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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커피에 담긴 나눔 참맛, ‘가피함’으로 확산

  • 상생
  • 입력 2016.07.18 17:01
  • 수정 2016.07.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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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볶는 절’ 무량사는 뛰어난 맛과 향으로 불과 2년 만에 지역사회에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충남 태안 신두리 해변 인근, 종교와 세대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핫(hot)한 사찰이 있다. 일명 ‘커피 볶는 절’ 무량사(주지 정산 스님)다.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무량사는 얼핏 보면 펜션 같은 느낌을 간직한 작은 도량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름다운 연못을 배경으로 우뚝 선 법당이 남다른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그 자체로 청량하고 고즈넉한 휴식을 선사한다는 평가다.

‘커피볶는절’ 태안 무량사
2014년부터 관광객·불자에
공짜 커피 제공해 ‘눈길’
자율 보시금 이웃에 회향

사찰의 외관에서 풍기는 남다른 정취도 입소문이 났지만, 무량사의 진짜 매력은 바로 ‘나눔’에 있다. 그것도 커피를 통한 나눔이다. 무량사에 들어서면 진하게 풍겨오는 커피향은 신두리 해변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찰로 이끄는 매개가 되고 있다. ‘커피 볶는 절’이란 애칭이 붙은 까닭이다.

주지 정산 스님은 2014년부터 사찰을 찾는 누구나 커피를 마시고 자유롭게 보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커피는 스님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내리는 ‘드립 커피’다. 스님의 커피는 그 맛과 향 또한 뛰어나 3년째에 접어들면서 ‘최고의 커피’로 손꼽는 팬들도 생겨났다.

공짜커피를 마신 이들이 자율 보시한 금액은 ‘가피함’에 차곡차곡 모인다. 가피함은 ‘보시함’의 다른 명칭으로, 스님이 직접 붙였다. ‘불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준다’는 가피의 사전적 의미에 착안한 작명이다. 가피함에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정성을 모은 모든 이들이 곧 불보살과 다름 없다는 취지가 담겼다. 스님은 이름 그대로 가피함에 모인 기금을 전액 자비나눔으로 회향하고 있다.

첫해엔 15만원 가량이 모였다. 적다면 적은 액수지만 스님의 마음을 더해 나눔으로 회향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 감사했다. 지난해에는 아예 매월 셋째주 토요일을 ‘공짜커피 day’로 정했다. 더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사찰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피함에는 2015년 한해 동안 총 90만원이 모였다. 스님은 사찰이 위치한 원북면 사무소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소년소녀가장들을 추천받아 교복을 지원하고, 병환으로 고통받는 독거어르신 치료비로 기금을 회향했다.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아 ‘커피 볶는 절’은 신두리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포털사이트에 방문담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신두리 해변이 아니라 무량사를 찾기 위해 신두리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스님은 올해부터 날마다 ‘공짜커피 day’로 운영키로 방침을 바꿨다. 해변을 찾아 신두리를 찾은 관광객은 물론, 지역민과 불자, 신도 모두에게 언제나 공짜커피를 제공하기로 한 것. 스님은 서산시내의 카페에서 불서읽기 모임을 진행하는 목요일, 그리고 불가피한 외출을 제외하면 항상 사찰에 머물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1일 평균 10명 내외의 방문객이 스님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자연스레 불연을 맺는다.

사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스님이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커피에 비해 가피함에 담기는 보시금은 ‘적자’다. 하지만 스님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공짜커피’는 스님에게 있어 ‘회향’이라는 원력을 실천하는 계기이자 사찰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일종의 포교전략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2011년 무량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1000일 기도를 이어가며 지역 내 사찰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었다. 백일마다 용서, 감사, 자비, 배려, 돌아봄, 이해, 노력, 고요함, 지혜로움이라는 원력을 세웠고 마지막 1000일째에는 ‘회향’의 원을 세웠다. 워낙 커피를 좋아한 덕에 저렴하게 마시기 위해 배운 로스팅 기술을 나눔과 포교로 회향하게 됐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실제 스님의 커피는 이미 포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스님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공짜커피’를 기다리는 이들은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털어놓기 때문이다. 스님은 커피를 내리면서 불교의 가르침에 기대어 때론 소참법문을, 때론 인생 상담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공짜커피’라는 명칭도 단순히 ‘무료’라는 의미가 아니다. 공은 함께라는 뜻의 공(共), 짜는 자비의 자(慈)로, ‘함께 자비로운 마음으로 커피를 나눈다’는 의미다. 호기심으로 사찰에 들어선 이들도 스님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이 같은 의미를 듣고 나면 자동으로 ‘가피함’에 마음을 담을 수밖에.

“누구든 무량사를 찾아 커피 한잔의 휴식을 취하며 나눔으로 작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길 바랍니다. 무량사 커피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가피함에 작은 정성들이 모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커피를 내리며 미소 짓는 정산 스님의 맑은 표정에 나눔의 행복이 깃들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충청지사=강태희 지사장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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