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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예화와 불교문학 ⑤

자신과 세상 치유하는 전법의 또 다른 방편

문학 속의 심우도는 소를 통해 본성을 찾아가는 여정과 깨달음에 대한 그 가치를 그려낸다. 선시를 매개로 현실의 무능하고 이기적인 나를 자각하고, 진정한 자유를 향한 선의 경지를 지향한다. 한용운 시인은 ‘견적(소의 발자국을 발견)’에서 절대적 진실을 상징하는 산에 들어섰지만 여우처럼 풀섶처럼 의혹만 남아 있다고 표현했다. “여우 삵괭이니 득실대는 산,/ 머리 돌려 또 묻기를 ‘이것은 뭐꼬?’/ 풀 헤치고 문득 보니 꼭 밝은 자취!/ 다른 길 가 다시 찾을 것이 있으랴.” 소를 찾아 나서며 애태우는 심정과 함께 저항시인의 일단과 속세의 경향성이 동시에 투영됐다.

시·그림 등 불교문학 지향점은
깨달음 향해 정진하란 가르침

‘득우(소의 고삐를 잡음)’에서는 “보고도 의심하다 놓치고 말았는데,/ 어지러운 이 야성(野性)은 없애기 어렵기도./ 그러나 그 고삐는 내가 쥐고 있었거니,/ 원래부터 떨어져 있은 것은 아니로세.” ‘견적’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체득의 경지에 들어서야 함에도 공(空)과 깨달음과 색이 공존했다고 표현했다. 곽암 스님과 확암 스님 게송의 뜻과는 다르다. ‘입전수수(세상으로 나감)’편에서 “진흙이라 물이라 뜻대로 드나들며/ 울고 웃고 대중없어 자취도 남지 않아!/ 앞으로 넓고 넓은 고해(苦海)에 뛰어들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연꽃이 피어나게 하리라.” 마침내 공(空)도 공(空)하다는 깨달음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경지의 단계에 이르렀지만, 진흙탕 물속을 드나들고 다시 인간세상에서 벗어났다하여 인간사 번뇌와 죽고 사는 문제가 다 사라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1933년 ‘삼천리’ 잡지에서 출가를 결심배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 아닌가. 밤낮 근근자자(勤勤孜孜)하다가 생명이 가면 무엇이 남는가, 명예인가, 부귀인가, 모든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닌가, 결국 모든 것이 공이 되고 무색하고 무형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나는 이 회의 때문에 머리가 끝없이 혼란하여짐을 깨달았다.” 이후 모든 시에서 연기설과 윤회설, 통찰과 통합의 주제의식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는 불교시를 써왔다. 

오현 스님은 1970년대 신흥사 주지 당시 경허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심우도 연작시를 마무리했다.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 “죽어도 한뢰(旱雷)로 우는/ 생령(生靈)이어, 강도(强盜)”라고 표현했다. 동자 대신 강도가 등장하는 게 이목을 끈다. ‘견우’편에서 어머니가 돌아가는 중에도 죄를 지었다는 표현을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불효자의 방일함을 ‘강도’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표 시조시인인 오현 스님은 고아출신으로 일곱 살 때 절의 머슴으로 들어가 고암 스님에게 수계, 승려가 되었다. “절간의 머슴이 되었으나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 일 년 농사를 다 망쳤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럭바위에 벌렁 누워… 쫓겨나 저절로 갔고, 거기서 쫓겨나면 또 다른 절을 찾아 나섰는데”라고 ‘벽암록’에서 고백한 바 있다.

이후 백담사, 신흥사, 낙산사 회주를 거쳤던 스님은 ‘십우도’ ‘반본환원’(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감)편에서 “스스로 믿지를 못해/ 내가 나를 수감했으리”라며 고난을 통해 스스로 깨쳐나가는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스님은 자기부정을 통한 수행의 과정을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타락한 자신과 세상의 타락을 한탄하면서도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번뇌도 묻지 않은 참된 지혜의 세상을 대조적으로 상정한 이유이다. 그래서 죄업의 나날을 살아가는 저잣거리 풍경 속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상 사람에게 거울로 비춰주는 것. 욕심을 버리라고, 죄를 짓지 말자고 하면서 정작 그렇게 비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을 반추케 한다.

이렇듯 불교시는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는 전법의 또 다른 플랫폼이다. 이런 모든 것의 바탕이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깨달음의 방도를 일러준 문장이 ‘대반열반경’에 나와 있다. “비구들아, 모든 것은 쉴 사이 없이 변하니 부디 마음속의 분별과 망상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대상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함을 원수와 도둑을 멀리하듯이 해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마치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해라.”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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