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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율원 교수사 도암 스님

자만·거만 버리고 겸손·공경 키우는 것이 극락 만드는 수행

▲ 도암 스님은 “내가 이기적인 마음을 유지하면 내 집안은 지옥도가 될 수밖에 없다”며 “검소하게 살고 쉽게 만족하며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ㅎ한 마음을 내 우리의 삶을 극락세계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홍법사 제공

백중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망 부모, 선망 형제·자매, 선망 자손.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 조금 더 나은 세상에 가서 살기를 발원합니다. 그분들이 수많은 복덕과 공덕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것을 다 갖추기 전에 이 세상과 인연을 마무리해야 될 때가 있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 우리는 부족했던 복덕, 공덕을 어떻게 채워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베푼 것은 더 크게 보이고
남에게 받은 것 작게 보는 습관
전생부터 이어진 번뇌의 결과

내 마음 속 착각 시스템 발견이
신구의 닦아가는 수행의 시작

가족·이웃 공경하는 마음 씀씀이
사회로 확대되면 세상이 곧 극락

부처님 제자 중 가장 유능했던 분 중의 한 명이었던 목련존자는 타고난 효자였습니다. 출가 후 가까이에서 직접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겠지요. 그런 목련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을 잘 해서 신통을 얻은 후였습니다. 돌아가신 모친이 계신 곳을 찾아보니 아귀도였습니다. 모친은 살아생전 아귀도의 차원과 어울리는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거기에서 일만 겁을 살아야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루도 긴데 일만 겁이나 살아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목련존자는 자신의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구해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신통력으로 업장을 녹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 “자자일에, 시방에 계시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려라” 하셨습니다. “모든 훌륭한 분들이 충분하게 공양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과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면 공양 받는 스님들 중에는 겉으로는 범부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도 실제로는 높은 수행력을 갖춘 많은 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의 선망부모가 이고득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도와주신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실제로 그분들은 공양을 받으며 그러한 축원과 신통력을 발휘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니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천상의 도리천에 태어나 계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백중입니다.

지장보살님도 전생에 효자셨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전생에 거사의 신분이었을 때도 있었고, 여인의 신분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거사의 신분으로 있었을 때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이분도 당시 부처님을 만나 두려움 없는 용기 갖고 지극한 효심을 발휘해 지옥불에 있는 부모님을 도리천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이 자녀 집에 초대받아 공양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부모님이 식사를 하시는 동안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합시다. 5년 전의 일, 10년 전의 일을 갖고 시비를 하고 있으면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하더라고 밥이 잘 넘어갈까요. 굉장히 목에 걸릴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백중재를 잘 차려 놓고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면 곤란한 상황이 됩니다.
요즘 스포츠 경기가 많습니다. 인기 있는 종목이 결승전을 하는 날이면 표가 매진됩니다.  표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이 표를 얼마면 사겠는가. 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10만원이면 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면 팔겠냐고 물어보니 평균 24만원입니다. 표가 없는 사람이 생각할 때 상식적인 가격은 10만원, 표가 있는 사람이 생각할 때 상식적인 가격은 24만원입니다. 이러한 편차는 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결혼을 해서 살면 처음에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인심을 얻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호의를 베풉니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화가 나게 됩니다. 해준 것은 많은데 돌아오는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속이 상합니다. 왜 이렇게 양심이 없느냐, 해주는 만큼 돌아오는 게 없냐고 서로에게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오히려 깜짝 놀라면서 말합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얼마나 많이 줬고 얼마나 많이 참았는데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 정말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결코 둘 다 양심을 속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나의 것은 확대 해석해서 보는 습관이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은 축소해서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내가 호의를 베푼 것은 큰데 반도 못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이 하루, 이틀, 열흘, 1달, 1년, 2년, 3년 정도 되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서로를 보면 양심불량으로 보입니다. 실제로는 남편이나 아내가 잘못해서 생긴 그 착각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착각 시스템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내가 베푸는 호의를 확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내 안에서 발생되는 착각 때문에 상대방이 비양심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호의를 확대 해석해서 보게 하는 시스템을 자만심, 오만심을 뜻하는 만심(慢心)이라고 부릅니다. 이 만심은 내가 고의로 했는지, 실수로 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만심은 전생, 전생, 전생부터 쓰던 습관을 태어날 때 갖고 온 번뇌라고 합니다. 이생에 태어날 때 따라오는 번뇌이기 때문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미워지고 아내가 미워지고 부모가 미워지고 자식이 미워질 때 우리는 항상 상대방을 탓합니다. 실제 분심의 문제를 일으킨 것은 나 자신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철 스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 이제 자기를 바로 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살아오면서 긁어 부스럼을 내가 만들었다는 반성을 하고 부끄러운 자리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선한 마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만심을 써서 착각이 발생이돼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서운하게 했구나’라는 현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내가 서운함을 느낄 때 상대방도 나만큼 서운함을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양심적’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상황에서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작동되는 상황을 알게 되면 마음 다스리기가 쉬워집니다. 마음을 조절하기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쉬워지면 수행이 쉬워집니다. 수행은 우리 몸의 습관, 마음 습관, 말 습관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상태로 수정, 보완하는 것입니다. 내가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마음자리에 거만심의 번뇌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알 때, 나는 양심적인 상황이 됩니다.

거만심은 나를 크게 보이게 합니다. 그럴 때는 겸손함, 공경심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심을 하게 되고 상대방이 나보다 커지게 되면 문제는 소멸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부모와 자식, 부부, 일가친척 사이를 돌아보면 가족 사이에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선망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효성심을 발휘하게 되면 그 이익이 부모님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을 하므로 선망부모님뿐 아니라 우리도 좋게 됩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법장비구로 계실 때 발심하고 수행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시방세계 많은 부처님의 세계가 있는데 그 모든 세계보다 더 빼어난 불국토를 건설해서 다른 부처님이 계신 세계보다 훌륭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발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락세계에서는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극락세계에 가게 되면 할 수 있는 일들도 ‘무량수경’에 언급됩니다. 일부분을 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은 모든 시방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모두 꿰뚫어보고 빠짐없이 들을 수 있으며 일체의 천상, 사람, 벌레, 곤충 등의 마음 속 선망, 과보, 하고 싶은 말, 극락세계의 왕생 의지를 모두 알 수 있다.”

내 형제가 어느 세계에 가서 고생을 하는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미타불의 위신력으로 나도 화신을 나투어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생, 과거생, 과거생의 부모, 형제에게도 잘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극락세계로 초청할 수 있는 인연을 지어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미타불의 원력을 내 생활 속에 응용하게 되면 내 생활 속에서 아귀도를 없애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 역량을 키우고 만족은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 자식, 부모님이 모두 같이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는 역량으로 다른 가족들을 보살피고 이웃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분의 역량이 남을 때 사람 노릇을 하게 됩니다. 여분의 역량으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무주상 보시를 할 때 우리는 무량한 공덕을 짓게 됩니다. 그 공덕으로 선망 부모님을 기리고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발원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극락정토와 비슷해질 겁니다.

나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 공경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가 자식을 대하면 자애심이 되고 자식이 부모를 대하면 효성심이 됩니다. 똑같은 마음을 어느 위치에서 쓰는가에 따라서 말만 바뀌지 동일한 에너지를 쓰는 것입니다. 어른도 젊은 사람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젊은 사람들도 어른들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평소에 쓰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다면 서투릅니다. 서툴 때는 연습량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가 절에 와서 처음부터 바로 108배를 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처음에 10배를 하고 일주일 지나서 20배를 하고 그 다음 일주일이 지나서 30배를 하고 그리고 일주일 지나서 50배를 하고 그 다음에 108배를 한다면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항상 이기적인 마음을 유지하게 되면 나의 집안이 지옥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검소하게 살고 쉽게 만족하며 살고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마음을 낸다면 우리의 삶은 극락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모아서 지극정성으로 백중불공을 잘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7월13일 부산 홍법사(주지 심산 스님)에서 봉행된 ‘백중 2재 법회’에서 통도사 율원 교수사 도암 스님의 설법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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