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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소나무

기자명 혜민스님
미국에서도 대도시 인근 사찰의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일의 성격상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큰 기도나 일요법회가 있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도심의 사찰은 제사와 사시 예불을 드리러 온 사람에서부터 그저 지나다가 들른 사람들까지 항상 붐비기 마련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들 가운데는 겉으로 화려한 장미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적으로 굳건한 소나무 같은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 일이다. 어떤 신도님이 점심을 공양하겠다며 사찰의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을 꽤 유명한 식당으로 초대를 한 일이 있었다. 절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도 잘 모르는 분이어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어른 스님들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동석을 하게 됐다.


사철 변함없는 푸르름 닮자

공양을 낸 사람은 속된 말로 한국에서 한 때 ‘잘 나가던’어느 거사님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공양 내내 자신이 한국의 거물 정치인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며 또 한때 얼마나 큰 권력을 지녔는지를 침을 튀기며 자랑했다. 거기다 “자신은 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 사찰 불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보시를 하겠다”는 암시를 은근히 내 보이기도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에 그 거사님은 몇 차례 법회에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스님들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말로 사찰 안의 신도 임원들에게 자랑삼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절에 오면 으레 항상 주지 스님과 일대일 면담하기를 원했고, 서툰 영어 단어를 굳이 섞어가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얼마나 많은지를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금방이라도 엄청난 보시를 할 것처럼 떠들고 다니던 그 거사의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다른 절에서 우리 절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았던 우리 절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다닌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절에는 어린이 법회 장소를 4년째 묵묵히 청소하시는 보살님이 있다. 어린이 법회가 끝나면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 물감으로 더럽혀진 바닥, 종이 조각 등을 깨끗이 청소를 해 주시는 분이었다. 이 분을 대할 때마다 참 불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편에 뭉클한 감동이 일곤 했다. 이 분은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한번 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부처님과의 약속이라며 끝까지 책임을 진다. 어린이 법당 청소 외에 후원 설거지는 물론, 가끔 접수부의 손이 달리면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묵묵히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4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찰에서는 그 보살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 분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장미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려함으로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장미의 화려함은 3일을 넘기기 힘들고 꽃 아래 가지에 솟아난 가시는 여러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반대로 소나무는 처음엔 밋밋해서 확 끄는 매력은 없지만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푸른 기개뿐만 아니라, 자랄수록 넉넉해지는 그늘로 인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을 품안으로 끌어안는다.

나는 소나무 같은 사람이 좋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큰 보시를 하면서 위세를 떠는 신도보다는,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소리 없이 정성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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