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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과잉의 시대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8.08 13:53
  • 수정 2016.08.08 13:54
  • 댓글 0

요즘 올림픽을 앞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올림픽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통 눈뜨면 들려오는 슬픈 사고소식들에 마음이 즐거울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지식인이라고 존중하고 경외심을 가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전화기만 켜면 궁금한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들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고통은 오히려 늘어
내려놓고 쉬는 지혜를 알아
잠시라도 마음 평화를 얻길

어린 시절 지리산 영원사에 살 때 제주도에 살던 50대 중반의 거사님이 오셨습니다. 함께 몇 달을 살았는데 그분이 워낙 얘기를 재미있게 잘하셔서 듣는 이들이 즐거워했습니다. 둘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라면도 끓여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는 사춘기이고 의심이 많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냥 무심코 던졌을 이야기였는데도 사실관계를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우기고, 우기다가 나중에는 냉랭해서 어두워진 산길을 저 만치 떨어져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 돌아왔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돌이켜보면 그분께 많이 죄송하고 부끄러운 기억들입니다.

이런 추억도 이제는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배움을 추구합니다. 이는 세상을 알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아야 내가 살아갈 방향을 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보다 앞서서 그 길을 가야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래야만 한다고 아침부터 자정까지 놀지 못하게 다그칩니다. 그렇게 필요로 해서 다가간 정보들은 이제 너무 많아졌습니다. 아니 우리가 소화할 정도의 양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평화를 방해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오늘도 몇 사람이 모여서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서 본 사고나 걱정거리들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대화의 마지막까지 우리는 슬픔과 걱정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돌아와 보니 슬픔과 우울한 기분은 더 커졌습니다. 슬픔을 나누면 작아진다지만 커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사고소식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전에 한국전쟁시절에 산에 살던 어느 마을에서는 전쟁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마을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르쇠”로 사회를 살아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상일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안다고 해서 우리가 좀 더 행복해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모든 것에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번 주는 좀 쉬겠다고 말하고 절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왠지 많은 피로감이 몰려와서 축 처져 있습니다. ‘나름대로 시간을 내면 수행도 더 하고 밀린 책도 보고 기운이 날거야’라는 기대는 오판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정보로부터의 단절입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쉬고 싶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쉬고 싶습니다. 아니 만사가 귀찮습니다. 어쩐지 자꾸 잠만 자게 됩니다.

그러다 은근히 ‘이러다 폐인처럼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듭니다. 그제야 내가 많이 지쳐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뭔가 열심히 수행해 보겠다고 다짐한 한 주인데 내 몸과 마음이 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마음이 편해지려면 내려놓고 쉬라고 합니다. 듣고 보고 알고도 안들은 것처럼 못 본 것처럼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이 무주상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해보면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한 구절도 많이 듣고 보고 알아서 더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세상일도 너무 많은 정보는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작은 우물이 맑아지려면 그곳에 떨어진 흙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 계속해서 흙을 넣으면 그 물은 맑음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새로운 정보로 도망간다고 마음의 평화가 오진 않습니다. 잠시 멈추어서 내 마음의 먼지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볼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다면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평화롭기를 기원해봅니다.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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