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조계사 연꽃이 주는 역설

서울 도심 한복판 조계사가 연꽃의 향연으로 푸르고 붉다. 400여개의 연꽃 화분이 숲과 오솔길을 만들며 도심사찰에 그윽한 그늘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조계사에 연꽃 숲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번째로 8월31일까지 도심 속 작은 쉼표가 될 전망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좌대를 연꽃모양으로 만들거나 연꽃을 조각해 ‘연화좌’라고 부른다. 경전에는 아기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을 때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전한다. 불교에서 연꽃을 소중히 하는 것은 연꽃에 담긴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 처해 있어도,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은 진흙과 같은 사바세계에 몸담고 있지만 결코 물들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불자들의 삶이 응축돼 있다. 또한 슬픔과 고통, 번뇌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이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서원하는 보살의 실천행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 이런 연꽃의 의미가 점차 잊히고 있다. 거대 종단들이 세속화되면서 세간 못지않은 정쟁과 추문들이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불교가 세상의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걱정을 끼치는 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최근 김홍철 원광대 명예교수가 한국 신흥종교 대사전을 발간했다. 구한말에서 현재까지의 신흥종교들을 총망라했는데 김 교수는 신흥종교의 창립과 쇠퇴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모든 종교는 창시자가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답과 지혜를 주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교수의 말은 신흥종교를 향하고 있지만, 세상을 외면한 채 자기들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불교를 비롯한 기성종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연꽃이 맑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못에서 진흙과 함께 썩어버리면 연못은 더욱 더러워질 것이다. 조계사를 수놓은 맑고 깨끗한 연꽃들은 혼돈의 한국불교에 대한 역설이며, 불교가 다시 세상의 연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