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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이지 않는 끈

기자명 최원형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사이 늘어나는 핵발전소

퇴근 시간이 좀 지난 뒤라 그랬는지 전철 안에는 서 있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전철 칸이 연결된 곳에 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내가 탄 앞 뒤 칸의 풍경도 넉넉해 보였다. 훤하게 뚫린 공간에서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전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사람을 흘끔 쳐다봤더니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내 왼쪽에 앉은 사람은 게임을 하느라 거의 무아지경인 듯 했다. 바쁜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그 시각에 사람들은 이동하면서도 쉴 새 없이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춤과 쉼의 중요성 인식해야
생태 환경 보호 위해서라도
일상 속 개인 성찰시간 필요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각까지 내 생활을 줄곧 카메라로 찍는 상상을 해 본다. 울려대는 알람을 끄기 위해 내 손가락이 스마트폰을 만나면서 하루를 연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그날 뉴스브리핑을 스마트폰을 통해 듣는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문자를, 이메일을 주고받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해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쯤이 되면 눈이 뻑뻑해지기 일쑤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빛이 눈의 피로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일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면 하루 일과를 정리한 뒤에도 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지난 겨울 파리와 스트라스부르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 손에서 스마트폰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의 풍경과는 달리 전철에서는 여전히 책이나 신문을 읽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식구들마다 스마트폰이 하나씩 있는 시대이니 가족이 모여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한번은 저녁 10시 이후에는 바구니에 스마트폰을 담아두고 그것과 떨어져 하루를 마감해보자는 제안을 내 가족들에게 했지만 금세 흐지부지돼 버렸다. 다들 스마트폰과 연결된 끈이 너무나 다양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이란 동물들이 귀소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닫는 시간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다면 가끔 집안의 모든 전등불을 끄고 달빛을 켜보는 건 어떨까? 작은 초 하나 켜고 가족들이 한 공간에 둘러 앉아 하루 동안 만났던 수많은 관계를 정돈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돌아보니 ‘좀 참을 걸’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들게 되고, ‘아까 내가 이랬더라면 더 좋았겠구나’ 하는 반성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면서 소통의 기술도 익힐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만큼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가끔은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보는 것도 좋다. 어떤 연구에서는 멍 때리고 난 후, 기억력이 1.5배 학습능력은 2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멈추고 쉬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정신없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면서 또 다른 세계로 빠지다보면 결국 내 삶을 사는 주체가 누군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그러니 내가 하는 행동이 그 다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 성찰할 겨를은 애시 당초 없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를 깊이 탐착할 수 있어야 나의 현재적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 더불어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아름다운 풍광을 훼방 놓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저 먼 부산 기장에서, 전라남도 영광에서 경주 월성에서, 그리고 태안·당진 등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운반하기 위해 전국에 빽빽하게 꽂혀져있는 송전탑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들여다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이 그 흉물들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며칠 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신고리 5·6호기, 정확히는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 9·10호기의 핵발전소 건설을 승인했다.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무심히 소비하는 사이에 스마트폰은 핵발전소를 늘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20기는 더 짓겠다는 화력발전소 역시 스마트폰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있는 게 분명하다. 하루 중 얼마의 시간만큼은 적어도 오롯이 내 안에 집중하며 성찰할 시간을 가져보자. 수행을 위해서도 생태적인 환경을 위해서도.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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