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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녀가 느끼는 가정: 모순형

입시·취업으로 초등생 누릴 경험 희생시키지 않아야

“난 요즈음 수영이 때문에 속상해죽겠어. 글쎄 갈수록 잠만 더 늘어 어제는 학원도 빼먹었지 뭐니?” “한창 잠이 많을 때야, 그럴 땐 그냥 재우는 게 효과적이야.” 초등생 아들이 잠이 많아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친구의 걱정하는 전화를 받고 혜성 엄마는 너그럽게 위로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혜성에게 일어났다면 그렇게 태연하고 너그러울 수 있을까?

부모욕망에 희생 강요당하며
학원에 중독된 아이들 한숨
성공만 따지다보면 상처 뿐

혜성(초등2)이는 일주일에 총 9군데 학원을 다니니까 매일 1~2군데는 가는 편이다. 교과목 위주의 학원이 아닌 예체능계열이라서 혜성이가 좋아한다고 믿는 엄마는 어느 날 혜성이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아! 힘들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네.” 놀란 엄마는 검도학원이 가장 힘들다는 아이 말에 곧 바로 그 학원을 쉬게 했다. 그러나 며칠 쉬던 아이가 “그동안 들인 공이 아깝고 조금만 참으면 곧 끝나니 그냥 다녀보겠어요”라며 다시 학원을 다니겠단다. 이때 대부분의 부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이의 결정이 기특해서 흐뭇해한다.  그러나 사려 깊은 부모라면 아이의 말속에서 ‘숨은 의미’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부모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한 아이의 희생이 담긴 결정인지, 부모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불안을 느껴서인지, 또는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원에 중독된 탓인지 그 이유를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결정에 마냥 기뻐하는 부모보다는 현명한 부모의 자세다.

유치원시기부터 보통 3~8군데의 학원을 다니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학원에 중독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은 혹여 학원을 그만두기라도 하면 뭔지 모르게 불안하고 심심해하니 차라리 학원에서 버티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길들여진다. 어디 학원뿐인가? 아이들은 지금 게임, 경쟁심, 흡연, 화장술, 스마트폰 등으로 유혹당하며 점점 중독되어 간다. 문제는 앞으로도 부모의 욕망과 기업의 상술이 합작한 수많은 신상품들이 쏟아져 나와 아이들을 더 바쁘고 수면부족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학원에서 배우는 각종 예체능교육이 인성교육이라고 믿는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가치관은 고액의 학원일수록 질적으로도 우수한 인성교육을 하고 있으므로 가정에서 특별히 인성교육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예체능교육은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머릿속에 이론만 가득 채우고,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는 교육은 인성교육이 될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고학력사회이면서 오히려 원칙은 편법으로 무시되고 정의가 상처받는 모순성을 본다. 그 근본이유는 뭘까? 가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때문이다. 부모의 모순된 태도는 아이들을 얼마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하며 원망이나 분노를 내면에 키우게 하는지 짐작이나 해보았는가? 사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많은 돈과 정성을 아낌없이 들이지만 욕망이 너무 많아 견해가 바로 서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성공한 결과에만 관심을 두며 중간과정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는 눈감고 위로하지 못한다.

‘상윳따니까야’ ‘올가미경’의 부처님 말씀을 들어본다.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수행승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가운데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펴라.”

제자들을 향한 전도선언 이지만 부모가 깊이 새겨야 할 지혜가 담겨 있다. 즉 미래의 대학입시나 취업을 위해 초등생이 누릴 삶의 이익과 안락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본다. 결과를 위해 중간과정을 무시하면 성공 뒤에 상처는 늘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혜성 엄마는 “혜성아, 힘든 결정을 했구나.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해, 단 네가 힘들다면 언제든 그만두어도 좋아”라며 따뜻한 위로를 해야 한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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