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지원 스님의 만월(滿月)
36. 지원 스님의 만월(滿月)
  • 김형중
  • 승인 2016.07.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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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담박한 언어로 산중 수행자 마음 표현한 수작

행여 이 산중에
당신이
올까 해서

석등(石燈)에 불 밝히어
어둠을
쓸어내고

막 돋은
보름달 하나
솔가지에 걸어 뒀소.

보름달 뜬 밤중에 수도승이
절 마당에 나와 서성이면서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 그려

윤지원(1943~현재) 스님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장명등’이 있다. 그의 대표시 ‘만월(滿月)’은 출가 수행자로서 깊은 산중에서 수행을 마치고 자신의 깨달음의 세계를 전해주기 위하여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법당 앞에 장명등(長明燈)까지 켜놓고 불자를 기다리는 시이다. 장명등은 사찰뿐만 아니라 묘역 앞에 세운 석등으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辟邪)의 기능이 있다.

시조의 기본형식은 초장·중장·종장 3장(三章) 6구(六句)이다. 각 장마다 2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종장의 시작이 정확히 3(막 돋은)·5(보름달 하나)음절로 되어야 한다. ‘만월’은 현대시조 기본형식을 잘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군소리가 없이 담박하고 깔끔한 언어로 수행자의 마음을 표현한 수작이다.

초장과 중장인 ‘행여 이 산중에 당신이 올까 해서/ 석등에 불 밝히어 어둠을 쓸어내고’는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무명을 쓸어낸 오도(悟道) 즉,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을 위하여 설법할 준비가 잘 갖추어진 상태이다.

마지막 종장 ‘막 돋은 보름달 하나 솔가지에 걸어뒀소’는 깊은 산사를 찾아오는 불자를 위하여 친절하게 소나무 가지에 막 돋은 보름달까지 걸어 놓았다. ‘막 돋은 보름달 하나’는  지금 곧 깨달은 마음의 세계인 진리의 일원상(一圓相)이다. 보름달은 둥글게 생긴 우리의 마음을 상징한다. 선가에서 깨달음이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다. 곧바로 마음의 정체인 본래 마음자리인 자성을 보고,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인 일심진여(一心眞如)의 세계가 부처의 마음과 동일함을 확철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계는 무심(無心), 무상(無相)의 세계이기 때문에 불립문자요, 인식의 경계를 떠난 세계이다.

형상과 색깔 그리고 크기가 없는 무형의 추상적인 마음을 형상으로 나타낸다면 둥글고 원만한 보름달 모양의 동그라미인 일원상일 것이라고 선가에서는 약속했다.

이 시조는 시인이 자신의 서간문집인 ‘마음이 열리면 천당이지요’에서 밝힌 바대로 멀리서 산중에 찾아오는 사랑하는 달샘이란 불제자를 위하여 깨끗이 마당도 쓸고, 등불도 밝혀 놓고 기다리는 자애로운 스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산사의 오솔길에 행여나 넘어질세라 솔가지에 보름달까지 걸어 놓았다.

보름달이 뜬 밤중에 수도승이 절 마당에 나와서 서성이며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지는 한 폭의 동양화이다. 마치 완벽하게 수행을 모두 마친 무학(無學) 도인이 불법을 배우러 찾아오는 불자를 경건히 기다리는 마음이 잘 나타난 시이다.

시인은 ‘합장’이란 시에서 ‘달보다 더 어여쁜 일월등(日月燈) 걸어두고… 가없는 하늘 가득 만월(滿月)로나 둥근 가슴’이라 하여 연등을 걸어놓고 합장기도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

시인은 도심포교에 성공한 대표적인 스님으로 원력보살이다. 조계종 포교원장과 호계원장을 두루 역임한 분으로 전통적인 수행과 현대적인 포교 경력을 겸비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선지식이다.

설악산에서 만해 스님 이후 무산오현 스님으로부터 이어오는 현대시조의 전통을 계승한 시승(詩僧)이다. 경기도 양주시 도리산에 장엄하게 세워진 지장보살의 성지인 육지장사의 창건 불사는 스님의 원대한 신심과 원력을 엿볼 수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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