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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공존과 로드킬

기자명 최원형

동물 지키는 것이 우리 자신 지키는 일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으면 언제나 첫 장면은 ‘호환과 마마’만큼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보지 말라는 공익광고가 떴던 걸로 기억한다.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 호환과 마마에 따르는 두려움은 실로 컸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동물원 우리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었고 이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천연두 역시 두려워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둘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설정한 광고는 오히려 희화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우연히 도로 위 줄지어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면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호환이 떠올랐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불빛이 마치 짐승의 눈이 번득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자동차라는 물건은 고갯마루에서 ‘떠억’ 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 같은 맹수와 일견 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달리고 있는 자동차라면 말이다.

동물이 도로에 뛰어든 것 아닌
그들 터전을 사람이 조각낸 것
자연 인접한 도로서 안전운전이
불살생일 뿐 아니라 방생의 길

다음 달 초까지 휴가시즌은 절정을 이룰 것이다. 더운 계절이니만큼 여름휴가는 곧 피서를 의미한다. 이름난 산과 계곡, 바닷가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까지 휴가 장소는 자연 더 깊숙한 곳으로 계속 확장될 것이다.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자가용보급률은 65.7%에 이른다. 높은 자가용보급은 사람들의 발길이 전국 방방곡곡 골골마다 가 닿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는 도로가 확보되어야 운행이 가능하니 도로건설역시 증가 일로다. 자동차는 짐 진 자들의 수고로움을 해결해주었고, 다리 아프게 걷는데서 해방시켜줬다. 한 달이 걸리던 거리를 불과 몇 시간 만에 가 닿을 수 있으니 자동차는 시간 단축에도 큰 기여를 했다. 아무리 험한 고갯길도 자동차 엔진의 힘으로 앉아서 가뿐히 고개를 넘는다. 그러니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험준한 고갯길을 넘기 위해 길 가는 나그네 수십 명이 모일 때까지 산 아래 주막에서 몇 날 며칠이고 기다렸다는 얘기는 판타지에 가깝다. 이렇듯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야생동물 교통사고라 불리는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의 숫자가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100만 마리에 이른다. 로드킬의 피해는 땅위를 다니는 동물뿐만 아니라, 낮게 날거나 높은 속도로 달리는 차에 기류가 휘말리면서 새들도 해당된다. 기류에 휘말린다는 것은 일상에서도 경험이 가능하다.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을 때 그 옆으로 차가 쌩쌩 달리면 정차하고 있는 차가 휘청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정도의 위력이니 하늘을 나는 가벼운 새야 그 기류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로드킬 당한 사체를 먹으려 도로로 뛰어드는 또 다른 짐승들로 인해서 로드킬은 또 다른 로드킬을 부르기도 한다. 로드킬은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도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된다. 그렇다면 왜 동물들은 도로를 횡단하는 걸까? 이 의문에 답하려면 먼저 도로가 있는 곳이 그 이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도로였던 곳은 지구상 어느 곳에도 없다. 모두 자연 상태였다가 자연을 밀어버리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자동차가 다닐 공간 확보를 위해 도로가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도로 길이는 10만km가 넘는다. 자연이었던 공간이 도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자연은 계속 작은 크기로 조각이 난다. 그러니 먹이를 구하거나 습성 상 돌아다녀야 하는 동물들에게 그러한 환경은 어떠할까? 동물들이 도로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로드킬이 발생했다는 표현은 그러므로 옳지 않다. 오히려 동물들이 살던 터전에 사람들이 도로를 만들며 조각내버렸기 때문에 로드킬이 발생했다는 표현이 타당하다.

휴가를 떠나는 계절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로드킬로부터 동물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아니 우리 자신을 어떻게 트라우마로부터 지켜낼 것인가? 자연과 인접한 도로에서는 속력을 최대한 낮추고 운전해보는 게 어떨까? 가능하다면 야간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행성 동물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감지하는 것이 낮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길가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만난다면 잘 수습해서 2차, 3차 로드킬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러 사정상 그게 힘들다면 도로공사 측에 전화를 걸어 치우게 하는 것도 좋겠다.

로드킬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불살생계를 지키는 일이며 방생의 길이기도 하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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