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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벗어나 진정한 행복 찾고 싶다면 비우는 연습부터 하세요”

전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 스님

▲ 혜총 스님은 “행여 나쁜 생각이 들었을 때 제3자 입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고 선한 마음으로 돌리는 훈련이 수행”이라며 “바른 마음, 선한 행동을 하는 습관이 쌓이면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은 음력 6월 초하루입니다. 앞으로 한 달하고 7일이 지나면 칠석날이 됩니다. 칠월칠석은 3월3일 삼짇날, 5월5일 단오, 9월9일 중양절과 함께 양이 겹친다는 점에서 길일로 여겨져왔습니다. 칠석은 잘 알다시피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날로도 유명합니다.

중생은 소유 애착 버리지 못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몸 언젠가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삶은 무상하니 집착 필요 없어

세상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우리는 은혜 속에서 살고 있어
은혜 갚는 일이 깨달음의 첫걸음

복 짓는 일 가운데 최고는 효도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기 때문에
효 말하기보다 먼저 실천해야

아득히 먼 옛날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 건너편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목동, 견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옥황상제는 자신의 손녀인 직녀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둘의 사랑이 너무 지나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늘나라에 기근이 찾아오고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졌습니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이를 옥황상제에게 고했고, 옥황상제는 이 둘을 은하수 양쪽으로 떨어뜨려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를 태웠습니다. 둘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는 해마다 칠월칠석날 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 다리가 바로 오작교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연이 전해져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이를 기리는 세시풍속이 생겨나게 됐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칠석날을 중요시 여깁니다.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넘어 이날을 기려 가족과 이웃을 위해 공양을 올리는 날로 유명합니다. 중생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칠성광 부처님께 정성껏 공양을 올려 가족과 이웃의 무병장수와 자손이 대대손손 창성하기를 간절히 발원하며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흔히 칠석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고, 음력 7월15일인 백중 때는 조상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백중의 유래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인 목련존자에서 비롯됐습니다. 신통제일 목련존자는 전생부터 죄업을 많이 지은 어머니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효심이 지극했던 목련존자는 이런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부처님께 어머니가 지옥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청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칠월 백중날 대중들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목련존자는 이 말을 듣고 백중날 대중들에게 정성껏 공양을 올려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날을 우란분절이라고 해서 조상을 천도하는 날로 여깁니다.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는 궁극적인 의미는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해줌으로써 스스로 깨쳐 제 갈 길을 갈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업에 따라 제 갈 길을 간다고 합니다.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인연 따라 길을 가지 못하고 이생을 떠돌게 된다고 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이 장애가 되어 발길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곡하며 슬피 울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그 사람으로 인해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죽은 영가가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떠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 길 몰라 헤매는 영가들은 이생에 머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영가들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처님 법을 들려주는 의식입니다. 이를 통해 밝은 지혜의 힘이 생겨나고, 이를 의지해 좋은 몸을 받아가거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천도재를 올리는 것이 꼭 조상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도재는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늙어가고, 병들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일입니다.

삶은 무상합니다. 그러니 따로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생들은 재물에 집착하고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몸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곤 언젠가 이 몸도 지수화풍으로 다 흩어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도 따로 없겠지요.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집착하는 마음만 가득하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비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살아있을 때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살아생전 가족과 이웃, 조상님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공양을 베푸는 것은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비우고 이웃을 위해 공덕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부처님 법을 믿고 기도하고 조상을 위해 천도재를 봉행하고, 이웃을 위해 베푸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도와 공양이 계속되면 그 공덕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요, 우리 모두의 고통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이들이 베푼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형제 친척을 비롯해 스승과 친구, 이웃과 자연 등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대방편불보은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은혜를 아는 사람은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고, 은혜를 갚는 사람은 능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일은 깨달음의 첫걸음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 때는 그 상을 내어서는 안 되지만, 남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을 때는 마땅히 그 은혜를 갚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대승본생심지관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4가지 은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요, 둘째는 중생으로부터 받은 은혜이고, 셋째는 국가로 받은 은혜이며 넷째는 삼보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일생의 과정은 결코 나 혼자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는 것처럼 부모님과 이웃을 비롯해 중생, 국가, 불법승 삼보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은혜를 입어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하심이라고 합니다. 벼슬이 높다고, 재물이 많다고 스스로 자신을 낮출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꼭 과보를 받게 됩니다. 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밥을 먹을 수 없고, 옷을 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옷을 입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변 이웃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하심하고 이웃을 존경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존경하는 마음 이상 좋은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래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내가 준 만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있음, 그 자체로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자를 처음 만날 때 존경하듯, 이웃을 처음 만났을 때 존경하듯이 늘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늘 행복한 날만 계속될 것입니다.

조상을 천도하는 또 다른 의미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데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복 짓는 일 가운데 가장 으뜸이 효행이요, 죄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불효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효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달려오는 자동차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데, 최근 통계를 보면 학대받는 노인의 90%가 자식을 비롯한 가까운 친인척에게 학대를 당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부모의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효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살아생전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조상을 위해 천도를 하고, 복 짓는 일을 먼저 실천한다면 그 공덕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불교의 최고 목표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입니다. 모든 악은 멀리하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면 선한 행동을 하게 되고,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이치입니다. 좋은 생각을 갖고 스스로 선한 행동을 하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까지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나쁜 마음을 먹으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까지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갖도록 하느냐가 바로 수행입니다. 행여 나쁜 생각이 들었을 때 제3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고 선한 마음으로 돌리는 훈련인 것입니다. 이렇게 늘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른 마음, 선한 행동을 하는 습관이 쌓인다면 언제나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늘 자신을 관찰하고 실천함으로써 선한 과보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내용은 서울 호압사가 7월4일 개최한 초하루 정기법회에서 초청법사로 나선 혜총 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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