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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종남 불교학연구회 회장

“열린 토론으로 미래 주역 신진학자 육성”

▲ 최종남 회장은 “신진학자들이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는 여건, 그 연구를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학연구회는 2000년 5월 창립했을 때부터 ‘열린 학문, 열린 토론’을 지향해왔다. 대다수 단체들이 회원들의 ‘참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불교학연구회가 강조하는 ‘열린’의 의미는 특별하다. 표어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쳐왔기 때문이다. 실제, 불교학연구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여느 학술대회와는 사뭇 다르다. 하나의 발제에 대해 한 명의 토론자가 논평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불교학연구회는 발제 시간을 줄이는 대신 각 발제 당 2명의 토론자를 붙인다. 여기에 일반참석자들까지 동참해 길게는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불교학연구회 회원들이 ‘제2의 발표장’이라고 부르는 뒤풀이에서도 뜨거운 열기는 계속된다. 학술대회 참석자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발제자 역시 자신의 연구를 보다 심화시킨다.

불교학연구회 전통의 토론문화
학회지 ‘불교학연구’ 질 높여와
지난해 우수등재학술지 선정돼

중학교 때 불교학생회 만들고
이등병 시절엔 법우회 창립도
일본·독일서 유학생활만 16년

논의 장 만들고 결과물 모아
그릇에 담는 게 회장의 역할
“학회는 회원이 만들어가는 것”

이러한 방식은 불교학연구회의 학회지 ‘불교학연구’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발제자는 토론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완해 발제논문을 최종 완성시킨다. 하지만 이 논문들조차 ‘불교학연구’에 모두 게재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불교학연구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이라 하더라도, 편집위원들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불교학연구’에 게재되지 못한다. ‘불교학연구’의 논문 평가는 그 엄격함으로 불교학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이와 같이 실천을 담보한 불교학연구회만의 ‘열린 학문, 열린 토론’은 지난해 8월24일 ‘불교학연구’가 우수등재학술지로 선정되는 주춧돌이 됐다. 등재(후보)학술지 가운데 15종이 우수등재학술지로 선정됐는데 철학종교 분야에서는 ‘불교학연구’가 유일했다.

이와 관련, 그해 9월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종남(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불교학연구회 회장은 “‘불교학연구’가 우수등재학술지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회장님과 편집위원장님이 불교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덕분으로, 우리 불교계의 쾌거”라며 “앞으로 우수등재학술지의 위상에 걸맞게 더욱 좋은 학술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종남 회장의 말처럼 ‘불교학연구’의 우수등재학술지 선정 배경에는 역대 회장·편집위원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창간 당시부터 ‘열린 학문, 열린 토론’이라는 틀을 잡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그것을 불교학연구회만의 전통으로 정착시킨 회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지난 8월2일 중앙승가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종남 회장은 다시 한 번 역대 임원진과 회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논문을 잘 준비해주신 것도, 심도 있는 토론에 임해주신 것도, 학회지를 이끌어오신 것도 모두 회원들입니다. 회장은 다만 장을 만들고, 그 내용을 그릇에 담을 뿐입니다. 학회의 각 분야 상임이사님들에게도 ‘각자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하자’고 말씀드립니다. 이미 완성돼 있는 불교학연구회의 전통을 다음 소임자들에게 그대로 넘겨줘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최종남 회장은 불교학연구회 전통에 대한 깊은 존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전통을 오롯이 이어받고 훼손하지 않으며 다음 세대에게 이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신심으로 굳건한 신행의 삶을 살아온 최종남 회장은, 여기서 나아가 불교학자로서, 중앙승가대 교수로서, 그리고 불자로서 회향하겠다는 발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최종남 회장은 1958년 전남 영암, 도갑사 밑자락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도갑사를 찾곤 하다, 광주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신행활동을 했다. 전남지역 본·말사를 다니면서 법회에 참석했고, 학생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오직 불심으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우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펼쳤다. 서울 용산 미8군에 입대한 뒤 이등병의 신분으로 장군을 찾아가 불교법우회 창립을 건의했는데, 이를 지켜본 헌병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미8군 최초의 불교법우회를 창립시킨 뒤 곧이어 미8군 최초의 제등행렬을 성사시켰다. 제대하고 불교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으로 1982년 일본 오사카 사천왕사국제불교대학으로의 유학을 단행했다. 그곳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이번에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으로 날아가 유식학 권위자 슈미트하우젠 교수의 제자가 됐다. 유학생활만 16년. 낯선 타국생활이기에 힘들 만도 했지만, 불교를 원전으로 공부할 수 있어 어려움 대신 매순간 행복을 느꼈다. ‘초기 유가행파의 삼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8년 8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학생활 만큼의 시간인 18년이 흘렀다. 현재 최종남 회장은 ‘초기불교의 논리와 대승불교의 화엄’을 주제로 9월3일 열리는 가을 논문발표회와 ‘불교전래에서 교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인도불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11월12일 열리는 추계학술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내년 2월에 임기가 끝나지만, 같은 해 9~11월 3개월간 ‘깨달음과 보리’를 주제로 기획하고 있는 대규모 추계학술대회와 이어질 동계워크숍도 준비해야 한다. 불교학생회를 탄생시키고 또래친구들에게 부처님 법을 알리던 중학생이 이제는 한국불교학계를 이끄는 한 축이 됐다. 최종남 회장이 꿈꾸는 한국불교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회장이 되고, 강사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투고료를 면제하도록 했습니다. 봄·가을 논문발표회는 신진학자들이 발제를 하도록 하는 불교학연구회의 전통과 같은 맥락의 결정이었습니다. 신진학자들이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는 여건, 그 연구를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발표하고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종남 회장은 “불교학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한다. 전공별 인적자원이 풍부해졌고, 연구수준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능력 있는 많은 신진학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열린 학문, 열린 토론’에서 길어올린 논의를 그릇에 담아내기 위한 최종남 회장의 노력은 불교학연구회 오랜 전통처럼,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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