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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능인 스님 대성암 만두

사찰음식 맛의 비결, 재료 아닌 그 속에 깃든 정성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양산 천성산은 풍광이 아름답다. 당나라 시대 중국 스님 1000명이 원효 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와 수행했다는 전설이 깃든 불교성지다. 원효 스님은 이곳에 89개의 암자를 지었고, 원효 스님 밑에서 수행한 1000명은 모두 성인이 됐다고 한다. 천성산(千聖山)이란 이름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천성산에는 원효 스님이 창건한 절이 많이 남아 있는데, 노전암 역시 원효 스님이 세운 사찰 가운데 하나다.

고수무침과 두부부침은
스님들 최고로 치는 반찬

밀가루 공양이 들어오면
김치·콩나물 등 넣어 만두

공양간은 그대로 기도처
화엄성중과 다라니 염송

음식, 정성껏 만들어야
진정한 수행 위한 도구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짓는 곳이란 뜻의 노전암(爐殿庵)에는 능인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능인 스님은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여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듬해인 1954년 범어사 대성암에서 혜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7년 은사스님을 따라 노전암에 들어올 때까지 스님은 3년간 대성암에서 행자생활을 했다.

한국전쟁 직후 너나없이 모두 가난했던 시절, 절집 살림은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대성암은 50여명의 수좌들이 정진하는 비구니선원이었다. 수행자들은 석달 열흘간 그 자리에서 공양하고, 그 자리에서 누워 자고, 그 자리에서 앉아 정진하고, 그 자리에서 생활했다. 공양 후 잠시 양치하는 것 외에는 거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님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공양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50여명의 공양을 해결하자니 항상 쌀은 부족했고, 모자란 양만큼 조를 넣고 팥을 갈아 넣어 밥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밥이지 너무 거칠어 도저히 먹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허락된 양은 한 주먹 정도뿐이었다.

“조와 팥을 섞은 공양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노전암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다 10여년 만에 방부를 들이기 위해 대성암을 다시 찾았는데 출가 당시 공양모습 그대로인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공양주를 자청해 채전밭을 일구는 운력을 시작했어요. 밥을 잘 먹어야 공부도 잘할 수 있다면서 대중스님들을 설득해 오후에는 함께 푸성귀도 심고 콩나물도 기르고 했습니다.”

채전밭에서 거둔 채소와 산에서 뜯은 나물에 간장만 버무려 내놓아도 스님들은 너무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고수무침과 두부부침은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스님들은 고수무침을 위해 산에 오르고, 두부부침을 위해 콩을 수확해 갈아 두부를 만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성암은 다른 지역에 비해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이유는 부산 불자들의 돈독한 신심 때문이다. 부산의 불자들은 절을 찾을 때면 쌀을 비롯해 밀가루, 들기름, 버섯 등 형편껏 공양물을 마련해 왔다.

“밀가루 공양이 들어오면 종종 만두를 해 먹었어요. 콩나물을 아래위로 따서 다듬고, 김치도 잘게 썰고, 밭에 나물이나 시금치가 있으면 뽑아서 다지고, 두부도 주물러 놓고, 표고버섯이 있으면 잘게 썰어 소를 만들었지요. 밀가루를 반죽해 만두피를 만들고 그 속에 소를 넣어 가마솥에 쪄 먹었습니다. 특별한 것 없이 있는 재료만 사용해 만든 만두지만 스님들은 별식으로 여길 만큼 아주 좋아했습니다.”

가끔은 국수도 만들었다. 국수를 만들 때에는 콩가루를 넣어 함께 반죽을 했는데, 이렇게 하면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배가 됐다. 겨울에는 말려둔 칡을 절구에 찧어 체에 친후 가루를 만들어 밀가루 반죽에 넣어 먹었다. 가을에는 떨어진 밤을 주어 가루를 내 묵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동지를 앞두고는 꼭 동치미를 담갔다. 큰 독에 무를 칠 홉쯤 채우고 물 한 동이에 소금 반 바가지를 넣고 훅 저어 뚜껑을 잘 덮어놨다 한 달 간 묵히면 맛있는 동치미가 된다. 이렇게 만든 동치미를 동짓날 팥죽과 함께 내놓으면 대중 모두가 맛있게 공양했다.

스님이 기억하는 공양간의 모습은 흡사 기도처와 다르지 않다. 불을 때기 전에는 화엄성중 기도를 하고, 밥과 찬을 만드는 동안에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했다. 마음으로는 대중스님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스님 또한 그렇게 실천했다.

사실 능인 스님은 손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내원사를 비롯한 천성산 암자에서 음식이야기를 하면 주저 없이 노전암 노스님이 최고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스님은 출가 이전 음식을 해본 적이 없고, 출가해서도 따로 음식을 배운 적이 없다. 워낙 재료가 없다보니 먹고살기 위해 저절로 터득한 조리법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정성이 들어가면 아무리 부족한 재료라도 음식은 맛있어 집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음식은 수행을 위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공양을 통해 힘을 만들고 그 힘으로 공부하는데 매진해야 합니다. 또한 공부를 하는 힘이 되기에 공양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사찰음식을 보면 그 정신은 간과하고 맛과 모양에 탐착하는 것 같습니다. 공양을 만들고 공양을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길 바랍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능인 스님은

1954년 부산 범어사 대성암에서 혜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사스님과 내원사 노전암을 중창했으며 현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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