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7. 부여 궁남지-정림사지-고란사

성왕과 백제가 꿈꿨던 연화장 세계를 거닐다

▲ 한 여름의 새벽 안개가 걷히자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9호)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연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든다/ 물 속에 가부좌를 틀고/ 연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길상호 시 ‘蓮의 귀’ 전문)

도교의 이상세계 담은 궁남지
그 연못을 가득 메운 건 연꽃

백제 성왕의 불심 엿볼 정림사
절터에 우뚝 선 오층석탑만이
그 옛날의 영광을 대변할 뿐

사지복원으로 부여인 그렸던
정토 세상 이 땅에 펼쳐지길

어찌 들었을까? 송사리 떼 물결 가르는 소리를. 세상의 모든 소리 허투루 듣지 않아야, 아니 세상의 모든 소리 가슴에 담을 줄 알아야 시인이 되는가 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는 아니지만 ‘맛있는 설법’ 들으려 구부러진 작은 귀라도 있는 힘껏 열어 두었다. 허나, 어느 연꽃 도반 삼아 함께 설법 들을 지를 정하지 못해 두 시간째 서성이고 있다.

▲ 정림사지 복원 모형도. (사진=정림사지박물관)

새색시 홍안 빛 머금은 홍련 옆에 서 있다가 이내 황금빛 자태에 끌려 황금련 곁으로 걸음 하고는 한 참을 머문다. 비단에 수놓은 듯 수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노란 왜가연을 휘돌아 어느 새 쭈그리고 앉아 가시연꽃을 응시하고 있다. 33만 제곱미터(10만평) 대지 위에 가부좌 튼 천만 송이 연꽃이 피워 낸 향기에 취한 탓이다. 여명 안고 온 시인, 연꽃 만개하는 7월 이 공간에 들면,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푸른 연잎 위에 내려 앉은 밤별과 마주한 후에야 발길 돌릴 게다.

궁남지! 우리나라 연못 중 최초의 인공 조원(造苑). ‘삼국사기’에 따르면 궁남지는 무왕 때(634) 조성됐다.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했다.’

중국인은 예로부터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樓閣)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어,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는 전설이 담긴 신령스런 산이 있다고 믿었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그 전설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는데 세 산을 일러 삼신산이라고 했다. 우리도 그 영향 받아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부른 때가 있었다. 삼신산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신성한 산으로 신선들이 노닌다는 박산(博山)을 상징화 한 산이라 보면 어긋나지 않는다. 결국 궁남지는 도교의 이상세계를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못을 가득 메운 건 연꽃이다. 백제 무왕 때면 불교문화가 정점에 이른 때이니 당시의 궁남지에도 연꽃은 만개했으리라. 그렇다면 궁남지가 품은 건 도교만은 아니었을 게다. 

▲ 한 송이 연꽃에도 중중무진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백제 불교의 진수를 담은 유물이 있다. 당장 하늘로 뛰어 오르려는 듯한 용 한 마리가 앞발을 치켜든 채, 연꽃 줄기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한 백제금동대향로!

몸통을 받치고 있는 연 잎 위에는 두 신선과 날개 달린 물고기와 사슴 등 26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뚜껑에는 세간의 오욕을 초탈한 듯한 인물 16인과 동물 39마리가 노닐고 있다. 5명의 악사가 각각 소, 북, 피리, 비파,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으니 백제의 소리도 담고 있는 셈이다. 뚜껑의 꼭지엔 봉황 한 마리가 보주를 물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봉황이 앉아 있으니 궁남지처럼 봉래산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 향로에 도교풍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 향로는 도교 세상을 꿈꾸며 빚은 것일까?

 

▲ 궁남지는 매년 7월이면 천만 송이 연꽃을 피원낸다.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아 백제금동대향로를 볼 기회가 있다면 평소 관람했던 자리 보다 한 걸음 뒤에서 보시라! 백제금동대향로가 외형 상 연 봉오리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활짝 핀 연꽃이 아닌 피기 직전의 연 봉오리임을 인식했다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당겨 향로 몸체와 뚜껑 사이에 새겨진 2개의 화염(火焰)을 보시라. 불과 연꽃!

연화화생관에 따르면 연꽃은 만물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생전의 업에 따라 연꽃봉오리에 왕생한 다음 연꽃이 활짝 피어 날 때 서방정토에서 화생하거나 아미타여래를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만물이 연꽃에 의해 화생될 때는 빛을 의미하는 불꽃이 먼저 발산된다고 한다. 향로를 다시 보자. 받침의 용이 토해 낸 건 연꽃 봉오리인 것이고, 그 봉오리는 이제 막 불꽃을 뿜고 있다. 만물이 화생하기 직전의 세계가 농축돼 있음이다. 향로에 새겨진 갖가지 인물과 동물 등은 연봉오리에 왕생한 것을 표면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연화장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 누가 꿈꿨던 것일까?

538년, 성왕은 백제의 수도를 공주서 사비성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린다. ‘삼국사기’는 “소부리(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성왕 당시의 나라 이름은 백제가 아닌 ‘남부여’다. 삼국시대 이전의 ‘부여국’,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대국가 부여를 사비 땅에 재건해 보겠다는 웅지를 품었던 것이다. 사비성의 진산은 지금의 부소산(扶蘇山). ‘부소’는 단군왕검의 아들이다. 성왕은 사비시대를 연 부여국의 시작을 538년이 아닌 고조선 역사까지도 품으려 했던 듯싶다. 고구려도 북부여를 계승한 나라라 하는데 백제인들 못할 리 없다고 보았을 터다.

 ▲ 부소산성에 자리한 낙화암.

웅대한 새 시대의 장을 연 성왕은 기존의 불교를 더한층 융성시켜 간다. 중국의 북위가 수도 낙양성의 내부와 인접지역에 천개 이상의 사찰을 지었던 것처럼 성왕도 사비성을 중심으로 사찰을 지어갔다. 현재 부여 지역의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절터만도 3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 고문헌에 백제를 ‘승려와 사탑(寺塔)이 많은 나라’로 기록한 연유를 알 듯하다.

겸익을 천축에 보내 계율을 연구토록 한 성왕은 지계정신을 토대로 국가 기강을 잡아간다. 양나라가 이미 ‘대열반경집해 71권’을 완성(509) 했다는 사실을 접한 성왕은 사신을 보내 ‘열반경’과 함께 경에 담긴 심오한 뜻을 밝힌 소(疏)를 구하도록 한다. 일본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것도 이 때다. 고구려와의 대치 속에서 이러한 대작불사를 추진했으니 성왕의 원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성왕의 웅지와 불심을 엿볼 수 있는 사찰이 있다. 정림사(定林寺)다. 사찰은 폐허돼 사지로 남아 있지만 절터에 우뚝 서 있는 오층석탑이 그 날의 영광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익산미륵사지석탑과 함께 현존 최고(最古) 석탑의 우열을 논하는 석탑이다. 성왕 때 정림사가 창건됐고, 그 때 저 석탑이 섰다면 가장 오래된 석탑은 정림사지 5층석탑이다. 그러나 원래 저 자리에 목탑이 서 있었고, 후에 석탑이 들어섰다고 보면 현존 최고 석탑은 익산미륵사지석탑이다.

▲ 고란사는 금강과 함께 백제의 흥망을 지켜 보았다.

부소산의 ‘태자 숲길’엔 소나무향이 짙게 배어 있다. 성왕과 무왕도 이 길을 걸어 지금의 고란사에 앉아 금강을 굽어보았을 터다. 상상이나 했을까? 사비가 당나라 소정방에게 함락된다는 사실을. 소정방은 정림사지 5층석탑의 1층 탑신에 승전을 기념하는 자축문을 빼곡하게 새겨놓았다. 제목이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했다’는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다. 부아가 치민다. 그리고 뼈저리다! 천년을 지나 흐르는 금강도 그날의 치욕만은 안고 가지 못한다.

사지복원으로 사비의 절터에 풍경소리 퍼지면 백제의 융성함 다시 느껴볼 수 있으리니, 그 날을 맞이하면 조금 덜 뼈저릴 듯하다. 성왕의 업적과 넋을 기린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듯, 성왕과 무왕이 꿈꿨던 나라, 부여인들이 그렸던 연화장 세계가 이 땅에 펼쳐지기를 기다려 보자.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부여 궁남지 주차장. 서동공원에 자리한 궁남지서 연꽃을 감상 한 후 주차장에서 나와 부여군청 방향으로 직진하면 ‘정림사지’ 방향을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부여중학교, 백제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정림사지다. 인근에 정림사지박물관과 부여박물관이 있다. 정림사지서 나와 미성 삼거리를 향해 걸으면 부소산성 주차장 또는, 고란사 방향을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도로 한 가운데 백제의 성왕 동상을 보았다면 길을 제대로 든 것이다. 부소산성 매표소, 또는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으로 들어선 후에는 왼쪽 길(오른쪽 산책로도 좋지만 다소 멀다)을 택해 큰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고란사에 닿을 수 있다.

 

이것만은 꼭!

 
정림사지 석불좌상: 5층 석탑이 백제 영광을 반증한다면 석불좌상은 고려 때의 영광을 대변한다. 극심한 마멸로 인해 형체만 겨우 남아 있다. 좁은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머리와 갓은 후대의 것이라고 한다.

 

 

 

 

 

 
정림사지 박물관: 백제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건물형태는 불교의 상징인 “卍“자 모양으로 구성돼 있어 이채롭다. 2006년 9월 29일 개관 했다.

 

 

 

 
고란정: 고란사 뒤에 고란정(皐蘭井)이 있다. 위쪽 바위 틈 그늘진 곳에 고란초(皐蘭草)가 자라고 있다. 고란약수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속설이 돌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여름철. 특히 장마기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