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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혜인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기자명 이미령

홀연 떠나신 큰스승 빈 자리가 허전합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장마철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시원스런 빗줄기를 만날 수 없습니다. 비가 와야 할 때는 비가 오는 게 맞고, 해가 쨍쨍 내리쬐어야 할 때는 햇살이 따갑고 뜨거워야 옳겠지요. 산다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내 뜻에는 흡족하지 않아도 순서가 지켜지는 것이 옳기에 때로는 억울하거나 속이 상해도 ‘이치대로 흐르는 법이니까…’라며 억지로 마음을 달래야 할 때가 있지요.

6월23일 접한 원적 소식 후 
전해지는 행적 보며 깊은 감동
더 머물러 달라 청하고 싶지만
스승은 기다려 주지 않는 듯

지난 6월23일, 스님의 은사이신 혜인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신문지면으로 속속 스님의 행장을 접했습니다. 13살 어린 나이에 동진출가하신 뒤에 꾸준히 참선수행의 길을 걸으셨다는 것, 그리고  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매일 5000배를 하여 100만배를 성취하셨다는 것, 그 간절한 수행과 기도의 회향이라 해도 좋을까요? 1980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셔서 제주도에 부처님 법의 향기를 널리 퍼뜨리는 데에 아주 열심히 사셨다는 것, 그리고 지금 성원 스님께서 주지로 머물러 계시는 그 약천사도 은사이신 혜인 스님께서 발원하시고 초석을 다지셨고, 그렇게 우뚝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셨다는 것….

이후 스님의 행적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바대로 포교에 오로지 당신의 삶을 다 바치셨습니다. 2014년 간암 진단을 받지만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술 후 나흘 째 되던 날에 법문을 하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저릿해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스님께선 참선으로 수행의 바탕을 마련하셨으면서도 절 수행으로 또 한 번의 커다란 발심회향을 이루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절 수행하는 참선납자라…. 얼핏 생각하기에도 참선이란 수행은 부처님 앞에 가슴을 쫙 펴고 당당히 마주하는 자세 인데 반해, 절이란 수행은 두 손을 공손히 가슴 앞에 모은 뒤 저 바닥을 향해 스스로를 낮추는, 하염없이 작아지고 낮아지는 자세입니다.

혜인 스님께서는 하루에 5000번씩 온몸을 낮추시면서 과연 무엇을 가슴에 품으셨을까요? 어쩌면 무엇인가를 품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자꾸 비우고 덜어내려고 그러신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깨달음을 향한 구도 열정을 세상과 함께하시겠다는 다짐의 자리였을까요?

그런 간절한 기도의 힘일까요? 대중들을 향한 스님의 법문이 신문지상에 오를 때 차분히 읽어보면 너무나도 진지하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대중들을 토닥이며 일으켜 세우는 마음씨가 느껴졌습니다.

13살에 절에 들어가서 일생을 수행자로 사신 납자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그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떠했으며, 그분은 세상을 향해 무엇을 가장 소중한 지침이라고 보여주고 싶으셨을까요?

스님, 세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펼쳐지지요. 가장 소중한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입니다. 하지만 출가하신 분들에게는 우리 같은 세속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고 하지요.

법으로 맺어진 관계. 마음에 품은 이상과 가슴에 깃든 지혜로 맺어지는 또 하나의 관계입니다.

부모를 떠난 수행자들은 새롭게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고, 또 새롭게 형제자매의 연을 맺지요. 다만, 그 관계가 핏줄이나 금전상의 손익이 아닌, ‘법’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참으로 진귀하고도 진귀합니다.

며칠 전 대전 보현불교대학에서 보현행원품을 강의할 때 주제가 ‘청불주세원’이었습니다. 부처님에게 세상에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는 원. 강의를 하러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데, 왜 불자는 부처님을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해야 하는 것일까? 아쉬움도 미련도 집착도 내려놓고 세연을 다한 이를 툭 털어버리는 것이 마음공부 좀 했다는 사람의 자세 아니던가요? 그런데 보현행원품의 이 내용은 뭔가 자꾸 붙잡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묘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습니다.

사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반열반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일이 있었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기경전인 ‘디가니까야’에 들어 있는 ‘마하빠리닙바나경(대반열반경)’의 내용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것을 아시고는 은근히 아난 존자에게 이르셨습니다. “나 여래가 세상을 떠나지 말고 조금만 더 머물러 달라고 그대가 내게 청하여라.”

물론 이런 말씀은 아니었지만 부처님께서 당시 아난 존자에게 건네신 말씀에는 이와 같은 뉘앙스가 담겨 있었지요. 하지만 아난 존자는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 부처님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끝끝내 부처님에게 반열반하지 마시고 우리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달라는 청을 드리지 못합니다.

결국 아난 존자는 부처님을 빨리 떠나보내게 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또 잠시 생각이 머무릅니다. 아난 존자가 그때 만약 부처님께 더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면 지금 21세기까지 부처님은 살아계셨단 말일까? 우리도 살아계신 부처님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들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아, 그렇습니다. 스님.
이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는 짓이지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닌데 이 무슨 허망한 생각일까요.

성원 스님. 스님께선 지금 참 허전하고 쓸쓸하고 애틋하면서도 세속에서 치러야 할 상례의식으로 인해 황망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아주 오래 전 제 스승님이 떠나셨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스승님께서 떠나가셨다는 슬픔보다는 문상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일에 더 정신없이 바삐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제 기억 속에 남는 잔상이 하나 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문상객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더 이상 조문객들도 찾아오지 않는 스승님의 자택.

‘딸각’하고 스승님 공부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방문을 뒤로 하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서 자료를 읽고 논문을 쓰시던 그 분의 야윈 등이 보이지 않고, 텅 빈 책상이 차디찬 냉기 속에 덩그마니 놓여 있었지요.
가셨구나.

세속에서 이젠 뵙지 못 하는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누구에게 법을 물어야 할까.

정신을 낳아준 법의 부모는 그렇게 자리를 비우시나 봅니다. 스님, 모쪼록 평안하시길.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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