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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관음 세지 나란히

걸어갈 때 시방세계 다 진동하고 앉을 때는 전 국토 일시에 흔들려

지난달 중순, 일본 나고야의 나나츠데라(七寺)를 참배하였습니다. 이 절에는 희한하게도,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두 분만이 나란히 앉아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안 계셨습니다. 1945년 3월 하순 미군 폭격기 B52가 쏟아부은 소이탄으로 인하여 아미타불은 불타버리고, 절도 거의 다 타버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량수·관세음·대세지 분신들
모두 다 극락국토에 모여들어
연화좌 앉아 올바른 법 설해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 제도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을 아미타부처님께서 다 안고 가신 것 같았습니다. 저로서는 바로 직전에 세지관(勢至觀)을 쓰고 간 터라, 육계에 보병(寶甁)을 간직한 대세지보살을 뵙게 되어서 남다른 인연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차이는 육계에 화불(化佛)을 모시고 있느냐 정병을 이고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나머지 여러 가지 모습은 다 관세음보살과 같으며 다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행동은 어떠할까요?

“이 보살이 걸어가실 때에는 시방세계가 모두 다 진동한다. 땅이 울리는 곳은 다 오백억 송이의 보배꽃(寶華)이 피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꽃은 다 크게 자라서 아름다운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마치 극락세계의 (보배꽃과) 같다. 이 보살이 앉을 때에는 칠보로 이루어진 국토가, 즉 저 아래(下方)의 금광불(金光佛)의 국토에서부터 저 위(上方)의 광명왕불(光明王佛)의 국토까지 모두 다 일시에 흔들린다.”

지금 우리 사바세계에서는 땅이 흔들리면 곧 지진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재해를 가져오기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렇지만 극락에서는 땅이 흔들리는 것은 바로 불보살님의 힘을 나타내는 것일 뿐, 중생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금광불의 국토에서 광명왕불의 국토) 그 중간에 있는 티끌처럼 한량없이 많은 무량수불의 분신, 관세음보살의 분신, 그리고 대세지보살의 분신들이 모두 다 극락국토에 모여들어서, 공중에 가득 차있는 연화좌(蓮花座)에 앉으셔서 올바른 법(妙法)을 설하심으로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제도하신다.”

선도대사의 ‘관경소’에서는 바로 이 말씀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베풀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에 따르면, 극락에는 어떤 괴로움도 없고 오직 즐거움만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관경’에서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안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선도대사는 여기 ‘관경’에서 말하는 것은 삼계(三界)의 괴로움이 아니라 정토의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극락에 삼계의 괴로움은 없지만, 정토의 괴로움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정토의 괴로움일까요? 수행이나 깨달음의 차원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바라면서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는 것, 그것이 정토의 괴로움이라 말합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대세지보살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는 대세지보살의 색신(色身)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제11관이라 이름한다. (이러한 관찰은) 한량없이 오랜 아승지(阿僧祗)겁 동안 생사윤회를 반복하면서 지어온 죄를 다 소멸하며, 이렇게 관찰하는 자는 (다시는) 포태(胞胎)에 들어가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부처님의 청정하고 아름다운 국토에 노닌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토신앙은 윤회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극락에 태어나는 것은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무수한 세월 동안 윤회를 하면서 쌓아온 모든 악업이 다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왕생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사람은 모두 왕생할 것이므로 윤회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찰이 이루어지게 되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함께 관찰하는 것이라 이름 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올바른 관찰이라 말하고, 이와 다르게 관찰하는 것을 삿된 관찰이라 말한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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