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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화와 불교문학 ⑥

권위적인 유교문화에 유연성 불어넣어

짧은 공간 안에서 불교의 사상과 진리를 펴는 시는 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아온 것처럼, 매우 경제적인 문학 장르다. 불교문학은 석가모니의 출현과 함께 시작됐다. 특히 ‘법화경’ ‘유마경’ ‘화엄경’은 웅장한 구성력과 탁월한 가락, 특유의 비유법을 자랑한다. 일찍이 중국도 인도의 불교문학을 수용해 자기 나라의 정서에 맞는 색깔을 입혀 불교문학의 경지를 개척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한역경전을 수용하는 한편으로는 향가, 게송, 어록, 찬시, 선시 등을 통해 민족 정서를 아우르면서 불교문학 대중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불교역사·의미 함축한 전법 수단
설법소재로 활용가능한 주요자산

특히 신라의 향가는 불교적 체험과 문학적 서정세계를 유감없이 표출해 그 독창성에 대해 중국인들도 경탄할 정도였다. 고려시대 ‘삼국유사’는 불교체험을 소설로까지 발전시키며 스토리텔링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줬다. 이 무렵 시선일여(詩禪一如), 즉 시와 선은 같다는 불교문학의 정신을 투영한 선시가 등장했다. 백운거사 이규보는 유불선을 관통하는 최고 불교시인으로서 해심 등 고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불교문학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러한 불교문학은 조선시대 억불정책을 당당하게 뚫어나가는 문학적 비유법과 정서적 소통의 에너지원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승려들은 직접 문집을 간행하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오도(悟道)송 등은 유학자들에게 불교문학의 매력을 느끼게 한 사례 중 하나다. 결국 불교문학은 불교역사에 대한 함축이고 불교역사의 빛나는 줄기를 이은 전법의 수단으로서 설법의 소재로 적극 활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만해 스님은 근대 불교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님의 침묵’은 불교시의 새로운 경지를 연 대표작이다.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는 만날 것을 믿는다”는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재회의 희망, 미래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다. 조국을 잃을 것이 아니라 잠깐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는 대목은 비유법의 압권이다. 호국불교와 중생의 삶을 보듬어 나가는 불교정신을 설파하는 귀한 사례 중 하나다.

최남선은 독립선언문을 기초로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를 출간했는데 부처님의 자비와 번뇌에 시달리는 인간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 서정주 시인은 ‘신라초’에서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의 정서를 불교적 세계관으로 그렸다. ‘동천’에서는 불교의 상징세계를 바탕으로 삼라만상과 공감하는 시적 깊이와 넓은 폭을 보여줬다. 조지훈의 ‘승무’는 선적(禪的) 정취와 분위기가 꽉 차 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시는 우리 전통미와 함께 고요함을 깨뜨리는 일체의 상념을 제거한 뒤에 나타나는 선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노래했다.

이처럼 불교문학은 전법의 효과를 넘어 한국문학의 미학적 영역까지 확장했다. 불교 특유의 심오하고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까지 펴면서 경직되고 권위적인 유교문화의 유연성까지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불교문학의 정신은 불교적 문학적 감동과 함께 미학적 고양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영원히 그리고 마땅히 지향해야 할 인본주의의 정신을 깊이 뿌리 내리고 드넓은 바다로 향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감동은 인간적인 면이 드러날 때 생겨난다. 뉴스도, 정책도, 화제도 가장 인간적인 것에서 가장 쉽고 자연스럽게 설득과 감동을 불러온다. 인본주의로 불리는 휴머니즘은 600년 전 권위주의에 질식되어 가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문예부흥운동이었다. 학자들은 1세기 건너 새로운 휴머니즘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 ‘뉴 휴머니즘(Neu humanismus)’. 결국 세월이 흘러도 학자들은 연구 결과 ‘인간다움’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이야말로 영원불변의 진리였던 것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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