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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사부대중 공동체 초석 놓다

  • 교계
  • 입력 2016.07.18 15:55
  • 수정 2016.07.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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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불총림 백양사는 올해 5월21일 하안거 입재를 시작으로 경내 고불선원에 재가선원을 본격 개원했다.

고불총림 장성 백양사가 조계종 교구본사 가운데 최초로 도량 내 재가선원을 운영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대사회적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특히 백양사 재가선원은 전통적인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를 꾀하는 동시에 사찰 사부대중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고불총림 ‘재가선원’개원
출·재가 동등하게 수행
강제성·폐쇄성 버리고
자율·개방성 확보 시도
교구총림화 이끄는 계기

조계종 제18교구본사 백양사(주지 토진 스님)는 올 5월21일 하안거 입재를 시작으로 재가선원을 본격 개원했다. 백양사 재가선원은 수좌스님들의 수행공간이었던 경내 고불선원에 마련됐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스님들의 전유물이었던 선방에 재가수행자들의 정진열기가 더해진 셈이다. 특히 고불선원은 고불총림의 드높은 선풍을 잇는 굳건한 토대였다는 점에서, 이곳에 재가자들이 입방해 수행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이는 한국불교의 미래, 그리고 산중사찰 백양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의 결실이다. 출가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사찰 대중으로서 재가자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올 초 백양사 주지소임을 맡은 토진 스님은 방장 지선 스님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중스님들의 공의를 모아 재가선원의 문을 열었다. 적지 않은 고민 끝에 탄생한 만큼, 그 운영 방침과 시스템부터 여타 사찰의 재가선방과 결을 달리한다.

재가선원에 방부를 들인 재가수행자들이 사찰을 구성하는 대중의 한 축으로 인정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찰 재가선원의 경우 대부분 일정기간 별도의 수행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면서 ‘동참자’로서 재가자를 수용하고 있지만, 백양사 재가선원은 엄연한 정식 선원으로 이곳에 방부를 들인 재가수행자들 역시 사찰을 구성하는 대중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재가선원 수행자들의 하루일과 역시 사중스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찰의 하루를 여는 도량석을 함께할 뿐 아니라 운력에도 스님과 똑같이 배정된다. 대다수 사찰에서 사중스님들만의 소임으로 여겨졌던 도량석과 운력을 재가자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사찰을 구성하는 대중으로서 동등하게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운력 후에는 스님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으로 아침공양을 한 후 선방에 앉아 정진한다. 매일 오전 9시에는 방장 지선 스님이, 10시에는 선원장 무공 스님이 재가수행자들과 함께 좌복에 앉아 정진한다는 점도 기존 불교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보름에 한 번, 방장스님과 유나 스님 등 사중의 큰스님들이 직접 재가자를 위한 소참법문을 통해 수행 지도에 나서기도 한다.

기존 선원과 달리 개방적인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이는 전통적 가치에 현대적 변화를 수용한 새로운 운영시스템으로 재가선원의 위상과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현재 재가선원에 방부를 들인 수행자는 총 31명. 이 가운데 온전히 선원에 머물며 수행하는 이들은 18명이다. 나머지는 직장 등 개인의 생활방식에 따라 출퇴근하거나 주중 특정요일에 입방한다. 한번 방부를 들이면 안거 기간 선원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강제적인 규율을 없앴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선원 입방의 연령제한도 폐지했다. 현재 재가선원에 방부를 들인 재가수행자는 37세 청년부터 88세 노보살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80세 이상 입방자가 4명이어서 편의를 위해 사중스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선방에서 법당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흙길에 계단까지 조성했다.

전체 대중이 오전 3시에 기상한다는 원칙도 과감하게 조정했다. 새벽예불 시간을 5시로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각기 선택한 시간에 기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또 하루 8시간 정진을 기본으로, 개인의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선원 특유의 강제성을 없애고 재가불자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심리적인 접근성을 확대한 셈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수행계획 및 일과는 반드시 입승 소임자에게 공유해야 하며 공양과 예불, 운력 등 대중이 함께해야 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엄격히 준수토록 원칙을 세웠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개인주의를 버리고, 사찰의 전통적인 가치인 공동체 생활의 의미를 체득하도록 이끌기 위한 조치다.

새로운 형태의 재가선원에서 재가수행자들이 안거에 입재한지 반 철이 지나면서 이미 변화의 흐름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도량 구석구석에 자리했던 풀과 돌더미가 깨끗하게 정리됐다. 손님이나 방문객이 아닌 엄연한 구성원으로서 재가수행자들의 손길이 더해진 덕분이다. 사중스님과 재가자의 간격이 좁혀진 것도 변화다. 도량석과 운력 시간이면 출·재가가 자연스레 한데 모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도량 외부에서 진행되는 일정에서도 출·재가를 구분하려는 인식이 사라졌다. 사부대중 공동체 의식이 조금씩 그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방장 지선 스님은 재가선원을 통한 중요한 변화로 ‘교구 총림화’를 꼽았다. 기존의 본사 중심 총림에서 벗어나 교구 말사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총림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백양사는 고불총림을 구성하는 선원의 두 축인 백양사 고불선원과 운문암 운문선원 중, 전통선원의 역할은 운문선원으로 통합하고 고불선원은 출·재가 선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용흥사에 율원을 이전, 기존에 본사에 모여있던 총림의 구성을 말사로 분산해 보다 큰 틀에서 교구 차원의 총림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재가선원이 개원한지 불과 2개월만의 변화라는 점은 다소 놀랍다.

이와 관련 지선 스님은 “재가선원 개원의 가장 큰 의미는 사부대중 공동체의 복원을 시도했고 이에 대한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백양사 중창불사를 이끌었던 만암 스님도 사부대중 공동체를 강조하셨으니, 이는 만암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기대를 전했다.

장성=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재가선원, 산중사찰 미래 모색 위한 시도”

백양사 주지 토진 스님

 
올 3월 고불총림 백양사 신임주지로 부임한 토진 스님은 고민이 깊었다. 본사임에도 재정적 기반이 취약한 백양사가, 향후 신도 고령화와 출가자 감소, 불교기반이 약한 지역 분위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모색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방장 지선 스님을 비롯한 사중 스님들, 그리고 말사·암자 대중 스님들을 만나 고민을 나눴다. 많은 스님이 백양사의 미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토진 스님은 국민이 바라는 불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또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산중사찰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한국불교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산중사찰이 사회를 외면하거나 거리를 둬서는 안된다는 것. 스님이 재가선원 개원을 결단한 이유다.

토진 스님은 “재가선원은 궁극적으로 재가불자를 사찰로 이끌고 사찰을 구성하는 사부대중의 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사찰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사회와의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백양사 재가선원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산중사찰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실험이다. 이를 위해 오랜 세월 형식의 틀로 공고하게 세워진 벽을 허물고, 형식 속에 담겨있는 불교의 전통과 가치를 살리기 위한 고민을 담았다.

토진 스님은 “산업화, 현대화를 거치며 사회적으로 빠르게 확산된 개인주의가 어느새 사찰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공동체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스며들었다”며 “재가자는 변화된 사회에서 살아온 만큼 이들을 사찰대중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님은 “현대사회에 익숙한 젊은 불자들이 사찰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사찰의 오랜 관습으로 굳어진 폐쇄성과 강제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사찰은 전통을 포장하고 있는 형식적 틀에 갇혀 있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사찰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요구돼 온 표면적인 형식은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 속에 담긴 전통과 의미 등 내용적 가치를 계승하려는 방안이 필요했다는 것.

“수행의 목적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지, 사찰의 관습이나 형식에 맞춰 식사시간을 바꾸고 수면시간을 조절하는 데 있지 않아요. 폐쇄적이고 강제적인 기존의 방식으로는 재가자들이 불교에 접근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백양사 재가선원이 재가자들의 삶을 일정부분 수용한 가운데 변화를 도모한 이유는, 바로 재가자들이 이를 통해 보다 쉽게 사찰의 공동체 의식을 체득하고 전통 간화선의 참맛을 깨달아, 부처님 법을 집에서,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같은 기대의 이면에는 불교적 가치가 현대인들의 정신과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종교의 역할이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토진 스님은 “결국 불교의 가치를 담은 전통적인 수행체계는 굳건히 세우면서 현대인들이 불교에서 찾고자 하는 정신적인 가치를 대중화하는 것이 과제”라며 “재가선원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도들은 궁극적으로 미래 불교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안거 반철, 입방 재가수행자 만족도 최상”

윤주심 재가선원 입승보살

 
백양사 재가선원의 입승 소임을 맡은 윤주심(63·대원각) 보살은 참선수행에 푹 빠져 반평생을 정진하며 살아왔다. 백양사 재가선원에 입방하기 이전에도, 다수의 시민선방과 사찰에서 수행한 경험이 있다. 그런 그에게 백양사 재가선원은 여러모로 특별한 곳이다. 평생 불자로 살아왔지만 온전한 사찰 대중이 되어, 내 집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님들과 동등하게 운력과 도량석에 동참한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지 않은 사찰을 거쳤지만, 예불을 하고 수행을 하며 때론 스님이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이상의 밀접한 관계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동안 경험한 선방과 달리 개인의 수행계획을  세워 수행한다는 점도 새롭다. 덕분에 이 곳에서는 모두가 스스로 수행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스스로 기상시간을 정하고 자율적으로 정진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먼저 용맹정진 때마다 찾아오던 치아 고통과 복통이 사라졌다.

정진 시간도 늘었다. 자율성이 보장되니 “공부와 수행은 스스로 할 일”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윤 보살은 “선원 대중들은 기본 일과표를 토대로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워 입승과 공유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를 지켜나간다”며 “이 같은 과정 속에서 더 치열한 정진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백양사 재가선원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은 비단 윤 보살뿐만이 아니다. “이제껏 수행했던 선원 중 최고”라는 것이 재가 수행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방장, 선원장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수좌스님들과 같은 공간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백양사의 총림으로서의 위상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윤 보살은 “이제는 불교가 당면한 현실적 과제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때”라며 “백양사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재가불자의 한사람으로서 주지 스님의 결단력에 감사할 뿐 아니라 기대감도 크다”고 전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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