니다. 바쁜 일과와 고된 노동에 불만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원에서 경을 배우고, 선방에서 화두를 드는 것만큼이나 소임을 보는 것도 수행의 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행자’라는 글자에 ‘수’자만 붙이면 ‘수행자’ 아닙니까. 행자생활은 스스로를 낮추고 진정한 수행자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통도사에 비해 마곡사 살림살이는 정말 궁핍했다. 먹을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잠자리도 편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큰방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어른스님들은 아랫목에서 자고, 신참 스님들은 윗목에서 이불도 없이 초가지붕을 만들던 짚단을 덮고 자야 했다. 승복 또한 스님들이 직접 광목을 물들여 만들어 입었다. 옷의 형태를 유지하려면 풀을 먹여 다려야 하는데 다리미가 없어 냄비를 달궈 다리미 대신 사용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하루 세끼를 공양하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쌀이 귀했던 시절 식량을 담당하는 미감스님은 대중인원의 절반만큼만 식량을 내주었고, 원주스님은 부족한 양만큼 물을 붓고 무나 고구마, 나물을 섞어 실상 죽에 가까운 공양을 만들었다. 공양 후에는 반드시 어른스님들의 소참법문이 이어졌는데 대부분 몸과 마음,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내용이었다.

절집에는 항상 해야 할 일이 넘쳐났다. 특히 마곡사는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사찰이기에 더욱 그랬다. 스님들은 나무를 해 아궁이를 지펴야 했고, 논과 밭에 나가 일해야 했다. 특히 김장때는 사중의 모든 스님이 참여했는데, 김장이라고 해봐야 소금물에 푹 절여놓은 배추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부족해 겨울에는 ‘월동초’라는 것을 심어 먹었다. 월동초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 겨울 밭에 배추를 심고 그 위에 짚을 덮어두면 파란 싹이 조금 돋아나는데, 그것을 뜯어 소금, 간장, 고춧가루를 섞어 겉절이를 만들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그래도 콩을 직접 재배한 덕에 가을에는 두부를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두부를 만들 때마다 생기는 콩비지로 콩비지시래깃국을 끓여 먹었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어요. 콩비지시래깃국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삶은 시래기를 된장에 오래 치대는 것입니다. 오래 치대면 치댈수록 시래기에 간이 배고 부드러워져 한층 맛이 더해집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인 만큼 맛있는 콩비지시래깃국 만들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된장 담그기도 대중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었다. 콩을 삶기 위해 불을 때야 하니 따뜻해서 좋았고, 무엇보다 삶은 콩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된장 담그는 날은 행자뿐 아니라 사중의 모든 스님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즐겁게 운력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스님이 꼽은 최고의 별식은 칼수제비였다. 직접 수확한 밀을 빻아 가루를 만들고, 물을 부어 반죽한 후 밀대로 아주 얇고 동그랗게 만든다. 이것을 다시 착착 접어 칼로 잘라 면을 만들고 미역귀, 호박, 다시마 등으로 우려낸 국물에 함께 넣어 끓여낸다. 여기에 간장으로 간을 하고 호박 고명을 조금 올리면 칼수제비가 완성된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지만 칼수제비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정성이 들어갔기에 더욱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음식은 약입니다. 따라서 음식은 주가 되면 안 되고, 수행자의 수행을 도와주는 보조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건강식으로 사찰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찰에서도 수행이 아닌 음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맛에 탐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맛이란 귀하면 생기는 법입니다. 생활이 고달파야 수행이 되듯, 음식도 거칠어야 약이 됩니다. 물질을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게 아니라 비움으로써 더 소중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사찰음식에서 계승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소박함과 아낌의 미덕이라 할 것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태봉 스님은

13살 되던 해 통도사로 출가해 월하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계를 받았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다 9년 전부터 백운암에 주석하고 있다.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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